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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의 러시아 읽기
제목 서로 책임 미루는 벨라루스 난민 사태, EU와 벨라루스 중 누구의 책임이 더 커? 날짜 2021.11.14 19:11
글쓴이 이진희 조회 161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추진하는 '벨라루스'가 다시 유럽연합(EU)에게 '공공의 적'이 됐다. 지난해 8월에는 대선 불복 시위대 탄압으로, 지난 5월에는 민항기 '라이언에어'(Ryanair)의 강제착륙으로, 이번에는 'EU권역으로 중동 난민들의 밀어내기'로 EU에게 '미운 털'이 박히는 중이다. 러시아도 덩달아 '배후 조종 국가'로 찍혔다.

EU측의 주장을 대변하는 서방 언론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그 이유는 원인 분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지루한 논쟁과 다름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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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벨라루스 국경지대 난민 사태 논의/얀덱스 캡처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입장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주장에 함축되어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최근 "서방이 오랫동안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강요하고 추진한 정책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난민들은 벨라루스를 떠나 유럽으로 가고 싶어한다. 유럽은 스스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미국 등 서방이 '중동의 봄' 어쩌구 하면서 기존의 권력 구도를 뒤흔들면서 내전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난민들이 자유와 꿈을 찾아 EU로 가겠다는데, 그걸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난민 발생을 초래한 닭이 책임져야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을 받아들인 달걀이 무슨 책임이 있느냐'는 항변이기도 하다.

이같은 주장에 일부 EU 회원국들도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인권을 내세워 기존의 '독재 권력'을 무너뜨렸다면,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난민 보호에 앞장서는 게 맞기 때문이다. 국경을 통제하고, 난민을 수용하지 않으려면, 난민을 받은 상대국을 비난하기에 앞서 격려하고 도와주는 게 순리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의 유럽의회 연설도 같은 맥락이다. 그란디 대표는 지난 10일 EU를 겨냥한 연설에서 "난민 문제에 대해 '저급한 해결책 경쟁'에 나서지 말라"며 "법치에 기반을 둔 EU는 더 잘해야 하고, 더 잘할 수 있다"고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무책임한 외국인 혐오, 장벽과 철조망 설치, 무차별적 구타, 폭력적 송환 같은 '반사적인 대응'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 사람들을 거부하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인권 보호 회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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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벨라루스 국경지대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난민들과 폴란드 군경/러시아 매체 rbc 동영상 캡처



그러나 이건 또 너무 이상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현실은 이미 그 선을 넘어섰다.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한 EU 회원국들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벨라루스 국경에 철조망 장벽을 설치하거나 무력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국경을 차단했다. 그러면서 벨라루스를 향해 '난민 밀어내기'를 EU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벨라루스와 폴란드·리투아니아 간에는 대선 불복 시위 사태로 지난해 여름부터 이미 서로 눈을 부라리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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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그룹, 벨라루스 '브루즈기' 인근 국경지대에서 폴란드로 진입/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벨라루스의 난민 문제는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벨라루스 당국이 그때부터 EU로 '난민 밀어내기'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중동지역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가장 손쉬운 루트로 벨라루스를 택했다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지중해를 통해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으로 향하는 루트는 이미 5~6년전에 너무 위험하고 어렵다는 게 입증됐다.

난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벨라루스에 체류 중인 중동 지역 출신 난민 수천 명이 지난 8일 폴란드 국경 지역으로 몰려들어 국경을 넘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EU 측은 벨라루스가 의도적으로 난민들의 국경 진입을 조장했다고 하고, 벨라루스 측은 '난민들의 자유 의지'. '역부족'이라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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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지대 철조망을 절단하려는 난민을 향해 폴란드 군경이 최루가스를 뿌리고 있다/러시아 매체 rbc 동영상 캡처



