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러시아가 전시 경제라면, 우크라이나는 기부 경제, 정상 운용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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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방산산업의 활황으로 호황을 이끈 러시아 경제를 '전시 경제'라고 서방 언론은 규정했다. 그렇다면 서방의 원조에 힘입어 전쟁을 치르고 경제를 꾸려가는 우크라이나는 어떤 경제 체제리고 불러야 할까? 한마디로 '기부 경제'다. 

키릴로 세브첸코 전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총재/사진출처:페북@KyryloShevchenkoCEO
키릴로 세브첸코 전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총재/사진출처:페북@KyryloShevchenkoCEO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키릴 세프첸코(키릴로 세우첸코) 전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9월) 18일 우크라이나 경제 모델을 '도노로노믹스'(донорономикa, donner+economicsй의 합성어/편집자)라고 정의한 뒤 "외국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경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부 경제의 특징을 △GDP의 20%가 넘는 예산 적자를 외부 보조금과 대출로 충당하고 △환율과 인플레이션은 시장 원리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기부자들의 자금으로 관리하는 통화 정책(개입)을 통해 통제되며 △외화 가득은 수출이 아니라 파트너의 '선물'(기부)로 이뤄지는 경제 체제라고 설명했다. 이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자의 신뢰를 유지하고, 원조를 제때 받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총리가 주재하는 정부 회의/사진출처:텔레그램 @svyrydenkoy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총리가 주재하는 정부 회의/사진출처:텔레그램 @svyrydenkoy 

우크라이나 경제 체제를 기부 경제라고 부를 만할까?
우선 내년 예산안을 보자.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달 중순 최고라다(의회)에 제출한 내년(2026년) 예산안에 따르면 재정 적자는 GDP의 18.4%에 달한다. 외부서 조달해야 할 자금 규모는 2조 790억 흐리브냐(UAH, 현재 환율 기준 약 660억 달러)로, 국내 세수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국내 세수는 국방비로만 사용된다는 게 다닐로 헤트만체포 의회 재정위원회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국가 운용의 통상적인 살림 재원은 기부와 대출을 통해 조달된다는 이야기다. 

기부 경제의 위험은 기부(원조)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데 있다. 2025년도 4사분기에 접어든 지금, 큰 문제는 없을까?
 
스트라나.ua는 지난달 30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서방의 지원은 어떻게 되고 있나?'(Что происходит с западной помощью) 코너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NATO)가 지난 8월 이후 우크라이나를 위해 미국산 무기·장비를 구매하는 프로그램(PURL·Prioritised Ukraine Requirements List)을 통해 약 20억 달러 규모의 주문이 들어갔다"며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캐나다가 자금을 지원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추가로 두 개의 주문이 추진되고 있으며, 우리의 목표는 매달 10억 달러의 지원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에 10억 달러라면 연 120억 달러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뉴욕에서 열린 미-우크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900억 달러 상당의 무기 구매 목록을 건넸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내년에 서방으로부터 총 600억 달러의 군사지원을 받아야 할 것으로 최근 추산했다. 하지만 나토는 내년에도 우크라이나에 올해와 같이 500억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토 지원금에 월 10억달러 PURL 프로그램 구매를 합치면 600억 달러를 넘어서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시한) 900억 달러에는 훨씬 못 미친다.

유엔 총회 참석자 뉴욕으로 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유엔 총회 참석자 뉴욕으로 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 대안으로 유럽연합(EU)이 구상한 것이 소위 '배상금 대출' 제도다.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무이자로 1천300억~1천700억 유로를 대출해준다는 구상이다. 로이터 통신은 EU가 러시아 동결 자산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에 최대 1,300억 유로 규모의 '배상금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쟁 종식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배상금을 미리 당겨쓴다는 개념에서 고안됐다. 

