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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러시아혁명 시기를 스탈린 대숙청기간인 1938년까지로 연장한 책 '러시아 혁명..' 날짜 2017.12.29 08:58
글쓴이 이진희 조회 274


독재자 스탈린의 대숙청 시대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한 '러시아혁명사' 책의 개정판이 나왔다. '러시아혁명 1917-1938'(쉴라 피츠패트릭 지음, 고광열 옮김, 사계절, 1만8000원)이다. 지난 1982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국내에도 1990년 번역 발간됐으나, 이후 소련 붕괴뒤 러시아 문서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개정된 '2017년 개정 4판'이 다시 완역돼 나온 것이다. 

피츠패트릭 미국 시카고대 명예교수는 4판 서문에서 “1991년 이후 이용 가능해진 새로운 사료와 최근의 국제 학계 연구를 포함시켰다”고 말한다. 저자는 스탈린 대숙청 시기를 러시아혁명의 기간속에 넣고 분석한다. 제목이 '러시아 혁명 1917~1938'인 것도 그 때문이다.

1917년 10월혁명 이후 ‘네프’(NEP·신경제정책), 네프를 끝낸 스탈린 체제, 스탈린 체제의 정점이었던 대숙청 등 세 가지는 러시아혁명의 기간을 설정하고 성격을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논쟁적인 쟁점들이다. 저자는 스탈린 체제의 ‘위로부터의 혁명’은 단지 상층 지도부의 일탈이나 배반이 아니라, 혁명적 대중의 지지에 기반을 뒀으며, 그런 점에서 “레닌의 혁명과 스탈린의 혁명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논리는 이렇다. 10월혁명에 이어 내전에서 승리한 볼셰비키는 곧 행정적 혼란과 경제적 파탄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 1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혁명의 물결도 가라앉아, 소비에트 체제는 홀로 남겨졌다. 레닌 등 볼셰비키 세력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최종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자본 축적을 위한 ‘전략적 후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산업의 완전한 국유화를 포기하고 사적 부문을 허락하는 등 ‘신경제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네프는 당시 혁명 지도부와 대중에게 ‘반동’의 불안감을 안겨줬던 게 사실이다. 그러한 불안감을 제거하기 위해 스탈린이 나섰다. 네프를 철회하고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다시 내세운 것이다. 저자는 레닌의 혁명이 잠시 ‘전략적 후퇴’를 한 것을, 스탈린 혁명이 원래 궤도로 올려놓았다고 본다. 부르주아들은 대거 축출당했고, 국가는 다시 경제를 장악했다.

소비에트 체제는 농촌의 대대적인 집단화를 근대화·공업화의 기틀로 삼고자 했다. 경찰력은 크게 강화됐고, ‘계급의 적’은 ‘굴라크’(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체제가 단지 ‘위로부터의 혁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볼셰비키는 10월혁명 이후부터 노동자계급에서 당원들을 모집하고 이들을 꾸준히 사무·행정·관리직으로 보내는 등 ‘프롤레타리아 발탁’을 이어왔다. 스탈린 체제의 소위 ‘문화혁명’ 기간에는 노동계급의 ‘지위 상향 이동’이 더욱 급격하게 이뤄졌다. 자료에 따르면 1933년말 소련에서 ‘지도 간부직이나 전문직’으로 분류된 86만1000명 가운데 6분의 1이 넘는 14만명 이상이 5년 전만 하더라도 생산직 노동자였다. 제1차 5개년 계획 동안 사무직으로 옮겨간 총 노동자 수는 최소한 150만명이었다. 노동자 출신의 관료화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단순히 권력장악과 정척 추방을 위한 대숙청이 아니라 혁명 체제의 완수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대중의 참여가 없었다면 근본적인 권력 이동은 물론, 궁극적으로 소비예트 체제의 중추로 노동자 계층이 등장할 수 없었다는 논리로 스탈린 시대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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