객관적으로 벨라루스는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반정부 시위를 막듯이 막을 수는 있지만, 그건 또 새로운 인권탄압 시비를 부를 게 뻔하다. 국내 제반 여건도 신종 코로나(COVID 19) 팬데믹(대유행)에 EU의 경제 제재마저 겹쳐 최악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대통령이 러시아와 '국가연합' 추진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EU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EU의 대 벨라루스 제재에 보복을 가하기 위해 러시아 등 10여 개국에서 항공기를 통해 난민들을 민스크로 실어나르는 것으로 보고, 관련 항공사를 제재하거나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제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즉각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막거나 국경을 폐쇄할 것이라는 경고로 맞불을 놨다. 양측의 대치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러는 사이, 국경 지역의 임시 천막에 거주하는 수천명의 난민들은 식수와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임신부나 젖먹이들은 추운 겨울, 차가운 땅 위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또 민스크 인근에서 단체로 새우잠을 자며 국경 대치 상황을 지켜보는 난민들의 속도 타들어간다. 국경 지역에 모인 난민 수는 2천~5천 명, 민스크 등 벨라루스에는 1만4천 명 가량의 난민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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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 난민들을 위해 세운 임시천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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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지대에 몰려든 난민들이 장작으로 불을 피워 추위를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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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피울 장작을 확보하기 위해 차량위로 몰려든 난민들/러시아 매체 rbc 동영상 캡처



러시아 온라인 매체 rbc는 지난 12, 13일 벨라루스 국경 지역에 집결한 중동 난민들과 민스크에 체류 중인 난민들에 대한 현지 르포 기사를 잇따라 게재했다. '철조망 뒤에서 (불을 피울) 장작을 들고: 난민들은 왜 폴란드로 넘어가려고 할까?'(С дровами за проволокой: почему беженцы пытаются прорваться в Польшу)와 '민스크가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그들이 EU와의 국경으로 아직 서둘러 가지 않는 이유' (Как Минск принимает мигрантов и почему они пока не спешат на границу с ЕС)다.

rbc 르포(동영상과 기사)에 따르면 난민들은 주로 이라크 등지에서 여행사를 통해 단체로 민스크로 온다. 여행 경비로 2,400~5,000 달러를 줬다고 했다. 도착한 여행객 중 일부는 며칠 뒤 국경지역으로 떠나고, 나머지는 민스크에 남아 상황을 지켜본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며칠동안 이들은 국경지역으로 서둘러 떠나지 않았다.

중동 사람들의 집결지는 민스크의 '승리대로' (на проспекте Победителей)에 있는 '갤러리 민스크' (Галерея Минск) 쇼핑센터 주변이다. 쇼핑센터로 이어지는 지하도 입구에는 중동 여행객들이 배낭과 침낭을 메고 앉아 있거나 서성이고 있었다. 또 ATM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쇼핑센터 안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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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크 쇼핑센터 인근에 몰려 있는 중동 난민들. '100여명의 난민들이 짐보따리를 들고 몰려 있다'는 자막이 떠 있다/사진출처:rbc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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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크 시내에 삼삼오오 몰려 있는 중동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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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센터 안팎에서 서성거리는 난민들/rbc 르포 동영상 캡처


그들은 대부분 민스크에 도착한 뒤 폴란드가 국경을 폐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30일짜리 벨라루스 여행 비자는 아직 유효하지만, 호텔 체류 기간은 이미 끝나 하루 10달러짜리 원룸 아파트(불법 호스텔)로 옮겼다고 했다. 한 중동인은 "민스크로 온 사람들은 주로 쿠르드족 출신들"이라며 "민스크 여행 상품에는 3성급 호텔 유빌레이니 (Юбилейный)나 플라네트 (Планет) 숙박이 며칠 포함돼 있지만, 곧 인근 저렴한 숙소로 옮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쿠드르족은 이라크와 시리아 터키 등지에서 넓게 떠도는 유랑민족이다. 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미국 등 서방의 대 중동 전쟁에 적극 참여했지만, 이제는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쿠르도족 출신이라는 한 중동인은 "많은 사람들이 인종청소와 탄압을 피해 집과 재산을 팔고 해외로 떠난다"며 "당신도 빈곤과 생존의 위기에 처하면, 살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EU와 벨라루스(러시아)가 닭과 달걀 논쟁을 벌이는 사이, 중동 난민들에게 춥고 긴 동토의 겨울이 닥쳐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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