문제는 적법성 논란이다.
당장 유럽 현지 매체 유르액티브(Euractiv)가 지난달 30일 배상금 대출은 EU 회원국 내 의견 불일치로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동결 자산을 보유한 중앙예탁기관(CSD)인 '유로클리어'를 통제하는 벨기에의 바르트 드 베베르 총리가 지난달 27일 "러시아의 돈을 마음대로 쓰고, 그 위험은 벨기에에 맡기는 것은 안된다"고 반대했다. 베베르 총리는 "각국 중앙은행이 맡겨 놓은 자금(외환보유금/편집자)을 EU가 마음대로 쓰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바로 유로존에서 자금을 빼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1일 비공식 EU정상회의, 2일 유럽정치 공동체(EPC) 정상회의가 덴마크에서 잇달아 열렸다. 언론들은 정상들이 어느 정도 타협안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러시아 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로클리어/사진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 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로클리어/사진출처:위키피디아
EU 정상회의/우크라 매체 영상 캡처
EU 정상회의/우크라 매체 영상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일 유럽 지도자들은 코펜하겐에서 우크라이나에 1,400억 유로 규모의 배상금 대출에 대해 협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이 제안은 현장에서 "꽤나 차가운" 반응을 얻었다고도 했다. 벨기에는 기존의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고, 프랑스와 룩셈부르크도 추후 불거질 잠재적인 법적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뤽 프리덴 룩셈부르크 총리는 "동결 자산을 활용한 대출금을 향후 어떻게 상환할지와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독일은 배상금 대출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경제적 상황 등으로 개별적인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달(10월) 중에 '배상금 대출'에 관한(사실상 러시아 자산 압류/편집자) 합의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고 독일 일간지 디 자이트가 2일 보도했다. 오는 23, 24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하지만 합의를 속단할 수는 없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1일 EU 정상회의에서 메르츠 총리와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였고, 벨기에는 EU가 동결된 러시아 자산 압류에 대한 책임 공유를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급기야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재무장관이 G7 차원의 지원을 호소했다. 이들 3국 재무장관은 1일 G7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 방안에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촉구했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이 2일 보도했다. 미국, 일본 등 G7이 자국에 묶인 러시아 자산을 유사한 방식(담보 대출/편집자)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면, EU 회원국들의 개별적인 우려도 완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G7 회원국 중 영국은 지난달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캐나다는 EU 구상에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남은 회원국이 미국과 일본이다. G7 재무장관들은 오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차기 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EU의 구상에 러시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일 EU의 배상금 대출 방안을 '절도'라고 반발하면서 "반드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1일 EU가 러시아의 자산을 압류하기 위한 조치(배상금 대출/편집자)를 취할 경우, 러시아는 자국내 외국 자산을 압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특별 절차에 따라 국가 자산의 신속한 매각을 허용하는 법령에 서명했는데, 궁극적으로 러시아 및 외국 기업의 매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외국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하지 않았다. 일부 기업을 '임시 관리'(법정 관리/편집자) 체제로 전환한 뒤 우선 매수자에게 값싸게 넘기는 정도였다. 하지만, 새 법령에 따라 러시아는 외국 자산을 국유화하거나 신속하게 매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2023년 러시아에 투자한 서방 기업의 목록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딧은행(UniCredit SpA), 오스트리아의 라이파이젠 은행(Raiffeisen Bank International AG), 오스트리아 에너지 회사 OMV, 프랑스 에너지 회사 토탈(Total), 프랑스 신선식품 소매 체인 오샹(Auchan), 이탈리아 슈퍼마켓 메트로(Metro), 미국의 다국적 식품회사 몬델레즈(Mondelez International Inc), 펩시(PepsiCo Inc) 등 금융기관에서 소비재 분야까지 러시아에서 가동 중인 수백 개의 서방 기업이 그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대(對)우크라 지원 고민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상 지원을 중단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PURL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유럽 국가들은 단독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지원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만 해도 미국의 대(對)우크라 지원은 유럽을 넘어섰다.

사만다 파워 전 미 국제개발처(USAID) 국장은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 매달 현금으로 15억 달러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재정적자를 메우는데 사용된 이 자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후 끊겼다. 그녀는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자금 규모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라나.ua는 "키예프가 USAID를 통해 500억 달러 이상을 지원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3천억 달러를 제공했다고 주장했으나, 키예프는 1,770억 달러만 받았다고 반박하는 등 지원 규모를 놓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럽의 고민은 또 있다. 대(對)우크라 지원에 앞장선 유럽 주요 정부들의 지지도가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지원 반대 정당들은 여론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독일에서는 우크라 지원에 반대하는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메르츠 총리의 기민당(CDU)을 제치고 국민 지지도 1위로 올라섰다. 영국에서도 당장 선거가 치러진다면, 일부 지방의회를 장악한 나이젤 패라지의 개혁당(Reform UK)이 승리할 전망이다. 스타머 영국 총리는 전임자인 리시 수낙 전 총리보다 지지도가 더 떨어져 영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없는 총리로 전락했다. 프랑스에서도 정치적 위기가 고조돼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삭감에 반발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급기야 정부 불신임 투표가 최근 통과되기도 했다.

 여기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유럽 상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고 싼 러시아 에너지 대신, 비싼 미국산 에너지로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유럽의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할 수 밖에 없다.

EU 외교를 책임지는 카야 칼라스 외교안보 고위 대표의 심정은 절박하다. 그녀는 지난 8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인정하더니, 지난달 26일 유엔 총회 참석 차 방문한 뉴욕에서 미 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를 갖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우크라 지원을 중단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푸틴 대통령이 소치에서 열린 발다이 클럽의 2025 포럼에서 나토 영공을 침범한 미확인 드론 사건을 미국의 군사비 지출을 늘리려는 수단이라고 주장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서방 주요 정치인들은 누가 드론을 발사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드론 사건을 구실로 군사비 지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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