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Oct 2025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작가 알렉산드르 데이네카

우리는 누구나 그의 그림을 한 번쯤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그것들이 바로 **소련의 전설적인 거장, 알렉산드르 데이네카(1899–1969)**의 작품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한때 정권의 총애를 받았으며, 지금도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다.

1️⃣ 《콘스탄틴 뱌로프의 초상》(1923)

쿠르스크 알렉산드르 데이네카 미술관 소장

데이네카가 24세에 그린 이 초상은 그의 회화 인생 초기를 대표하는 실험적 시기이다. 화면은 입체파와 미래파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형태는 기하학적으로 분절되고, 색면은 평면적이며, 붓의 리듬이 빠르고 단호하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친 직후 모스크바로 유학을 와, 당시 러시아 예술계를 주도하던 ‘프로레타쿨트(Proletkult)’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초상은 단순한 인물 묘사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형의 구조적 재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유럽 모더니즘의 실험성과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초기 징후가 공존하는 드문 작품이며, 이후 데이네카가 ‘구조화된 사실주의’로 진화할 토대가 된다.

2️⃣ 《페트로그라드의 방어》(1928)

국가적 인정을 가져온 전환점 작품

이 작품은 데이네카를 소련 화단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주제는 1919년 내전 시기의 페트로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방어전이다.
그는 당시 실제 노동자들을 모델로 삼아, 혁명 세대의 신체적 역동성과 사회적 연대를 시각화했다.
붓질은 거칠고 강렬하며, 형태는 단단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전투의 구체적 묘사보다 영웅적 인간의 형상화가 중심에 놓여 있다.
이는 레닌 사후 스탈린 체제 초기에 탄생한, “국가를 지탱하는 새로운 인간상”의 시각적 상징이었다.
이 작품 이후 그의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향으로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3️⃣ 《어머니》(1932)

서정적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시작

1930년대 들어 데이네카는 군상(群像)의 영웅성에서 한발 물러나, 여성과 일상, 모성의 상징을 다루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예로, 단순한 인체 묘사를 넘어 “국가의 모성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 시기 그의 화법은 부드러워지고, 붓 터치는 평면적이며, 색채는 따뜻한 회갈색과 담홍색 계열로 제한된다.
이 작품은 동시에 1930년대 중반 ‘형식주의’ 탄압 이후, 명료하고 감정적인 사실주의 양식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따라서 《어머니》는 정치적 안전함과 미학적 순수함의 절묘한 타협이라 할 수 있다.

4️⃣ 《골키퍼》(1934)

 

건강한 육체, 사회주의의 이상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너비 3.5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 화면 가득한 근육질의 인체는 ‘인민의 몸’을 이상화한 형태로, 1930년대 소련의 신체 이데올로기를 완벽히 구현한다.
빛은 측면에서 들어와 신체의 조각적 구조를 드러내며, 배경은 거의 제거되어 인체의 힘과 운동감이 강조된다.
《골키퍼》는 단순한 스포츠 장면이 아니라, ‘육체의 구원’이라는 국가의 신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후 《아침 체조》, 《공놀이》, 《달리기 선수들》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는 모두 이 사상적 구조를 공유한다.
그는 ‘건강한 육체=건강한 사회주의’라는 등식을 회화적으로 완성한 최초의 화가였다.

5️⃣ 《미래의 비행사들》(1937)

기술 낙관주의와 청년의 이상화

맑은 하늘 아래 비행기를 바라보는 소년들의 모습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미래의 소비에트 인간상을 예견하는 상징이다.
이 작품은 《페트로그라드의 방어》의 집단적 열정과 달리, 개인의 꿈과 국가의 이상이 합쳐지는 조용한 선전미학을 보여준다.
하늘과 대지의 대비, 인물들의 시선이 위로 향하는 구도는 명백한 ‘미래 지향성’을 암시한다.
스탈린 시대의 군사력 확충이라는 현실적 목표가, ‘순수한 소년의 시선’이라는 미학적 장치로 미화된 작품이다.

6️⃣ 《스타하노프 노동자들》(1937)

노동의 신화화, 생산의 미학화
(페름 미술관 소장)

1935년 이후 등장한 ‘스타하노프 운동(노동생산성 경쟁운동)’은 소비에트 체제의 자긍심이자 정치적 선전의 핵심이었다.
데이네카는 이를 회화적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화면의 인물들은 이상적인 비례와 리듬을 지니며, 노동 장면은 오히려 춤처럼 구성된 시각적 조형물로 보인다.
이 작품은 1938년 파리 만국박람회 소련관을 위한 대형 패널의 예비작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서구 미술무대에 진출하는 상징이 되었다.

7️⃣ 《전투 후》(1937–1942)

스포츠에서 전쟁으로: 영웅 신체의 변환

처음엔 《운동선수》라는 제목으로 시작되었으나, 전쟁의 격화와 함께 ‘운동’은 ‘전투’로 변모했다.
보리스 이그나토비치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구도는, 한 인물이 중심에 서서 근육의 긴장감을 드러내며, 배경의 여백은 전장의 공기를 암시한다.
데이네카는 이 작품을 다섯 해 동안 수정했는데, 이는 그가 단순한 선전화를 넘어서 인간의 육체가 역사 속에서 겪는 변형과 피로를 표현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8️⃣ 《세바스토폴의 방어》(1942)

대서사와 인간적 비극의 결합
(러시아 미술관 소장)

폭격으로 파괴된 세바스토폴의 도시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모습은, 4미터가 넘는 스케일 속에서 국가적 영웅주의와 개인적 상실의 교차점을 이룬다.
그는 실제 전투를 목격하진 않았으나, 자신의 기억 속 바다도시 세바스토폴을 통해 “상실된 낙원”을 그린 셈이다.
붉은색과 회색이 지배하는 팔레트는 불타는 도시와 식은 대지의 대비를 보여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도달한 가장 극적인 서사적 순간 중 하나로 평가된다.

9️⃣ 《릴레이》(1947)

전후 복원의 서사와 새로운 낙관주의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한 인민의 삶을 상징한다.
전경의 젊은 여성 주자는 밝은 빛 속에 그려져 있으며, 배경의 도시 풍경은 질서정연하게 복원된 공간으로 표현된다.
데이네카의 구도는 여전히 구조적이지만, 색채는 한층 따뜻해지고 부드럽다.
이 작품은 즉시 트레챠코프 미술관이 구입해 전 세계를 순회 전시했고, 1958년 브뤼셀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소련 예술의 ‘시각적 낙관주의’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 《세바스토폴에서》(1956)

전후의 평화, 회귀하는 인간성

전후 데이네카는 예술아카데미 정회원으로서 사실상 국가 예술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이 시기 작품은 전쟁의 상흔 대신, 평화로운 일상과 재건된 도시의 조화를 그린다.
《세바스토폴에서》는 다시 일어선 도시의 바다와 사람들을 부드러운 색채와 단정한 구도로 표현했다.
이후 그는 노동, 청춘, 풍경, 일상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었으며, 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정권이 만든 예술가’가 아닌, 시대의 미학을 재구성한 시각 언어의 설계자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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