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Sep 2025

러시아 화가들의 눈에 비친 황금 가을

러시아 화가들에게 있어, 중부 러시아의 자연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색감에 늘 둘러싸이지 않았던 만큼, 가을은 특히나 사랑받는 계절이다. 

이사크 레비탄, 〈황금의 가을〉(1895)

강변을 따라 굽이치는 물길과 황금빛 자작나무 숲이 최대 포화도의 노랑으로 터져 나오며, 맑은 하늘의 파란과 보색 대비를 이루어 장면 전체가 울림처럼 진동한다. 레비탄 특유의 ‘정조(情調) 풍경’이 완성기에 도달한 사례로, 나뭇잎은 **두텁고 빠른 붓질(임파스토)**로 질감을 살리고, 원경은 톤 누적으로 깊이를 만들었다. 계절의 환희가 사운드처럼 시각화된 장면.

감상 포인트: 노랑–파랑의 대조, 물길이 만드는 시선의 흐름, 잎사귀 터치의 리듬감.

이반 시시킨, 〈황금의 가을〉(1888)

식물학적 정확성으로 유명한 시시킨답게 숲의 수종, 수피, 낙엽의 질감을 현미경처럼 재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록의 차원을 넘어, 공기 원근과 서늘한 광선 묘사로 가을의 건조한 투명도를 체험하게 한다. 숲길 구성이 관람자의 보행 동선을 암시해, 화면 속으로 ‘들어가 걷는’ 감각을 준다.

감상 포인트: 수피·낙엽의 디테일, 건조한 공기의 투명도, 숲길의 공간 설계.

이사크 레비탄, 〈가을날. 소콜니키〉(1879)

회색·갈색·녹색의 절제된 팔레트로 만든 가을의 저음역대. 길게 뻗는 산책로의 소실점이 고독을 부각한다. 인물(니콜라이 체호프가 그린 여성)은 ‘사건’이 아니라 정조의 매개로 기능하며, 수직의 나무줄기는 성소(聖所) 같은 구조감을 만들어 풍경을 ‘자연의 예배당’으로 변모시킨다. ‘정조 풍경’의 출현을 알린 초기 걸작.

감상 포인트: 수직 기둥(수간)과 수평 길의 대비, 절제된 색, 인물의 서정적 비중.

이사크 레비탄, 〈참나무 숲. 가을〉(1880)

바르비종파의 영향이 감지되는 작품. 두터운 캐노피(수관) 아래 스며드는 점광들이 바닥의 낙엽층과 점묘처럼 호응한다. 참나무의 둔중한 질량감과 음영 대비가 깊이와 안정감을 형성하며, ‘숲’이 아니라 **‘숲의 기분’**을 그린다.

감상 포인트: 수관 아래 점광, 묵직한 트렁크의 질량감, 음영의 리듬.

바실리 폴레노프, 〈황금의 가을〉(1893)

자신의 영지에서 내려다본 오카 강 대경(大景). 폴레노브 특유의 청명한 대기 원근과 정결한 색면이 특징이다. 황금빛 기슭과 청회색 수면이 **순수한 색채 면(面)**으로 맞부딪치며, 화면에 음악적 균형을 만든다. ‘자연을 통한 휴머니즘’이라는 폴레노브의 미학이 가장 투명하게 빛난다.

감상 포인트: 수면의 평온한 색면, 공기 원근의 단계, 수평·사선의 안정적 구도.

스타니슬라프 주콥스키, 〈가을, 베란다〉(1911)

주콥스키의 두 열정—풍경과 영지의 실내/건축—가 한 화면에 결절한다. 베란다 바닥의 햇살 패턴과 바깥 단풍의 황금색이 내부/외부의 색채 교감을 일으키며, 의자·탁자 같은 일상 사물이 사라져 가는 계절과 생활의 온도를 붙잡는다. 망명 전(前) 러시아의 아련한 사적(私的) 세계를 복원하는 회화적 기록.

감상 포인트: 채광 패턴, 프레이밍(문·창의 액자 역할), 생활 사물의 서정성.

이사크 브로츠키, 〈떨어진 잎〉(1913)

국가적 초상화가로 알려진 작가의 의외로 서정적인 풍경. 길가를 덮은 낙엽의 갈색·호박색 스펙트럼과 묽은 빛이 화면을 고요하게 감싼다. 학원적 정확성과 완만한 터치의 서정성이 결합되어, 이후 정치적 초상에서 보기 힘든 개인적 음색을 남긴다.

감상 포인트: 저채도 브라운의 다층, 길의 소실이 만드는 사색적 흐름, 정적(靜的) 리듬.

일리야 오스트루호프, 〈황금의 가을〉(1886)

아브람체보 그룹의 한가운데에서 빚어진 작품. 대담한 색면화적 노랑이 장식을 넘어 상징적 계절감을 획득하고, 수직의 나무줄기들은 장식적 리듬으로 반복된다. 오스트루호프는 수집가·큐레이터로서의 안목을 화폭에 투영해, 전통적 풍경을 현대적 화면 구성으로 변환한다.

감상 포인트: 평평하게 다가오는 노랑의 면, 수직 반복 리듬, 전경–중경–원경의 층위.

예핌 볼코프, 〈10월〉(1883)

화려함을 덜어낸 ‘늦가을의 정적’. 낮은 태양과 축축한 토양, 엷은 안개가 고채도 색을 걷어내고 톤의 미세한 차이만 남긴다. 이는 떠들썩한 수확의 가을이 아니라, 겨울 직전의 숨 고르기를 그린 풍경으로, Передвижники(페레드비즈니키)의 사회·자연 감수성을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감상 포인트: 낮은 대비, 회갈색 톤의 미묘한 변화, ‘비어 있음’이 주는 시간감.

이고리 그라바리, 〈가을. 까마귀와 자작나무〉(1924)

아이코나(성화) 복원가로서의 색채 감각과 후기인상주의적 모자이크 필치가 만난 그림. 눈처럼 밝은 자작나무 수간과 **검은 까마귀의 점(點)**이 극적 대비를 이루며, 단출한 모티프에서 색–면–점의 음악성을 끌어낸다. 차가운 공기 속에 맑게 울리는 한 음(音) 같은 풍경.

감상 포인트: 흰 수간 vs 검은 새의 극적 대비, 짧은 붓질의 진동, 차가운 공기의 색.

한눈에 보는 감상 키워드

레비탄: 정조(情調)·톤 누적·보색 대비

시시킨: 식물학적 정확성·공기 원근·보행 동선

폴레노프: 청명한 색면·휴머니즘·안정 구도

주콥스키: 내외부 프레이밍·생활 사물의 서정

브로츠키: 학원적 정확성+서정성의 결

오스트루호프: 색면·장식 리듬·현대적 구도

볼코프: 저채도·톤의 미묘함·겨울 전의 정적

그라바리: 모자이크 터치·극적 대비·한음(音)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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