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Feb 2026

반러, 반북한 성향의 란코프 교수가 러시아 극혐 라트비아에서 추방되다니.. 왜?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 출신으로 2004년부터 국민대 교수로 재직 중인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가 구소련의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에서 북한을 주제로 한 특강 직전에 체포돼 강제로 추방됐다는 소식에 "왜?"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소련 붕괴로 독립한 라트비아는 나토(NATO)와 유럽연합(EU) 회원국. 발트해의 이웃 국가인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극도로 반발한 반러 성향의 국가다. 전쟁 직후 러시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이듬해(2023년)에는 라트비아 주재 러시아 대사를 추방했다. 거칠게 말하면 외교 단절 조치다. 라트비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가 자국을 침공할 것으로 우려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북한은 쿠르스크주(州) 영토 탈환에 나선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해 도운, 사실상 러시아의 '혈맹'이나 다름없다. 란코프 교수는 전쟁 이후 러시아에 의해 비우호적인 국가로 분류된 한국에서 20년 이상 북한을 연구해 왔으니, 기본적으로 친(親)러, 친북 성향이라기 보다는 반(反)러, 반북한 성향을 띠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013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을 방문해 대북정책에 대해 조언하기도 한 전문가다.

국내 언론에 따르면 란코프 교수는 냉철하고 현실적인 대북관을 바탕으로 "북한 정권은 제한된 자원을 쥐어짜며 체제 생존을 위해 강대국을 교묘히 조종하는 '마키아벨리적 정권'"이라고 비판해 왔으며, '조국'인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군사작전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또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남침할 수 있다” “김정은은 수십만 주민이 굶어 죽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 이라는 등 북한 체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물론, 그는 최근 NK뉴스 기고문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의 전략적 입지가 강화됐다고 평가하며 국제사회가 ‘비핵화라는 낡은 환상’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란코프 교수의 텔레그램에 따르면, 그는 북한의 권력층을 주제로 한 유럽 순회 특강의 첫번째 강연을 위해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도착했다. 24일 리가 강연을 시작으로 25일 에스토니아 탈린, 27일 룩셈부르크, 28일 리스본, 3월 2일 더블린 순으로 이어진다. 현지 기획사 큐리오소피 이벤트(Curiosophy Events)가 마련한 특강의 제목은 '북한:권력층이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라트비아 당국도 란코프 교수의 특강을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왜 그는 강연 시작 30분 전에 들이닥친 라트비아 경찰에 의해 연행됐을까?

그의 연행및 추방을 가장 먼저 보도한 러시아 매체 rbc 에 따르면 란코프 교수는 24일(현지시간) 강연을 준비하던 중 현지 경찰에 체포돼 인근 에스토니아로 추방됐다. 그는 언론과 주변 사람들에게 라트비아 외무장관이 자신을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곧바로 추방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스토니아에 도착한 뒤 그는 텔레그램에 '라트비아에서의 추방에 대해'(О выдворении из Латвии)라는 글을 올렸다.

그의 상황 설명은 이렇다.

"강연 시작 30분 전, 경찰과 이민국 직원들이 와 입국 금지 대상자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즉시 추방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민국으로 연행해 몇 가지 절차를 거친 뒤 자동차로 에스토니아 국경(검문소)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줬다."

그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라트비아 외무부가 왜 자신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는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추방) 공식 문서에도 설명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는 30년 만에 라트비아에 가 고작 4시간 머물렀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텔레그램에 "전체적으로는 모두 충분히 이해된다. 내가 실제 상황에서(즉, 현실을 근거로) (북한을)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희화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윗선에서는 마음에 안들 것"(в общем-то всё достаточно понятно. Начальникам не нравится то, что я из реальной ситуации не делаю политически полезную карикатуру)이라고 썼다.

주목할 것은 '(북한을) 정치적으로 희화화하지 않는다'는 윗선의 불만이다.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 체제나 현실을 더 왜곡하고, 소위 '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란코프 교수가 지난 2월에 텔레그램에 올린 '김정은 후계자'(딸 김주애)에 관한 글/캡처


란코프 교수는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에 "그들(윗선)은 나의 글쓰기 스타일이 지나치게 객관적이라고 보고, 그것을 문제로 여기는 것 같다"며 "나는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말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할 때도 있다"라고 밝혔다.

란코프 교수는 이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는데, (내가) 북한 전문가라는 말을 듣고 긴장감이 고조된 게 아닐까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라트비아 정부의 과민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갈수록 심각하고 어려워지는 국제 상황을 감안하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여기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점은 그가 러시아 태생이고, 러시아 국적(호주와 이중 국적)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63년 소련의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란코프 교수는 레닌그라드국립대학(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 동양학과를 졸업(1986년)하고, 구한말의 4색 당파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에는 교환학생으로 북한에 유학하기도 했다.

rbc에 따르면 라트비아는 전쟁 이후 러시아인들에게도 제재를 가했다. 2024년 6월 말 이민법을 개정해 러시아인의 거주 허가 갱신시 라트비아어 시험을 치르게 했다. 20년 이상 살았더라도 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거주 허가를 갱신해주지 않는다.

이에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난하고, 그해 10월 외교 채널을 통해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위반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라트비아는 오히려 지난해(2025년) 6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 인근에 부동산을 가진 러시아인들의 입국을 금지했다. 앞서 그해 2월에는 라트비아 내무부가 자국민들에게 "지정학적 상황이 악화될 경우 국경 폐쇄 위험이 있다"며 러시아와 벨라루스 여행의 자제를 권고했다. 또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러시아 선수들의 입국을 막기도 했다.

이쯤되면 북한에 유학하고, 북한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강연하고 글을 쓰는 러시아인(란코프 교수)을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생각은 편견일 수도 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을 (한국인들처럼) 감정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러 기질을 지닌 학자로 분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란코프 교수는 지난해 4월 모스크바 사벨로프스키 지방법원으로부터 행정처분법 제20조 33항(러시아에서 비우호적인 외국 또는 국제 단체의 활동에 참여한 행위) 위반 혐의로 1만 루블의 벌(칙)금을 부과받았다. 현지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의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기자와 카네기 재단 모스크바 센터의 사모 루코프 부편집장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당시 란코프 교수는 rbc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을 통해 러시아 법원의 행정 처분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아마도 인터뷰를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카네기 재단의 활동에 참여한 것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카네기 재단은 2024년 7월 러시아 법무부에 의해 비우호적인 단체에 등재됐다.

옐친 초대 러시아 대통령 집권기인 1994년 러시아에 설립된 카네기 재단의 러시아 지부(모스크바 센터)는 2022년 4월 러시아 내 국제기관 및 외국 비정부기관의 지부(대표 사무소) 등록부에서 삭제됐다(등록 취소). 그해 9월 러시아 지부는 문을 닫았다. 러시아 법무부는 이어 2023년 4월 카네기 재단을 외국 에이전트(대리인)으로 지정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란코프 교수의 라트비아 추방은 중첩된 요인에 의해 단행된 것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반러 성향 라트비아 외교당국의 실책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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