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제네바 미-러-우크라 3자 평화협상→
2월 말 미국의 대(對)이란 선제 폭격으로 전쟁 발발 →
3자 평화협상 사실상 중단→
3월 미-우크라 미 플로리다 회동→
4월 미 대표단의 키예프(키이우) 방문 (기대) 무산, 젤렌스키 대통령 러-우크라 정상회담 제안→
5월 루비오 미 국무장관 "평화협상 중단" 확인→
6월 미-러 접촉설, 러-우크라 간 정상회담 장소 논쟁→
8월 랫클리프 미 CIA 국장 모스크바 방문→
9월 1일 푸틴 대통령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로 진행 중", 우샤코프 크렘린 보좌관 "미-중-러 정상회의 가능성" →
미 대통령 특사 5일 모스크바, 6일 키예프 방문
오랜 기다림 끝에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미-러-우크라 3자회담을 중재해온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 사위 제러드 쿠슈너가 5, 6일 모스크바와 키예프(키이우)를 잇달아 방문,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났다.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의 키예프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다.


주목할 것은, 푸틴 대통령과 달리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트럼프 미 대통령과 평화 정착을 위한 세부 내용을 조율해온 기존의 틀이 깨졌다는 사실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까지 7차례(이번이 8번째 만남)나 위트코프 특사와 평화안을 검토해 왔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메로프 국가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등 실무진을 미국으로 보내 위트코프 특사와 상대하도록 했다. 자신은 G7 정상회의나 나토 정상회의, 워싱턴 방문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해 왔다.
또 미-러 간의 접촉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반면, 미-우크라 접촉은 의도적으로 유출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5일 위트코프 특사의 크렘린 방문에서도 양측은 협의 내용을 함구하기로 했다고 우샤코프 크렘린 대외담당 보좌관이 설명했을 정도다.
반면, 몇 차례 진행된 미-러-우크라, 미-우크라 협상에서 미국 대표단이 우크라이나 측(단장 예르마크 전 대통령 실장)에 협의 내용의 실시간 외부 유출에 항의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짐작했겠지만, 위트코프 특사의 모스크바, 키예프 방문시 협의 내용이 공식적으로 확인 혹은 발표된 것은 거의 없다. "회담이 실질적인 것이었다"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매우 유익했다" 는 등 두루뭉실한 외교적 언사가 전부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귀국한 위트코프 특사는 7일 엑스(X)을 통해 협상 과정을 설명하면서 3자 회담 재개 등 몇 가지 진전을 이뤘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 특사들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수요와 관련 기술 협력, 필수적인 동계 대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공개한 게 더 구체적일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회담 내용을 추측하는 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협상에서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조건들이 이미 다 알려져 있고, 위트코프 특사와의 만남 뒤에 나온 러-우크라 반응 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 특사들의 모스크바, 키예프 방문을 앞두고 언론의 관심은 앞선 3자 회담에서 제시된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철수 등 기존 평화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제안을 내놓을 것인가에 쏠렸다.
안타깝게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제안이 나왔다는 징후는 없다. 서방 외신은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고 보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은 돈바스 철수, 우크라이나의 중립 지위 보장, 러시아어 사용권 보장 등 러시아의 조건이 유사하다고 전한다.
물론, 이같은 보도가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도 돈바스 문제가 핵심적인 의제에 올라 있다고 했고, 모스크바 측의 만남 뒤 논평도 비슷한 맥락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문제들에 대해 매우 명확하게(?) 여전히 '거부한다' 뜻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영토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 측에 여러 차례 정상회의를 제안했지만, 너무나 자신만만한 러시아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이 겨울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특사들은 11월 총선 전에 전쟁을 끝내기로 작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론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철군 없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겨울에도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돈바스 철군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전쟁은 11월에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그 배경에는 △러시아 후방을 공격하는 '40일 작전'으로 러시아가 평화 협상에서 양보할 수밖에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러 정상 간의 '앵커리지 정신(합의)'를 포기하고 대(對)러 압력을 강화(사망한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의 제재안/편집자)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고 짚었다. 랫클리프 미CIA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 목적을 대러 압박으로 분석한 미 언론(월스트리트저널·WSJ)들의 흐름과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빗나갔다. '40일 작전'은 우크라이나가 방공망 붕괴로 러시아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결과를 낳았고, 대러 제재안은 여전히 미 하원에 묶여 있다.

