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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혁군주로 '대제'라는 칭호를 받는 표트르, 피도 눈물도 없었다는 그의 진면목 날짜 2017.10.09 14:45
글쓴이 이진희 조회 8
표트르 대제
        
            


'러시아 제국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표트르 대제(1672~1725). 1697~1699년에 평민으로 위장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을 돌아다니며 선진 문물을 접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과정에서 직접 배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조선소에 일한 것으도 유명한 그의 행적은 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러시아 역사 전문가인 린지 휴스(1949~2007)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는 그런 의문을 품고 '표트르 대제'(린지 휴스 지음|김혜란 옮김|모노그래프 652쪽|3만2000원) 을 통해 그의 행보를 연대기별로 추적한다. 당시 러시아 궁정에서 작성한 공식 일지, 표트르의 개인 서신, 서유럽 각국의 외교관·예술가·건축가들의 증언·보고서·회고록이 그의 집필 자료가 됐다. 

우선 감탄을 자아냈던 서유럽 탐방. 저자는 "표트르는 남 속이기를 좋아했고, 실제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집착'이 있었다"며 탐방 자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서민적이라 평민을 가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키가 2m가 넘는 장신 황제가 250명 규모의 사절단을 이끌고 움직이는데, 황제가 가명을 쓰고 평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누가 속아주기나 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서유럽에서 황제의 유람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네덜란드에서 그가 일했던 조선소는 '황제가 일한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정상적인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황제는 이전의 러시아는 이성과 지능을 사용하지 않고, 소문·미신·편견에 근거해 폭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했다"며 "표트르 대제는 야만적인 행동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극복해야 이성의 시대가 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썼다. 황제는 야만을 거부하지 않았다. 친아들이자 황태자였던 알렉세이를 고문치사하고, 정적은 죽은 자라도 부관참시하는 잔혹한 면모를 보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략적인 면모도 없지 않았다. 황제는 오스트리아로 망명한 황태자를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하고 러시아로 데려온 뒤 여론조작용 공개재판을 통해 황태자의 역모를 반개혁파를 공격하고 숙청하기 위한 기회로 썼다. 황태자에게 사형이 언도된 뒤에도 고문은 멈추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황태자를 지지한 소위 '반 개혁 세력'을 완전히 도려내기 위한 전략적 고문이었다. 결국 아들은 사형이 집행되기 전 고문 후유증으로 교도소에서 숨진다. 숨지기 전 마지막 고문 현장을 직접 지켜볼 정도로 '제국'을 위해 피도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닦아진 기초가 러시아 제국으로 성장한다.

그는 53세에 요로결석 합병증으로 숨졌다. 성공한 '개혁 군주'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잘못도 적지 않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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