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Jan 2026
한국과 소련(현재 러시아)이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모스크바에 온 천주교 신자들은 관공서를 비롯해 지상사 주재원들과 소수의 유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서방 국가의 신부님들이 집전하는 주일 미사에 참여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94년 고석준 신부님이 최초로 파견됐다. 당시 3년 반 기간 동안 더부살이 형식으로 미국 신부님 거소 경당과 소련시절 몰수 되었다가 초기에 극히 일부 공간만 되돌려 받은 폴란드 ‘무염시태 성당’ 필리핀 대사관 경내 성당, 프랑스 소속 루비양카 성당 등을 돌아다니며 미사를 드렸다.

모스크바 한인성당

한국과 소련(현재 러시아)이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모스크바에 온 천주교 신자들은 관공서를 비롯해 지상사 주재원들과 소수의 유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서방 국가의 신부님들이 집전하는 주일 미사에 참여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94년 고석준 신부님이 최초로 파견됐다. 당시 3년 반 기간 동안 더부살이 형식으로 미국 신부님 거소 경당과 소련시절 몰수 되었다가 초기에 극히 일부 공간만 되돌려 받은 폴란드 ‘무염시태 성당’ 필리핀 대사관 경내 성당, 프랑스 소속 루비양카 성당 등을 돌아다니며 미사를 드렸다. 

당시 한국의 ‘순교복자 수녀원’에서 파견되어 오신 수녀님은 현지에서 2~3여 년 간 봉사하시며 천주교 교인들을 물심양면 도우셨다. 당시 한인성당 신도는 40~50여명 안팎으로 아담한 공동체로 동거 동락했다. 그 사이 4년 동안 김수환 추기경님이 3회, 서강대 박홍 총장님, 대구교구 이문희 대주교님 등이 방문하셔 교우들과도 자리를 함께하며 격려하셨다. 초대 신부님 부임 이후 한인 천주교회는 폴란드 무염시태 성당(말라야 그루진스카야 울리짜 소재) 지하에 60-70명 정도의 인원이 미사 가능한 고정된 장소를 확보할 수 있었다. 95년부터 2012년까지 일부 지하 복도를 이용하며 100여명 이상의 교우가 꾸준히 미사를 한 곳에서 18여 년 간 진행해 왔다. 이후 2013년 오랜 숙원이었던 한인 천주교 공동체는 독립 건물을 확보하며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살라리예보 마을에 자리한 한인본당 경당 및 교육관이 그것이다. 모스크바 한인성당 태동 이후 27여 년 간 활동하셨던 다섯 분의 신부님들과 교우들의 노고, 그리고 서울 교구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 두 번에 걸쳐 주임신부님으로 부임하신 김대영 디다꼬 신부님을 빼놓을 수가 없다. 부족한 예산 확보를 위한 신부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제때 건립이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는 6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신 강상수 필립보 신부님이 모스코바 한인 천주교회의 제2의 도약을 위해 노력을 하시고 계신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찾아온 세계적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정상적인 미사를 진행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유튜브를 활용, 매일 미사와 주일 미사를 보고 있으며 신부님과 교우들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이루어질 날을 고대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작성자 : 박상일 전 사목회장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