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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지원 공조를 위한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가 11일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처음으로 미국이 빠진 채 열렸다. 이 회의는 원래 미국이 러-우크라 전쟁 발발 이후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에서 서방 측의 국제 공조를 모색하기 위해 시작해 통상 '람슈타인 회의'로 불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내세우며 지난 1월 들어선 트럼프 새 행정부는 당연히(?)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소극적이었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지난 2월 람슈타인 회의에 참석한 게 마지막이었다. 당시 미국은 회의 때마다 매번 발표해온 대(對)우크라 군사 지원 방안도 빼먹었다.


그렇다고 유럽마저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영국과 독일이 미국을 대신해 UDCG 회의를 이끌기로 하고, 동시에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Willing)을 결성하기로 했다. '의지의 연합'은 지난 2003년 미국 주도의 대(對)이라크 전쟁 당시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30여개국을 칭하는 말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 전쟁 3년 만에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국이 빠진 UDCG 회의는 얼마나 현실적일까?
27번째로 열린 11일 브뤼셀 UDCG 회의는 영국과 독일이 공동 주재했다. 약 40개국이 대면 혹은 화상으로 참석했으나,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화상으로 지켜봤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존 힐리 영국 국방장관은 이날 UDCG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총 210억 유로(약 35조원)의 추가 군사지원을 약속하면서 "지원 규모가 기록적으로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별 지원 액수도, 이미 개별적으로 발표된 지원금이 중복 계산됐는지 여부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회의를 앞두고 영국은 노르웨이와 함께 수십만 대의 군사용 드론, 레이더 시스템, 대전차 지뢰 등 총 5억 8천만 달러 상당의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독일도 이리스-T(IRIS-T) 방공시스템 4기와 패트리어트 대공미사일 30기, 포탄 10만발, 레오파드 탱크 15대, 각종 유도미사일및 정찰 드론 등 110억 유로 상당의 군사 지원안을 발표했다.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회의가 끝난 뒤 "우크라이나가 받은 것 중 최대 규모의 군사지원안이 나왔다"며 "지원에 동참해준 모든 나라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빈 강정'에 가까운 지원 방안이라는 평가가 곧바로 나왔다.
스트라나.ua는 11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람슈타인 회의 결과' 코너에서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이미 110억 유로 상당의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며 "이 것이 (힐리 장관이 발표한) 총 지원 규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독일의 지원액은 오는 2029년까지, 향후 5년간의 지원 규모를 뭉뚱거린 것으로, 주로 독일 군수산업 단지의 현대화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빠진 대우크라 지원 방안은 전장의 우크라이나군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도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UDCG 회의에서 화상을 통해 "패트리어트 방공시스템 10기를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도 글을 올려 "유럽의 자유 진영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있다"며 "(유럽의) 평화를 위해 그것을 이전할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날 저녁의 대국민 영상 연설에서는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을 살 준비가 돼 있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을 판매하는 미국 측의 반응은 아직 없다. 독일도 "미국으로부터 장비를 기다리고 있다"며 "키예프(키이우)가 요청한 패트리어트 장비를 제공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산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목을 매는 것은, 러시아의 탄도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격추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3년간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방산 선진국가들의 무기를 다양하게 운용해본 결과, 일부 무기및 장비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게 엑스칼리버 자주포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예고르 체르네프 우크라이나 의회(최고 라다) 국가안보위 부의장은 12일 텔레톤(우크라이나의 전시 통합 뉴스 프로그램)에 나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특정 유형의 서방 무기는 효과가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GPS 기반의 유도 자주포인 엑스칼리버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측에 이 사실을 알렸으며, 공급이 중단됐다고 했다.
독일 무기에 대한 평가는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 실렸다. 슈피겔은 독일 연방군의 내부 문서를 인용, "독일산 무기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효과적이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사용 가능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독일 대사관의 한 무관은 "서방 무기를 공급받은 우크라이나군이 실전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독일의 판처하우비체(PzH) 2000 자주포가 전자전 상황에서 매우 취약해 전쟁 수행에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레오파드 1A5 전차(탱크)는 최전선에서 신뢰할 만한 성능을 입증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장갑이 약해 임시 포대로 자주 사용되고, 개량형인 레오파드 2A6 전차는 최전선에서 수리가 불가능해 유지 보수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고 했다.
패트리어트 방공시스템에 비견되는 IRIS-T 방공 시스템은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포탄이 너무 비싸고 필요한 양을 구할 수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독일에서 이미 퇴역한 구형 '게파트 자주포'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환영을 받았다. 가장 인기 있고 효과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무기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MLRS)인 마르스(MARS)는 긴 사거리 덕분에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무기이지만, 미군의 집속탄을 발사할 수 없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사용 가능하다고 슈피겔은 썼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지난 2월 회의에 이어 두번째로 우크라 무기 지원안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은 바이든 전 행정부가 할당한 무기 외에는 추가 공급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람슈타인 회의에 불참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람슈타인 회의'를 영국과 독일이 주도할 것이라며 미국의 공백을 인정한 바 있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움직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후 안보 체제를 논의할 '의지의 연합' 결성및 활성화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이 이 구상에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경우, 공염불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의지의 연합'을 통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은 러시아는 물론 미국에게도 '압력을 가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의지의 연합'의 궁극적 목표는 러-우크라 전쟁 휴전시 평화유지군을 전장으로 파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지난 5일에도 키예프에서 안토니 라디킨 영국군 참모총장과 티에리 부르카르드 프랑스군 참모총장이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과 회동했다. 이들은 전쟁 종식 후 평화유지군의 지격으로 우크라이나에 유럽군(의지의 연합 주도 군)을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유럽 일각에서는 성급하다는 견해도 있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알렉산더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휴전(종전) 협상을 앞두고 그만큼 예민한 주제다. '의지의 연합'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