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Jan 2026

우크라, 친러 헝가리와 '스파이 전쟁'- 터질 게 터졌다?

친(親)러시아 성향의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스파이 전쟁'이 터질 판이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헝가리 정보기관의 정보원으로 의심되는 전직 군인 2명을 체포하자, 헝가리가 자국 주재 우크라이나 외교관 2명을 간첩 혐의로 추방했고, 우크라이나도 맞대응하면서 사건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요원들/사진출처:SBU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9일 안드레이 사비가 외무장관의 페이스북 공지를 인용, "키예프(키이우) 당국이 헝가리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해 헝가리 외교관 2명을 48시간 이내에 우크라이나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시비가 장관은 "헝가리의 조치(우크라 외교관 추방)에 맞서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고 우리의 국익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SBU의 정보원 체포 발표→헝가리의 우크라 외교관 추방→우크라이나의 맞대응에 이르는 시간은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과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유럽연합(EU) 가입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해온 양국 관계로 볼 때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양국은 전쟁 발발 전부터 구원(舊怨)이 적지 않는 불편한 이웃이었다. 우크라이나 SBU가 헝가리 간첩 네트워크를 적발했다는 자카르파티야 지역은 20세기 초까지 헝가리 땅이었다. 이 곳에는 헝가리계 주민 약 15만명이 소수민족으로 거주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남성들이 총동원령을 피해 해외(헝가리)로 탈출하는 주요 루트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가 헝가리로 탈출한 자국민의 즉각 추방을 계속 요구했지만, 헝가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헝가리 접근 우크라이나의 자카르파티야/사진출처:VK
우크라이나가 결정적으로 헝가리를 자극한 것은 2017년 도입된 우크라이나어 사용 정책. 헝가리는 이를 "자카르파티야 거주 헝가리계 주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라며 크게 반발했다. EU도 헝가리 편을 들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조건으로 이 정책의 폐기 혹은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양국 간에 극도로 민감한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SBU가 헝가리 정보원이라며 40대 2명을 체포한 게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SBU는 "두 사람은 헝가리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고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 위치 등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지역(자카르파티야) 주민들의 정치적 노선을 조사하고 헝가리군이 이 지역에 진입할 경우 주민들의 행동 시나리오를 작성했다"며 간첩 혐의를 적시했다. 나아가 "이 지역에서 암약하는 헝가리 군정보국 스파이 네트워크를 적발했다"고 강조했다. 

체포된 두 명 중 한 명은 병든 아버지의 치료를 핑계로 헝가리를 오가며 수집한 정보를 헝가리 정보기관 측에 보고하고, 자금과 새로운 임무를 받아왔다는 게 SBU의 주장이다. 

헝가리는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페테르 시야르토 헝가리 외무장관은 SBU의 발표를 "(헝가리에 대한) 비방과 선전"이라고 반발하며 자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하던 간첩 2명을 추방했다고 밝혔다. 그는 "헝가리가 평화를 원하고, 전쟁을 반대하기 때문에 일어난 의도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튿날(10일)에는 헝가리 보안군이 수도 부다페스트 중심가에서 전직 우크라이나 외교관이 탄 승용차를 세우고, 탑승자를 강제로 끌고 가 국경 밖으로 추방했다. 보안군은 그를 외교 공관에서 근무하는 요원이 아니라 신분을 숨기고 암약하는 '블랙 요원', 즉 스파이라고 주장했다.

