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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적어도 판은 깨지지 않았다.
16일 튀르키예(터키)의 이스탄불에서 3년 만에 재개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직접 협상'이 당초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협상은 우크라이나-(서방측) '의지의 연합'의 휴전 수락 최후통첩→푸틴 대통령의 이스탄불 '직접 협상' 제안→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급 회담' 역제안 등을 거치고, 당초 15일 러-우크라 대표단의 회동이 하루 늦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성사됐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측은 협상에서 휴전과 정상회담, 두 주제만 다룰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러시아 측은 3년전 중단된 이스탄블 회담의 재개 차원이라고 선언해 가까스로 성사된 만남이 결렬될 가능성이 높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하루 미뤄진 협상도 16일 곧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과 우메로프 국방, 시비가 외무장관 등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이스탄불로 날아온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러시아 대표단 단장을 맡고 있는 메딘스키 크렘린 보좌관은 마이클 안톤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과 만났다.
미국과의 별도 회담이 각각 끝난 뒤 회의장에 모인 러-우크라 대표단은 회담 형식을 놓고 또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중재자인 터키가 참석하는 3자회담을, 러시아는 양자 회담을 주장했다. 러시아 측의 양보로 시작된 러-우크라-터키 3자 협상은 첫번째 결렬 위기에서 터키 측의 중재가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만남이 거의 2시간 만에 끝나자 주변에서는 "결렬"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 전에 우크라이나 측이 잠깐 바깥으로 나와 키예프(키이우) 측과 긴밀히 논의한 것으로 전해져 '결렬 통보를 위한 최종 협의'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러-우크라 협상 결과 발표
하지만, 러-우크라 양측의 협상 결과 발표는 이같은 우려를 씻어냈다.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단장을 맡은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은 협상 후 △휴전의 모든 방식 논의했으며, 추후 협상 의제를 발표하고 △정상급 회담을 준비하며 △양측이 1천명씩 포로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스트라나.ua는 "우메로프 장관의 발언으로 볼때 그동안 나온 영국 등 서방 측과 우크라이나 언론의 부정적인 협상 진행 보도와는 거리가 멀다"며 "협상이 건설적으로 진행되고 앞으로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대표단을 이끄는 메딘스키 크렘린 보좌관은 아예 "협상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우메로프 장관이 발표한 대로 "휴전을 대한 각자의 비전을 준비한 뒤 다음에 또 논의하고, 정상급 회담의 요청에 주목했으며, 대규모 포로 교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협상 중간에 흘러나온 내용들을 보면, 협상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러시아는 협상에서 러시아가 이미 합병한 4개 주(州,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자포로제, 헤르손주)에서 우크라이나의 철군을 요구했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북부 하르코프(하르키우)와 수미주를 추가로 점령할 것이라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메딘스키 보좌관이 우크라이나 측에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우리(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1년, 2년, 3년 더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스웨덴과 21년간 싸워 이긴 역사가 있다. 당신들(우크라이나)은 얼마나 오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나?"
우크라이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 대표가 "러시아는 2030년 폴란드를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 대표단은 웃었고, 메딘스키 보좌관은 "협상을 판타지 장르로 옮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협상 결렬 위기 순간은?
미 CNN에 따르면 협상의 최대 위기는 모스크바가 키예프에 점령(합병) 4개주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구했을 때였다. 갑자기 싸늘해진 협상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앙카라(터키) 측이 서둘러 군인과 어린이, 민간인의 대규모 교환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후 키이우 대표단은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기 위해 잠시 방을 나갔고, 제안을 수락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수감자를 모두 교환하기를 원했으나 교환 대상자를 우크라이나에 비해 6~7배나 많은 모스크바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결과는 1천명씩 교환.
또 러시아 측은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식통은 CNN에게 "러시아 대표단은 우크라이나 대표단보다 더 빨리 결정을 내렸다"며 "양측은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전쟁 종식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양측의 논의는 예상보다 긍정적이었다"며 "서로 비난하는 듯한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얻어낸 성과는 정상급 회담 개최에 대해 러시아 측의 주목을 끌어낸 부분이다. 협상에 참여한 세르게이 키슬리차 우크라 외무부 제1차관은 브리핑에서 "젤렌스키-푸틴 대통령 간의 회담이 가까운 미래에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스탄불 회담의 예비적 성공을 아직 더 공고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정상회담을 고집하는 것은 "종전에 관한 제반 문제의 복잡성과 푸틴 대통령의 절대적인 결정 권한을 고려할 때, 양국 정상들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의 게오르기 티히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에 요구 사항을 제시했으나, 키예프 대표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설명하지 않았으나, 전후 맥락을 따져볼 때, 크림반도의 러시아 영토 인정과 4개주로부터의 우크라이나 철군 등을 지목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줄기차게 주장한 30일 휴전은 러시아가 거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딘스키 크렘린 보좌관은 러시아 TV와의 회견에서 "'휴전후 회담하자'는 우크라이나측 제안을 거부했다며 "역사상 전쟁과 협상은 언제나 함께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2년 2월 말 고멜에서 합의한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때 우크라이나가 합의했다면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났을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3년전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잘 알고 있는 그는 "그때 (우크라이나 측이) 늑장을 부려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그후 이스탄불에서 합의를 추진했으나 고멜보다 더 어려웠다"면서 "합의된 초안마저도 서방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인해 정식 서명까지 가지 못하는 등 차질을 빚었다"고 설명했다.
◇회담 결과에 대한 반응은
회담이 끝난 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 폴란드 정상들과 함께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키예프 회동시 진행한 통화 이후 2번째 '콜렉트 콜' 시도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향한 가능한 가장 빠른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러시아가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을 거부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유럽 정상들도 이번 협상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태도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30일 휴전 수락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가 직접 협상에서도 무조건적인 휴전을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몇 시간 동안 러시아는 휴전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러시아는 3년전(2022년 2월부터 5월까지)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그 방식은 부차 등 여러 지역에서 전쟁 범죄를 막지 못했고,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스타머 영국 총리와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푸틴 (대통령)이 휴전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메르츠 독일 총리는 "모스크바가 협상을 방해했다"고 비난했지만, "매우 작지만 처음으로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났다"고 말해 다른 정상들과는 비난의 톤이 조금 달랐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이스탄불 회담이 예상보다 잘 됐다고 평가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미국 랜드연구소의 수석 정치학자 사무엘 샤랍을 인용, "최대 규모의 포로 교환과 휴전 협상을 계속하기로 한 합의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직접 회담에서 예상보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또 우크라이나의 한 대표(세르게이 키슬리차 차관)가 기자회견에서 "평화 회담의 예비적 성공을 언급했다"고 지적하면서 “당사자들은 직접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했다.
미국의 CNN 방송도 익명의 터키 관리의 말을 인용해 "이번 협상이 예상보다 긍정적"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NYT)는 군사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협상이 러시아 지도부의 전술적 승리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휴전에 대한 합의 없이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포기하고 참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아가 내달(6월)에 모스크바와 새로운 협상 라운드를 가질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고무적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NV (new Voice)가 이같이 보도했으나, 러시아 언론은 다음 회동 날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양측은 막후 접촉을 통해 회담 날짜를 잡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사무실도 이날 이스탄불 직접 협상 재개를 환영했다. 사무총장 사무실은 "이번 협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상이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단계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유엔도 우크라이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