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원불교 교당은 1993년 1월 8일 설립됐다. 설립자는 개방 초기 뉴욕교당에서 교화중이던 초타원 백상원 교무다. 1990년 12월 백상원 교무가 소련 과학아카데미와 북방연구소가 공동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 3일간 모스크바, 알마티, 타슈켄트 등지에 머물며 고려인(소련토착한인) 밀집 지역을 방문 후 교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통역이었던 고려인 2세 서경원씨를 만나면서 교화가 본격 시작됐다. 서경원 씨는 사할린 출신 고려인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모스크바 시에 원불교 종교법인 인가를 받고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교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때 백 교무는 그 동안 길이 막혀 엄두조차도 못 내고 지내온 고려인들이 개방의 물결을 타고, 조국과 뿌리를 찾고, 한국어와 문화를 다시 찾고자 하는 절절한 소망을 보았다고 회고한다. 고려인들의 뿌리 찾기 운동에 도움을 주고자 개척교화의 서원을 세운 것. 91년 8월 19일 야나예프 부통령에 의한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당시 백 교무와 한승원 교무는 모스크바 현장에 있었다. 모스크바는 포탄과 총탄의 흔적으로 참혹했다. 쿠데타 희생자 5명을 위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둘은 자유와 개혁을 향한 강한 의지를 목도했다. 이후 8월 24일부터 전세기로 모스크바를 출발해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을 돌며 한인 거주 집단 농장을 방문했다. 연방 교육부 장관, 고려인 협회 임원과의 면담에서 교화 적정지로 모스크바가 결정됐다.
이는 동구권 교화의지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며 북방 교화 사업과 연결돼 교단적 의지로 발전했다. 1991년 12월 1일 카자흐 공화국 고려인 대표 총회가 열렸다. 모스크바와 카자흐 전역에서 모인 120명의 고려인 대표단 총회에서 원불교 소개 시간을 가지면서 합법적인 교화 활동 터전을 마련했다.
12월 6일 재단설립에 참여한 현지인 20명과 원불교재단 설립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2월 8일 연방법무성으로부터 종교법인 원불교 인가증(등록번호 258)을 교부받았다. 러시아는 정교회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무슬림도 많았으나 74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신앙 공백 상태에서 살아온 구소련 본토인들의 신앙관은 백지상태였다. 고려인들도 이런 종교들에 깊숙이 관련을 맺고 있지 않았다. 장기간 지배해 온 절대 이념이 허망하게 무너져 이념의 공황상태에 처하자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 새로운 법을 갈망하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불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인들 가운데에서도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러시아 본토인 교화는 물론 고려인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게 번역사업과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 육성에서 출발해야 했다.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러시아에 한국의 발전상이 알려졌다. 수교 이후 왕래가 빈번해졌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고조됐다. 그러면서 고려인들 사이에서 한국어 습득에 대한 열의가 높아졌다. 한국학교 운영이 급선무였다. 1992년 9월 첫 법회를 봉행했다. 수소문 끝에 고려인 22명이 모였다. 정착 가운데 정재문 전 국회의원, 황규환 아리랑TV 전 사장, 이정빈, 이인호 전 대사 등이 마음을 냈다. 가가린 동상이 있는 레닌스키 대로에 위치한 아파트에 법당을 마련하고 교화를 시작했다. 1993년 11월 외국인 부동산 매입을 허가하는 법률이 통과하면서 자체 법당 마련에 뜻을 두었다. 건물 계약 및 건축, 설에 있어 삼성건설 임홍택 전 상무가 물심양면 도왔다.
종교법인등록 7년 후인 1998년 신종교법안에 따라 원불교재단 재등록이 필요했다. 11월 17일 사회법인 한국문화원 ‘맥’발기인 모임을 갖고 12월 31일 법인을 설립, 등록 인가를 마쳤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폭탄 테러로 아파트 내에서의 집회가 금지되면서 법회를 볼 수 없게 돼 이전이 시급했다. 법회와 교육을 위해 독립 공간 확보가 절실했다. 92년 9월에 교무 3명이 부임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건물만 나왔다면 쫓아갔다. 작지만 현실에 맞는 것을 고르려 해도 부르는 금액이 턱없이 높았다.
어느 날 백 교무의 전속 통역사이자 교사였던 유라 씨의 주선으로 건물을 보러갔다. 스탈린 시대 항공사 직원이 사는 동네로 직원 자녀들의 유치원 건물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1999년 7월 27일 매입 계약을 완료했다. 모스크바 시내 오스트랴코바 거리 9a(st. Ostriakova 9a)로 현 모스크바 원불교 교당 건물이다. 결실로 이어졌다. 고려인 협회 임원들과 출가재가 교도들의 정성어린 합력으로 마련한 모스크바교당은 대지 1천5백 평에 건평 4백 평의 유치원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을 매입해 수리했다.
모스크바 시에서 토지 사유화를 법제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당시 대지는 49년간 임대 권리권(법제화 될 경우에 자동 사유화가 될 것으로 전망함)을 갖게 되었고 건물은 1993년에 제정된 사유화법에 의해 소유권을 완전 취득했다. 교당은 모스크바 중심지인 크렘린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도심에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마당을 중심으로 3개 학교가 붙어 있어 교화활동과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데 별 제약이 없다.
교당 정비를 마치고 2000년 8월 27일 이사를 했다.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장이 20명의 의료진을 파견해 무료진료를 하고 싶다는 전보를 받았다. 원광대학교 한의대 김경요 교수 일행이 3일 간 1,000명의 현지 시민들을 무료 진료했다. 2001년 6월 17일 봉불식을 거행했다.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종교법인 허가를 받은 지 꼭 10년째 되는 해였다. 모스크바 교당은 법회, 4축 2재의 교화활동과 원광한국학교, 한민족 민속큰잔치, 동네어르신 초청 잔치, 연말 송년 음악회 등 교화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초창기라 교화 여건은 어려웠다. 서경원 씨와 그의 아들 이원종 교도, 그의 친구들이 교당 일을 도왔다.
해를 거듭하는 한민족 민속큰잔치, 사물놀이팀의 활동은 고려인 사회서 독보적인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998년 백상원 교무는 교민 사회 융화단결과 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후임인 전도연 교무는 한국어 및 한국 문화 교육에 앞장서 온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국민 포장을 수상했다.
출처 : 백상원 교무 평전 『작은 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