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Jan 2026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의 태동_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는 원불교 백상원 교무가 설립한 한국전통문화학교로 1993년 1월 8일 개교했다. 소련 개방정책 이후 정치, 사회, 종교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재미교포 경제인, 언론인 팀과 백 교무는 1990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마타, 타슈켄트의 한인 정착촌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고려인들의 뿌리 찾기와 모국어 학습에 대한 열의를 확인한 그는 학교 건립에 원을 세웠고 전문대학을 임대해 주말 학교를 운영한 것이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의 시초다.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의 태동_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는 원불교 백상원 교무가 설립한 한국전통문화학교로 1993년 1월 8일 개교했다. 소련 개방정책 이후 정치, 사회, 종교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재미교포 경제인, 언론인 팀과 백 교무는 1990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마타, 타슈켄트의 한인 정착촌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고려인들의 뿌리 찾기와 모국어 학습에 대한 열의를 확인한 그는 학교 건립에 원을 세웠고 전문대학을 임대해 주말 학교를 운영한 것이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의 시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는 연해주와 더불어 고려인(소련토착한인) 대다수가 정착해 사는 지역으로 원광한국학교는 이주 고려인과 이들의 후손들에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러시아인들에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한국 문화 중심 센터가 됐다.
고려인들에 한국어와 전통 문화 보급을 위한 공간 마련이 시급했다. 학교 건립은 백상원 교무가 소련 방문 가운데 만난 재소 고려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 스탈린의 민족 언어 말살 정책으로 고려인 가운데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백 교장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한인들의 서러움과 회한을 떠올렸다.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듯 화물열차에 태워져 수십 일간 미지의 땅으로 향하면서도 모국어로 적힌 고향 주소와 가족사진을 외투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한 채 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덜컹거리는 객차의 불협화음이 들리는 듯 했다. 

백 교장은 고려인들의 애환을 생각하며 93년 1월 거주지 뒤편 오르제니키드제 거리 15에 소재한 가정전문대 건물을 임대하고 5월 개교식을 거행했다. 개학식에는 어른 33명과 어린이 19명이 참석했다. 한글학교는 주말에 운영했다. 당시 한국학교 학생 대부분이 고려인 자녀들이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무들은 러시아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한국어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려인 학생들의 입에서 한국어 자모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한글 수업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 연극 수업을 진행했다. 춘향전, 심청전, 홍보전 등 고전 작품을 각색했다. 연극 수업을 통해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은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는데 큰 자양분이 됐다. 연극에 이어 한국 노래와 동요 가요 등도 활용했다. 이심전심이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첫 학기 종업식 때 90명이 학기를 이수했다. 2학기에는 150명의 학생이 등록했다. 교사가 모자라자 유학생들을 유급 교사로 초빙했다. 학생은 350명까지 늘어 토요일, 일요일 그룹 수업을 진행했다. 

발전_ 한국어는 물론 한국 문화와 역사 강좌도 신설했다. 학생이 많아지면서 교사를 이전했다. 1995년 원광한국학교는 브베덴스꼬보 거리 32-A에 소재한 1086 한민족 학교로 거처를 옮겼다. 1086학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주한 한인 이주 4세 엄넬리 교장이 세운학교였다. 러시아에서 한국어와 한국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민족 교육을 지키기 위해 모스크바 남쪽 지역에 세운 학교로 원광학교와 성격이 비슷했다. 

백 교무와 엄넬리 1086학교(한민족 학교) 전 교장과의 인연은 1990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스크바 고려인연합회 환영 만찬장에서 둘은 만났다. 한국 민간단체로서 모스크바에서 진행하는 가장 큰 대규모 연례행사인 한러 한민족 문화큰잔치(당시 한민족 민속큰잔치)가 6월 열리게 되는데 엄 전 교장이 일임했다. 여름학교를 개설하면서 사물놀이, 한국 무용, 노래 등 문화 수업을 병행한다. 천지반(유치부와 1,2학년), 부모반(2,3,4학년), 동포반(7,6,7학년), 법률반(8~13학년)으로 편성해 4명의 교사를 배치했다. 

교원 및 학생 수가 늘어가면서 안정적인 학사 운영을 위해 교사 매입은 선결 과제였다. 1993년 외국인의 합법적인 부동산 매입을 허가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자체 건물 매입을 위한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삼성건설 임홍택 상무의 도움이 컸다. 대한항공 사장 부인인 김창해 씨도 애를 썼다. 사방팔방 발품을 팔았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마침 적합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현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 건물로 스탈린 시대 항공사 직원 자녀들이 다니던 유치원이었으며 폐쇄된 채 비어있는 건물이었다. 오래된 학사였지만 스탈린 시대 건축물로 건물 외벽이 두껍고 견고하며 정남향으로 학사 운영에 적합했다. 전통문화원 ‘맥’재단을 설립했고 연건평 1,238㎡, 대지 4,800㎡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었다. 이곳은 모스크바 시내 중심지인 크렘린에서 가까우며 교통이 편리하고 주위에 학교가 있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원광한국학교의 공적 가운데 하나는 한국어 교재 편찬이다. 주러 대한민국 대사관의 집필 의뢰를 받아 고려인들과 러시아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발간했다. 초급, 중급, 고급 등 총 3권을 기획한 가운데 2002년 8월에 초급 한국어가 먼저 나왔고 2003년 중급, 2005년에 고급 한국어를 발간했다. 이 교과서는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권 한국어 교육 기관에 보급하고 있다. 세종학당 위탁 운영_ 2008년 10월 29일 원광한국학교가 국립국어원 세종학당 위탁 운영 단체로 선정됐다.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이 현지 대학 등 교육 기관과 연계해 외국인과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교육하는 비정규 사회교육 시설이다. 원광한국학교는 매년 500여 명 이상의 현지 러시아인들과 동포들에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중심 센터로 자리 잡았다. 

나눔과 봉사_ 원광한국학교가 매년 6월 실시하는 한민족 문화 큰잔치는 고려인에 민족적 뿌리를 일깨우던 행사서 모스크바 한러 문화 최대 행사로 발돋움한 대규모 한국 문화 체험행사다. 이 행사는 17년까지 모스크바 원광한국학교가 개최해오다2018년부터 주러 한국문화원과 공동 주최하고 있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장막으로 아직껏 우리에게 먼 러시아에서 해마다 8천여 명 이상이 참석하는 ‘한러 친선 한국문화큰잔치’는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적 연대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1994년 개최 이후 2019년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6회째 행사를 진행해왔다. 26회 참석자는 8,000여명으로 현지인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민간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 밖에도 매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한국의 효 사상을 알리는 동시에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 아래 인근의 홀몸노인들을 초대해 나눔의 장을 펼친다. 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곤란한 처지의 한인들과 러시아인들을 위해 원광대학교 한방병원의 협조를 얻어 무료 한방 진료를 1999년 9월 13일부터 모스크바의 니즈나야 크라스노 셀리스카야 거리 15에 소재한 병원을 빌려 실시하고 있다. 연인원 3000명이 무료 진료를 받았다.

바이러시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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