러시아가 총선(9월 20일) 이후 새로운 협상(3자 회담 재개)에 참여하더라도(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의 엘리제궁 인용 보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단 '버티자'는 전략을 계속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완전한 정전만은 피한 상태에서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든 버티면, 러시아가 공습만으로는 평화 협상에 대한 키예프의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1단계, 러시아 본토에 대한 장거리 공격으로 경제에 지속적인 타격을 가한다는 2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최전선이 러시아의 공세에 무너지지 않으면, 모스크바가 종전의 요구 조건을 완화할 것이라는 3단계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가 오히려 심각한 경제, 사회적 문제로 내부 불안정(예를 들면 반전 대규모 시위)을 견디다 못해 종전 조건에 대해 크게 양보할 것으로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믿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시나리오에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기대가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속한 종전을 위해 군사정보 제공 중단과 같은 과격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유럽이 정치·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재정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기대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실제로 이같은 전략을 추진한다면 평화 협상은 재개되더라도 곧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고민은 방공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러시아의 개량 (제트 추진형) 드론및 미사일 공격으로 국민들의 삶이 더욱 험난해질 것이라는 불길한 현실론에 있다. 끊임없는 공습 사이렌과 유통 업체의 물류망 파괴, 해상 수출 봉쇄에 따른 농민들의 한숨,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권력형 비리, 국가 보안국(SBU)와 군 정보총국(GUR) 간의 도심 총격전 등으로 가뜩이나 뒤숭숭한 민심이 전기와 난방, 물, 식량 부족이 현실화할 경우, 어떻게 요동칠지 모른다. 영토 양보를 통해서라도 조속한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권력형 부패 스캔들 등으로 지지도가 추락 중인 젤렌스키 정권이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를 위해 싸우자고 호소하더라도 이전보다는 설득력이 훨씬 떨어질 게 분명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유럽의 정치·경제적 풍향계도 주목을 받는다. 유럽 국가들은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젤렌스키 정권을 언제까지 대가 없이 도울 것인지 고민스럽다. 조금씩 우크라이나의 부패 구조를 파헤치는 서방 주요 언론들의 시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미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6일 우크라이나 국방부 내 만연한 부패와 비효율적인 조달 관리 실태를 전하면서 "2024년 한 해에만 우크라이나 국방예산 12억 달러가 사기 및 횡령으로 사라졌으며, 이러한 행위가 처벌을 받기는커녕 새로운 무기 공급 계약으로 보상받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 감사기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크라이나 10대 방위산업체 중 7곳이 사기, 계약 불이행, 부패 임원의 체포 등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계약을 따낸 것으로 나타났다"고 개탄하면서 "18개 업체는 기존 계약의 미이행 상태에서, 6개 업체는 단 하나의 계약도 이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계약을 따냈다"고 지적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우크라이나의 2024년 국제 미사일 입찰 과정이다. 튀르키예(터키)와 체코 등의 업체 세 곳이 입찰에 참여했는데, 제공 미사일을 직접 생산하는 아르카 디펜스(터키 방산업체)가 최저가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낙찰은 최고가를 써낸 체코 대형 방산업체의 자회사로 돌아갔다는 것. 체코 업체가 제공하기로 한 미사일도 아르카 디펜스가 제작한 미사일이어서 우크라이나는 결과적으로 1억 5천만 달러를 낭비했다는 것이다.
NYT는 "이 계약은 체코 방산업체를 세계적인 방위산업 대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기여한 수많은 우크라이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면서 "이 회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33세의 대주주 미할 스트르나드를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에서 가장 부유한 무기 제조업자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반부패 전문가 제임스 바서스트롬은 NYT에 "우크라이나에서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훔칠 수 있다"며 "이는 오랜 전통"이라고 비꼬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주장하는 우익 정당들이 유럽 내부에서 점점 더 지지를 얻고 있다. 6일 치러진 독일 동부(구 동독지역)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44%에 가까운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미 특사단의 귀국 후 크렘린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7일 "미국 협상단의 방문 이후 양국 대통령 간 전화 통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3자 회담 재개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회담 장소와 시기를 논의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일찌감치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단으로부터 모스크바, 키예프 방문 보고를 받은 뒤 푸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위트코프 등 미 특사단과의 회담이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두 차례의 패널 토론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안보보좌관들이 회담에 합류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회담에서 "이미 모스크바에서 중요하고 타당한 여러 아이디어들을 논의했고, 이를 키예프로 가져왔다"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 양보하고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미 특사단은 전날(5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크렘린은 "푸틴 대통령이 미 특사들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대해 3시간 이상 매우 유익한 회담을 가졌다"고 발표했다. 또 우크라이나 문제 외에도 미-러 간의 대규모 프로젝트 등 경제 협력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샤코프 크렘린 대외 담당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이 미 특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선 상황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전달하고, 분쟁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미 특사단은 이를 우크라이나 측에 전달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 특사단은 이번 방문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치하하면서 "그들은 전투의 조속한 종식에 대한 기존 입장을 표명했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해결 방안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쿠슈너는 회담 후 "이번에는 우리가 그동안 논의했던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에 초점을 맞췄다"며 "러시아는 무엇을, 우크라이나는 무엇을, 전 세계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서로 많은 질문을 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평화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더 자세한 패키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대표단이 모스크바에 전쟁 종식을 위한 새로운 미국 측 제안을 전달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미 특사단의 방문에 앞서 푸틴 대통령이 특사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사흘간 키예프를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군이 월요일까지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