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가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자작나무와 낙엽을 먼저 떠올린다. 긴 겨울을 앞둔 쓸쓸한 풍경, 푸시킨이나 투르게네프의 문장에 나올 법한 적막한 숲도 함께 떠오른다. 그런데 러시아의 가을이 늘 그렇게 조용하고 서정적인 계절만은 아니었다. 농촌의 가을은 오히려 아주 바쁘고, 시끄럽고,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는 노동의 계절이었다. 들판에서는 밀과 호밀을 베어야 했고, 겨울을 나기 위한 곡식을 가능한 한 빨리 거두어야 했다. 개인이 혼자 천천히 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 러시아의 계절과 생활을 음악으로 옮긴 작품이 바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사계》(Времена года, Op.37a)다. 그 가운데 10월의 곡 〈가을의 노래〉(Осенняя песнь)는 수확 후의 고즈넉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차이콥스키의 《사계》라고 하면 흔히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한 곡씩 모두 열두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단순한 계절 음악이라기보다 19세기 러시아의 한 해를 기록한 음악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187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던 음악잡지 《누벨리스트》(Нувеллист)를 위해 쓰였다. 발행인 니콜라이 베르나르가 차이콥스키에게 매달 그 시기의 풍경과 생활에 어울리는 피아노곡을 한 곡씩 써달라고 의뢰했고, 그렇게 한 해 동안 열두 곡이 차례로 발표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 안에 자연뿐 아니라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1월에는 〈화롯가에서〉, 2월에는 러시아의 겨울 축제인 〈마슬레니차〉가 나온다. 3월에는 〈종달새의 노래〉, 4월에는 〈설강화〉, 5월에는 〈백야〉, 6월에는 〈뱃노래〉가 이어진다. 그러다가 7월에 이르면 〈풀베는 사람의 노래〉가 나오고, 8월에는 〈수확〉, 9월에는 〈사냥〉, 10월에는 〈가을의 노래〉가 등장한다. 11월의 〈트로이카〉를 지나 12월의 〈성탄절〉까지 듣고 나면, 러시아의 한 해를 한 번 살아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사계》는 자연을 바라보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그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음악이기도 하다. 일종의 음악으로 쓴 러시아의 세시기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계》를 들을 때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이 있다. 각각의 곡 앞에 러시아 시인들의 시구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푸시킨, 페트, 네크라소프, 콜초프, 알렉세이 톨스토이 같은 시인들의 문장이 음악과 나란히 놓인다.
이 때문에 《사계》는 단순히 피아노곡만 듣는 것보다 제목과 시를 함께 읽으면서 들으면 훨씬 재미있다. 음악이 먼저 어떤 풍경을 만들고, 그 위에 시가 다시 의미를 얹어놓는 느낌이 있다. 러시아 음악과 문학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한 계절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셈이다. 특히 7월과 8월의 곡은 농민의 노동을 아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흔히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귀족의 살롱이나 극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에는 낫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몸과 노동이 들어 있다. 그 점이 이 작품을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
7월의 곡은 〈풀베는 사람의 노래〉, 러시아어로 《Песнь косаря》다. 여기서 ‘косарь’는 낫으로 풀을 베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 러시아 농촌에서는 긴 자루가 달린 낫을 크게 휘두르며 풀을 베었고, 그 풀은 건초가 되어 겨울 동안 가축의 먹이가 됐다. 이 곡에 붙은 알렉세이 콜초프의 시구도 아주 직접적이다. “Раззудись, плечо! Размахнись, рука!” 우리말로 옮기면 “어깨여, 힘껏 움직여라. 팔이여, 크게 휘둘러라” 정도가 된다. 문장을 읽는 순간 사람의 몸이 먼저 보인다. 낫질은 일정한 리듬을 필요로 한다. 너무 빠르면 오래 할 수 없고, 너무 느리면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몸의 움직임과 작업의 속도가 하나의 박자를 만들어내는데, 차이콥스키의 음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동은 8월에 이르러 본격적인 수확으로 이어진다.
《사계》의 8월은 〈수확〉, 러시아어로 ‘Жатва(좌트바)’다. ‘жатва’는 곡식을 베어 거두는 추수 또는 추수철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이 곡에도 콜초프의 시가 붙어 있다. “Люди семьями Принялися жать…” 사람들이 가족끼리 추수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구절에서 ‘가족끼리’라는 말이 중요하다. 수확은 개인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곡식을 베고, 묶고, 옮기고, 다시 다음 줄로 이동해야 한다. 날씨를 봐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가능한 많이 끝내야 한다. 그래서 수확철에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서로의 속도를 맞춰야 한다.
