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8일은 러시아 작가 율리안 세묘노프(Юлиан Семёнов·1931~1993)가 태어난 지 95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세묘노프를 이야기하면서 《봄의 열일곱 순간(Семнадцать мгновений весны)》과 슈티를리츠(Штирлиц)를 빼놓기는 어렵다. 세묘노프가 만든 슈티를리츠는 한때 소련 사람들이 가장 사랑했던 첩보원이었다. 영화 속 영웅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수많은 농담과 유머에 등장했고, 세월이 흘러 소련이 사라진 뒤에도 러시아인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았다. 한 사람의 소설가가 만들어낸 인물이 한 국가의 집단기억으로 들어간 셈이다.
그런데 세묘노프의 삶을 들여다보면 조금 묘한 지점이 있다. 그는 소설가였지만 기자였고 기자였지만 때로는 정보기관 요원처럼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역사자료를 찾아 기록보관소를 뒤졌고 범죄수사기관에서 실습했으며 전쟁과 국제정치의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했다. 허구를 쓰기 위해 현실 속으로 들어갔던 작가였다. 193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모스크바동양학연구소에서 공부했다. 이후 기자가 되어 아프가니스탄과 베트남, 쿠바, 남미와 유럽 등지를 취재했다. 당시 일반 소련 시민에게 해외여행은 자유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세묘노프는 국경 밖의 세계를 직접 경험했다.
그것은 분명 그의 특별한 위치를 보여준다.
세묘노프의 대표작 《봄의 열일곱 순간》은 1969년 발표됐고, 1970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러시아국립도서관 자료에서도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정보전과 방첩전을 소재로 한 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45년 봄, 패전을 눈앞에 둔 나치 독일이다. 주인공 막심 이사예프는 독일에서 ‘막스 오토 폰 슈티를리츠’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의 신분은 SS 고위 장교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일 권력의 심장부에 침투해 있는 소련 정보요원이다. 그가 받은 임무는 독일과 서방 연합국 사이에서 진행되는 비밀 접촉을 추적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슈티를리츠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첩보영화의 영웅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총을 들고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기다리고, 관찰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이 아니라 침묵과 판단이다. 아마 이것이 슈티를리츠라는 인물이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힘으로 적을 제압하는 영웅이 아니다. 적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이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구별하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서 의도를 읽는다. 냉전이라는 시대에는 어쩌면 그런 인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의 열일곱 순간》을 단순한 대중소설로만 읽기는 어렵다. 이 작품과 1973년 제작된 동명의 TV 시리즈 뒤에는 당시 소련 국가안보위원회, 즉 KGB가 있었다. 세묘노프는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특히 훗날 소련 최고지도자가 되는 유리 안드로포프 당시 KGB 의장과도 교류했다. 러시아 영화자료들은 안드로포프가 소설이 완성되기 전부터 작품에 관심을 보였으며, TV 시리즈 제작을 지원했다고 전한다. 세묘노프에게 자료 접근이 허용됐고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들이 작품의 자문에 참여했다.
타티야나 리오즈노바 감독이 연출한 12부작 TV 시리즈에는 실제 KGB 간부들이 자문역으로 참여했다. 작품은 1973년 방영되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불과 몇 달 뒤 다시 방송될 정도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봄의 열일곱 순간》은 KGB의 선전물이었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당시 KGB는 정보기관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싶어 했다. 소련 시민들에게 비밀경찰보다는 지적이고 헌신적인 국가 수호자의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슈티를리츠는 그 목적에 꽤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잔혹하지 않고, 술에 취해 허풍을 떨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줄 알고 지적이며, 무엇보다 조국에 충성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이상적인 정보요원의 모습과 상당 부분 겹친다. 하지만 작품이 단순한 선전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오래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TV 시리즈 속 슈티를리츠를 보고 있으면 묘한 고독이 느껴진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할 수 없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지만 그 나라에 돌아갈 수도 없다. 독일인으로 살아가면서 러시아를 기억해야 한다. 그에게 삶은 끊임없는 연기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것과 원하는 것이 다르다. 어쩌면 소련 사람들이 슈티를리츠에게 끌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국가가 원했던 것은 완벽한 정보기관의 영웅이었을지 모르지만, 시청자들이 발견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살아가는 한 인간이었다. 소련 사회 역시 많은 부분에서 그랬다. 사람들은 공적인 언어와 사적인 언어를 구별했다. 직장에서 하는 말과 부엌에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는 말이 달랐다. 무엇을 말해도 되는지,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지 알고 살아야 했다. 슈티를리츠의 이중생활은 극단적인 첩보원의 삶이었지만, 어쩌면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만들어낸 영웅은 어느 순간 국가의 의도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 됐다.

세묘노프의 관심은 정보기관만을 향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 사람과 문서, 전쟁의 비밀과 범죄사건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책상에 앉아 상상하는 소설가라기보다 취재수첩을 들고 현장을 돌아다니는 기자에 가까운 면이 있었다. 이런 성향은 소련 말기에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1989년 탐사보도를 표방한 신문 《소베르셴노 세크레트노(Совершенно секретно·일급비밀)》를 창간했다. 제목부터 세묘노프답다. 과거라면 국가의 문서고 안에 숨겨져 있었을 사건과 사람의 이야기를 이제 신문의 지면으로 가져오려 했다. 그가 평생 추적했던 것은 결국 ‘비밀’이었다. 국가의 비밀이었고, 전쟁의 비밀이었으며,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숨겨둔 비밀이기도 했다.

율리안 세묘노프는 1993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만든 슈티를리츠는 그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소련도 사라졌고 KGB라는 이름도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은 여전히 슈티를리츠를 기억한다. 이 점이 재미있다. 한때 국가가 필요로 했던 영웅이 국가보다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묘노프의 탄생 95주년을 맞아 《봄의 열일곱 순간》을 다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래된 소련 첩보극 한 편을 다시 보는 일이 아니다. 그 작품 속에는 냉전이 있고, KGB가 있고,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소련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자신의 이름마저 감춘 채 살아가는 한 인간이 있다.
국가는 영웅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문학은 그 영웅에게 고독을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마도 국가보다 그 고독을 더 오래 기억했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
자료 출처 :
https://tass.ru/kultura/2819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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