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축하 인사가 길 이유는 없었고, 나머지 시간은 15~17일 파리 에비앙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잡는데 할애됐다.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MK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G7 호스트(개최국)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G7 정상회의에는 회원 7개국뿐 아니라 중동 4개국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대표단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10일 발표했다.
첫날(15일)에는 G7 정상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초청됐다. 둘째날(16일)에는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등 중동 정세를 논의하는데,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가 참석한다. 또 이날 남북반구 간 협력 증진을 위한 특별 회의가 열린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 대표들과 한국, 브라질, 인도, 케냐가 초청 대상이 됐다.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첫째날 회의의 분위기에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은 14일 "푸틴-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날 거의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다"며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정상이 소위 (미-러 정상회담의) '앵커리지 합의'를 둘러싸고 벌인 기싸움"이라고 짚었다. 통화에서 두 정상 모두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거론했지만, 그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대외담담 보좌관은 14일 "55분에 걸친 양 정상 간의 전화 대화는 친근하고 솔직했다"며 "양국 정상은 두 나라 간의 관계는 물론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곧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키예프(키이우)와 유럽 파트너들에게 (전쟁 종식을 위한) 압력을 가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키예프가 러시아의 민간 기반 시설을 파괴하려는 작전도 전장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는 게 우샤코프 보좌관의 전언이다. 그는 또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와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푸틴-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한 것은 러시아의 전승 기념일(5월 9일)을 열흘 가량 앞둔 4월 29일. 이날 푸틴 대통령은 승전 기념일을 전후한 휴전 선언 계획을 알렸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공개하며, 지지를 표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러시아 주도의 휴전에 동의해야 했다. 하지만 미-러 관계는 5월부터 소원한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앵커리지 미-러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에서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아직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다만, 알렉산드르 다르치예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전승기념일이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전승 기념일 휴전 합의/편집자)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고, 알렉세이 드로비닌 러시아 외무부 외교정책기획국장도 세르비아 신문 폴리티카와의 인터뷰에서 "양국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양자 대화 재개에 협조적이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30여분간에 걸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평화 협상의 판을 바꾸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전황이 우크라이나 우위로 바뀌고 있다"며 "(미국이 제시한)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철수와 미국의 전후 안보보장 제공 방식이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우크라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각각 '앵커리지 합의'를 바탕으로 한 협상 재개를, '앵커리지 합의' 방식의 평화 협상 불가론을 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요청했다. 그는 이날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전쟁과 평화, 전장 상황, 외교적 기회, 파트너들의 입장 등에 대해 자세히 논의했다"면서 "'우크라이나의 입지가 최근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G7 정상회담에서 논의를 계획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과 함께 이번 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2시간 가량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협의하되, 단독 회담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성사시켜 지난 8일 영국 런던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간에 합의된 5개 항의 전쟁 종식 방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존의 입장(앵커리지 합의)을 바꿔줄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 정치전문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야 할 세 가지 과제를 갖고 G7 정상회의에 임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산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 등의 신속한 우크라이나 제공과 △미국의 대(對) 우크라 지원 재개 △유럽의 전쟁 종식 방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및 대(對)러 제재 강화 등이다.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국내 생산 허가를 요청했으며, 생산한 미사일을 독일에 넘겨주는 것을 전제로 독일의 비축 미사일을 먼저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유럽연합(EU)이 제공하기로 한 900억 유로의 차관 외에 최근의 전장 우위 상황을 굳히기 위해 최소 200억 유로의 추가 자금을 G7에 요청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유럽 국가들은 G7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와 지난 8일 마련한 5개항의 전쟁종식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 방안에는 현전선에서의 전투 중단과 유럽국가들의 우크라이나 파병 등이 포함된다. 궁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앵커리지 합의' 포기를 설득하겠다는 뜻이다. 푸틴-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대면 회담(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우샤코프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젤렌스키 (대통령)가 만나기를 원한다면 모스크바로 오도록 하라'고 권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평화 논의를 피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주장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과거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에 중립 지역에서 만나자고 수정 제안한 바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