EU와 나토 회원국인 헝가리는 전쟁 발발 이후 줄곧 러시아 편을 들며 서방의 대(對)우크라 군사 지원에 반대해 왔다.
그러다 보니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이에도 가끔 심각한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오르반 총리가 전쟁 종식을 위한 중재자로 모스크바를 방문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혹한 비판을 쏟아냈다. 최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다페스트(헝가리)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방해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EU의 대러 제재를 거부한 오르반 총리(오른쪽 2번째)를 설득하는 EU지도부/사진출처:엑스@RekettyeJr
헝가리-우크라이나 간의 이같은 갈등은 '스파이 전쟁'의 촉발로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사태 악화에는 전쟁을 이유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SBU는 이미 현지에서 구성원들의 심각한 권력 남용과 부패및 도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10일에도 SBU의 한 고위 관리가 부패와 도덕성 문제로 해임됐다. 대통령실 산하의 국가안보국방위원회(우리의 국가안보실 격, 이하 '안보위')에서 제재 부과 분과를 총괄하는 아나톨리 로이프(SBU 경제안보 담당 부서장)가 부도덕하게도 이미 제재를 받은 한 기업인의 호화 생일 파티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 곧바로 해임됐다. 그는 '안보위' 제재를 받고 있는 파리마치(PariMatch)사의 사장 생일 파티에 전현직 SBU 고위 간부들과 함께 참석한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함께 간 인사 중에는 조직범죄자 출신의 '법률 미꾸라지(도둑) 움카'(вор в законе)로 알려진 세르게이 올레이닉도 있었다. 그는 10일 전격적으로 SBU에 체포됐다. 


제재 기업 사장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로이프(괄호안)/사진출처:스트라나.ua
또 로이프의 부패 의혹이 어머니의 고급 부동산 취득으로 제기됐다. 자카르파티야에 거주하는 그의 어머니는 수도 키예프(키이우)와 교외에 총 1,600만 흐리브랴(UAH) 이상의 고급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언어학 교수인 그녀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취득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 폭로는 우크라이나 기업인들이 '안보위'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뇌물을 제공한다는 소문과 맞물려 로이프의 부패 의혹으로 증폭됐다. 

SBU는 또 키예프에서 제재를 받은 한 기업의 건물을 놓고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의 특수부대와 총격전 직전까지 간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에 알려진 진상은 이렇다. GUR은 지난 4월 조직의 필요에 따라 키예프에 있는 친러시아 기업의 건물을 압수했다. 이 회사는 억울하다며 SBU 측에 호소했고, SBU가 GUR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현지 언론은 8일 SBU가 진상 파악을 위해 키릴 부다노프 GUR 국장을 조사하려고 나서자, 그의 부하들이 장갑차로 길을 막았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고, SBU가 물러서면서 양 정보기관 간의 최악 충돌은 피했다고 한다. 


부다노프 우크라군 정보총국 국장(왼쪽)과 말류크 SBU 국장/사진출처:gov.ua
GUR과 SBU 간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쟁 발발 직후 벨라루스 민스크에 열린 러-우크라 1차 평화협상에 참여한 '마당발' 금융인인 데니스 키례요프의 살해를 놓고 크게 충돌했다. 키례요프는 협상에 참여한 뒤 2022년 3월 SBU에 연행됐는데, 이후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그의 죽음은 러-우크라 평화협상을 방해하려는 강경 세력의 소행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해가 바뀐 뒤 GUR의 부다노프 국장은 SBU 장교들이 키례요프를 살해했다고 폭로했다. 키례요프는 전쟁 초기에 키예프의 방어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특급 정보를 제공했는데, SBU는 그를 러시아와 내통한 간첩으로 몰아 죽였다는 것. 실제로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사후 훈장을 받고 키예프의 '바이코보 영웅들의 묘지'에 안장됐으니 '간첩 누명'은 벗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전쟁 초기 SBU와 GUR 간의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기록됐다. 바실리 말류크 SBU 수장이 급히 부다노프 국장을 만나 두 기관 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에 대한 공동 성명을 발표하면서 갈등은 마무리됐다. 

부다노프 국장에 대한 SBU의 도발은 여론조사 결과와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잘루즈니 전 우크라군 총참모장·현 주영 대사와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 대(對)국민 신뢰도가 가장 높은 상위 3인에 속한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보다 높게 나오기도 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출처 : 바이러시아(https://www.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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