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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의 러시아 읽기
제목 '오픈 스카이'가 뭐길래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날을 세우나? 날짜 2020.05.28 07:40
글쓴이 이진희 조회 115

항공자유화조약(Open Skies Treaty)이 뭐길래 미국의 탈퇴 발표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 유럽국가들 간의 공방이 뜨거울까?

국경이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기에 '하늘을 개방한다'(오픈 스카이 Open sky)는 것은 '하늘 국경'을 허물어뜨린다는 뜻이다. 민간 분야의 '오픈 스카이'는 민간 항공기의 자유로운 운항을, 군사 분야의 '오픈 스카이'는 군사적 목적의 항공기까지 자유로운 비행을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할 터. 최근 문제가 불거진 항공자유화조약의 탈퇴는 미국이 군사 분야에서 더이상 '오픈 스카이'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한 셈이다.

민간 분야의 '오픈 스카이'는 주로 쌍방간에 민간 여객기및 화물기의 자유로운 운항을 보장하기 위해 체결한다. 항공자유화협정(Open Sky Agreement)다. 한국은 지난해 말 현재 미국 중국 등 40여개국과 이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이 협정에 따라 대한항공 등 우리 국적 항공사는 한국과 체결 상대국간에 제한된 노선에만 항공기를 운항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에서 제3국으로 운항도 가능해진다. 3/4/5 운항 자유화 등급이 있기는 하지만, 만약 러시아와 항공자유화협정을 체결했다면, 대한항공이 기존의 인천~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등의 노선뿐만 아니라 모스크바~파리, 블라디보스토크~도쿄 노선과 같은 제3국 운항 노선도 개설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러시아와는 아직 정상적인 항공자유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다. 

미 공군 에어맨/사진출처:위키피디아

군사 부문의 '오픈 스카이'는 항공자유화조약에 의해 실현됐다. 조약 회원국 상공을 공중정찰이 가능하도록 열어 주겠다는 것이다. 사전에 비행계획을 상대국에 알려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상대의 눈을 피해 이뤄지는 위험한 비밀 첩보 정찰의 수요가 크게 줄어든 건 분명하다.

특히 우리에게는 악몽과 같은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고가 있다. 미국을 떠나 북부 항로를 따라 비행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1983년 9월 1일 러시아(당시 소련)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로 오인받아 격추당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당시, 항공자유화조약이 발효되고 있었다면, 소련 공군기 조종사가 그렇게 쉽게 격추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픈 스카이' 정책이 없었기에 소련군 조종사는 악천후 속에서 여객기를 미군 정찰기로 확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타깝게도 항공자유화조약은 대한항공 격추사건이 일어난지 근 10년이 지난 1992년 3월 24일 체결됐고, 또 10년이 지난 2002년 1월 1일 발효됐다.

미국과 러시아간에 상호 정찰 비행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보면 이 조약의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4가지 종류의 특수 촬영 장비를 탑재한 러시아 정찰기 ‘투폴레프(Tu)-154M’이 2014년 12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트래비스 공군기지를 이륙했다. 정찰기에는 미국측 감시단도 탑승했다. 항공자유화조약에 따라 약속된 비행 노선을 지키는지, 또 탑재 정찰 장비를 규정대로 가동시키는지 감독하기 위한 것. 2014년 들어 39번째이자 마지막 정찰비행은 엿새간 계속됐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이번에는 미국 정찰기 ‘OC-135B 오픈스카이’가 러시아 상공 순찰에 나섰다.

사진출처:오픈 소스

이 조약은 원래 1955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소련 측에 우발적인 핵전쟁 등을 막기 위해 서로 공중정찰 비행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 시발점이다. 그러나 핵전력 열세의 소련은 이 제안을 무시했고, 냉전 시절 내내 서로 비밀정찰기를 띄우는 아슬아슬한 경쟁이 지속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 대통령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오픈 스카이'는 다시 의제로 떠올랐고,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주도로 3년간의 협상 끝에 합의에 이르렀다. 그때가 1992년 3월. 이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나토국가는 물론, 캐나다 등 총 34개국이 가입했다. 35번째 회원국으로 이름을 올린 중앙아시아의 구 소련권 국가 키르기스스탄이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 1월 공식 발효후 지금까지 이뤄진 정찰비행은 모두 1,500회를 넘는다. 러시아는 2002년 8월 첫 번째 정찰기를 띄웠고, 미국 정찰기는 같은 해 12월 첫 비행을 했다.

미국, 항공자유화조약 탈퇴 발표/얀덱스 캡처

국제 조약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항공자유화조약을 흔든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러시아가 모스크바와 체첸 부근의 비행을 제한하는 등 조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 21일 조약 탈퇴를 선언한 것. 러시아가 발끈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튿날(22일) 외교 관련 화상회의에서 "미국의 항공자유화조약 탈퇴는 또다른 국제안보 체제 파괴 행위"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미국의 표면적 탈퇴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듯이 러시아의 조약 미준수다. 수도 모스크바와 남부 카프카스 지역의 체첸,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부근 비행을 제한하고 있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발트해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의 러시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서도 관측 활동이 어렵다고 미국측은 주장했다.

이 지역들은 러시아에게 아주 민감한 곳이다. 넓게 보면 남카프카스 지역에선 2000년대 들어 1,2차 체첸전쟁이, 또 구소련권의 그루지야(현 조지야)와 전쟁이 벌어진 지역이다. 칼리닌그라드는 급격하게 동쪽으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나토를 견제하기 위한 러시아의 전략 거점이다. 미국의 턱밑에 있는 쿠바처럼, 나토의 입안에 자리잡고 있는 칼리닌그라드다. 나토가 지난 2018년 러시아가 선택적으로 조약을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기술적인 작은 문제로 치부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우지 말라는 이야기다. 알렉산드르 그루슈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기술적인 문제를 이유로 조약 탈퇴를 정당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배격한다"며 "군사 분야의 모든 조약은 통상 아주 복잡한 것임을 전제로, 조약 체결 당시의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모든 문제는 협력과 이해 균형에 기반해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이 현재 러시아의 (조약) 위반으로 내세우려고 시도하는 기술적 문제들의 논의를 계속하는데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도 했다. 

미국은 이번 탈퇴 발표에 앞서 러시아 측에 문제 목록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분쟁에는 늘 이해가 엇갈리는 법. 러시아 측은 "미국의 문제 목록을 뜯어보면 거꾸로 미국이 조약의 심각한 위반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역공을 취하기도 했다. 조약에 규정되지 않는 무리한 요구도 목록에 들어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미국은 회원국들에게 탈퇴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6개월 후에는 비회원국이 된다. 러시아와 20년 가까이 해온 상대국에 대한 공중정찰도 막을 내리는 셈이다. 

다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조약의 완전한 준수로 복귀한다면 우리의 탈퇴를 재고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6개월 후면 미 대통령 선거다. 결국 11월 미 대선 결과가 항공자유화조약의 운명을 결정할 게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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