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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의 러시아 읽기
제목 스푸트니크V 백신의 유럽 사용(EMA) 승인, 어디까지 왔나? 날짜 2021.04.01 17:25
글쓴이 이진희 조회 69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은 지난 26일(4월 첫날이라 '지난'의 날짜는 전부 3월) 한국 바이오 업체 셀트리온의 신종 코로나(COVID 19) 항체 치료제 '렉키로나주'(레그단비맙·CT-P59)를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성인 환자의 치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24일 시작된 '렉키로나주에 대한 동반심사(긴급 사용 승인, Rolling Review)와는 다른 방식의 사용 가능 견해 표명이었다.

러시아의 첫번째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 도 EMA의 동반심사 중에 있다. 셀트리온보다 1주일여 늦은 지난(3월) 4일 공식 시작됐으니, 벌써 한달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워낙 예민하고 치료제가 아닌 백신이어서 '스푸트니크V'에 대해서는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주'와 같은 과학적인 견해를 미리 듣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심사 결과, 유럽연합(EU) 집행부 측에 스푸트니크V 백신의 사용을 권고할 것이냐 아니냐의 결론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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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의약품 승인을 담당하는 의약품청(EMA)/사진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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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V 백신, 한달반, 두달 후에 EC 시장에 공급될 수도/얀덱스 캡처



그 시기는 언째쯤 될까? 시기를 예측하는 전문가의 발언은 현지 언론에 소개됐다. EMA 이사회 멤버이자 독일 의약품 위원장 볼프-디에터 루드비그(Wolf-Dieter Ludwig)는 지난 23일 베를린에서 열린 포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화'에서 "EMA 심사는 6~8주 걸릴 것"이라며 "유럽에서 '스푸트니크V'의 사용은 5월 중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의약품 제조 관행에 대한 유럽연합(EU)와 러시아 간의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EMA가 임명한 전문가가 현장에서 백신 제조 과정도 점검해야 한다"며 "그럴 경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에머 쿡 EMA청장이 같은 날 유럽의회 보건위 회의에서 "러시아 백신 생산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전문가가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에 따르면 쿡 EMA 청장은 이날 회의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의 승인을 바라고 있다"며 "안전성, 품질, 효능 등 모든 분야에서 유럽의 보편적인 기준을 충족시켜 유럽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백신에 추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제는 스푸트니크V에 대한 등록 심사 개시 이후 터져나온 EU 지도자들의 정치적(?) 발언이다. 쿡 청장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발언 강도가 의외로 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행정부의 출범이후 각 분야에서 '신냉전'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러·중 대 미·유럽의 진영간 힘겨루기에서 신종 코로나 백신 역시, 진영 싸움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스푸트니크V'를 승인하고 구매하려던 헝가리와 브라질, 슬로바키아 등의 정부 지도자들이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다양한 루트로 폭로된 바 있다.

EU 지도자들의 발언은 러시아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러시아가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국면을 이용해 소위 '백신 외교'로 글로벌 영향력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의 내부시장 담당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은 지난 21일 프랑스 TF1 방송에서 "EU는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V 백신이 필요하지 않다"며 "현재 유럽의 55개 공장에서 코로나 백신이 생산되고 있으며, (프랑스의 혁명기념일인) 7월 14일까지는 유럽 대륙 전체에서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EU의 백신 공급이 정상궤도에 올랐다"며 "오는 6월까지 3억~3억5천만 도스가 추가로 공급될 것으로 생각한다"고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예측대로 7월 중 '집단 면역' 형성 가능성을 믿는 사람을 별로 없는 것 같다. 백신 공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혈전 생성' 우려로 유럽 곳곳에서 접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EU 역내에서도 백신 공급을 둘러싸고 공정성 분란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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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반박하는 '스푸트니크V' 공식 계정 트윗/캡처