차이콥스키의 〈Жатва〉도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울한 러시아 음악과는 상당히 다르다. 빠르고 힘이 있고, 같은 음형이 반복되면서 음악이 앞으로 계속 밀고 나간다. 풍요로운 들판의 기쁨도 있지만, 나는 이 곡을 들으면 오히려 “오늘 안에 어디까지 끝낼 것인가”를 계산하는 노동의 긴장감이 먼저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것은 7월, 8월, 10월을 이어서 들었을 때다. 7월에는 낫을 휘두르며 일하는 사람의 몸이 있고, 8월에는 그 노동이 수확의 절정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10월이 되면 음악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10월의 곡은 〈가을의 노래〉(Осенняя песнь)다.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의 “Осень, осыпается весь наш бедный сад…”라는 시구가 붙어 있다. “가을, 우리의 쓸쓸한 정원에서 잎이 모두 떨어진다”는 뜻이다.
8월의 음악이 분주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10월은 느리고 가라앉는다. 수확이 끝난 들판,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 떨어지는 잎과 길어진 저녁이 음악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이 세 곡을 차례로 들으면 하나의 작은 서사가 만들어진다. 7월에는 일하고, 8월에는 거두고, 10월에는 그 모든 일이 끝난 뒤의 정적을 맞는다. 결국 계절이라는 것은 단지 기온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방식도 함께 바뀌는 시간.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예술음악의 방식으로 농촌의 노동을 표현했다면, 실제 러시아 농민들에게는 수확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다. 러시아어로 ‘жатвенные песни’ 혹은 ‘жнивные песни’라고 불리는 추수 노래다. 이 노래들은 단순히 일의 박자를 맞추기 위한 노동요만은 아니었다. 수확을 시작할 때 부르는 노래,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마지막 곡식단을 베면서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고, 지역에 따라 여러 의례와 결합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에서 수확은 단순히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긴 겨울을 어떻게 버틸 것인가가 결정되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서 수확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전체의 큰 사건이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Жатва〉를 들으면 음악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냥 밝고 빠른 피아노곡이 아니라, 한 해 동안 자란 곡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들판에서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9세기 러시아의 호밀밭과 지금 한국의 들녘은 당연히 다르다. 작물도 다르고 도구도 다르고, 당시 러시아 농민들이 낫으로 곡식을 베었다면 지금 한국 농촌에서는 대부분 콤바인이 벼를 베고 탈곡까지 한꺼번에 한다. 하지만 수확철의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다. 한국에서도 10월이 되면 들판의 색이 달라진다. 여름 내내 푸르던 벼가 누렇게 익고, 농민들은 날씨를 보면서 벼를 언제 벨 것인지 결정한다. 예전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논으로 나가 낫으로 벼를 베고 볏단을 묶었지만 지금은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한다.
그래도 비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하고, 쓰러진 벼가 많으면 작업이 늦어지고, 어느 논을 먼저 벨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에 몇 마지기를 끝낼 수 있는지, 수확한 벼를 어디로 옮길지, 건조는 어떻게 할지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 농기계가 들어왔다고 해서 자연의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의 벼베기 풍경을 떠올리면서 차이콥스키의 8월 〈수확〉을 들으면 음악이 의외로 낯설지 않다. 빠르게 이어지는 선율은 단순한 흥겨움이라기보다, 익은 곡식을 정해진 시간 안에 거두어야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처럼 들린다.
19세기 러시아 농민들이 호밀을 베던 풍경과 오늘날 한국 농민들이 벼를 수확하는 모습 사이에는 거의 150년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농업기술은 크게 변했지만 자연이 허락한 시간 안에 한 해의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는 농업의 기본적인 리듬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확이 끝나면 들판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콤바인이 움직이고 트럭이 오가던 논에서 기계 소리가 사라지고 볏짚과 빈 들판만 남는다. 사람도 빠져나간다. 한 해 농사를 마쳤다는 안도도 있겠지만 동시에 한 계절이 끝나버렸다는 묘한 쓸쓸함도 남는다. 수확의 분주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겨울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계》는 단순히 아름다운 러시아 풍경을 묘사한 음악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그 안에는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왔던 사람들의 생활 리듬이 있다. 봄에는 기다리고 여름에는 일하고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다시 한 해를 돌아본다.

러시아의 호밀밭과 한국의 벼논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수확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조급함과 안도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뒤 찾아오는 적막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가을은 음악 속에서 곡식을 거두고 한국의 가을은 황금빛 들녘에서 벼를 거둔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난 자리에는 다시 겨울을 기다리는 긴 고요가 찾아온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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