스푸트니크V 개발자, '백신으로 인한 (세계) 전쟁' 발언을 한 마크롱 대통령에게 응답/얀덱스 캡처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스푸트니크V' 발언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5일 "유럽이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의 맥락에서 새로운 유형의 '세계 대전'에 직면하고 있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백신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 백신 개발자 측은 즉각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우리는 백신을 정치에서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이것이 전쟁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한 최선의 희망"이라고 반박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 30일 마크롱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3자 화상 회담'을 갖고 '백신 협력'을 논의한 것도 유럽내 부정적인 기류를 막기위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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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코:독일, EU 집행위에 스푸트니크V 백신 구매 요청/얀덱스 캡처



물론, 독일의 분위기는 프랑스와 한결 결이 다르다. 일찌감치 '스푸트니크V'의 EMA 승인에 대해 자문해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메르켈 독일 총리는 "EMA의 승인만 나면 독일은 '스푸트니크V'를 주문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일부 국가들의 정치적 결정을 우려한 듯, "아직 그런 기미가 없지만, 혹시라도 EU 차원에서 주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독일은 단독으로 (구매를) 진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마이클 뮐러 베를린 시장과 바이에른 주 마르쿠스 제더 주지사 등 독일의 지자체단 체장들도 조속한 EMA 심사를 촉구하면서 "스푸트니크 V 백신이 유럽의 기준을 충족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접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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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주, 스푸트니크V 백신의 생산 가능성 밝혀/얀덱스 캡처



독일 정부가 EU 집행위원회에 '스푸트니크V' 구매 협상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독일 유력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는 최신호(3월 24일자)에서 독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 "러시아 백신의 구매는 '유럽 시스템'을 통해 이뤄져야 하지만, 가능한 빨리 '구매 절차'를 시작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구매 절차'는 EU 집행위가 공급처 측과 구매에 관한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회원국들의 관심 여부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6개국 이상의 회원국으로부터 구매 요청이 있어야 구매 협상에 들어가는 게 통상의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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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사진출처:러시아 보건부



스푸트니크V 백신이 EMA의 시험에 통과하더라도 넘어야 하는 장애물을 또 있다. 가장 큰 것은 '스푸트니크V'가 '혈전 생성'이라는 의외의 덫에 빠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됐다는 심리적 공포다. 스푸트니크V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한 벡터 운반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EU내에 확산된 '혈전 공포'를 극복해야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것이다.

'스푸트니크V'의 구매를 희망하는 국가는 EU의 공동구매 기준인 6개국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스트리아와 체코, 헝가리·슬로바키아(이미 독자 승인), 크로아티아 등 중부 유럽과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독일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스푸트니크V'의 위탁 생산을 고려 중인 이탈리아도 '스푸트니크V' 구매 찬성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스푸트니크V 백신이 넘어서야 할 또다른 장벽은 EU내 백신 공급 분란이다. 유럽은 이미 승인된 서방 백신들의 공급과 관련해 분열 양상을 보이는 중이다. 세바스티얀 쿠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24일 독일 일간지 '디벨트'와의 회견에서 "공정하지 못한 백신 배포로 유럽은 분열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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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백신) 분열 경고/얀덱스 캡처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백신의 부족에 따른 '백신 접종' 격차를 겨냥한 것이다. 유럽에서 접종자가 늘어날수록 백신을 구하지 못한 '2등급(후진) 회원국'들의 불만은 커지고, 나아가 EU권역의 집단면역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백신 공급이 회원국의 인구 비례가 아니라 주문 수량(국력)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올해 1분기에 EU측에 당초 약속한 물량인 9억 도스의 30% 공급에 그쳤으니 일부 국가는 백신을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재정이 풍족해 백신을 대량으로 주문한 일부 국가가 5월 말에 집단 면역을 형성하더라도, 빈곤한 다른 회원국들은 일러야 가을, 늦으면 연말에나 가능하다"는 게 쿠르츠 총리의 진단이다. EU회원국은 현재 27개국에 약 4억4,800만명에 이른다.

이같은 상황에서 '스푸트니크V'가 EMA 시험에 통과하더라도 일부 (후진) 회원국들에게 공급이 집중되고, 그것은 백신의 EU내 빈부 격차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EU에서 기존에 승인된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존슨 등의 백신이 인구비례로 배분되지 않는 한, EU의 분란은 스푸트니크V 백신을 계기로 또 한차례 파열음을 낼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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