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특수군사 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전부터 지난해(2024년)까지 서방의 대(對)러시아 대응 전략을 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사무총장(2014~2024, 이하 전 총장)이 최근 회고록 '나의 시각에서:전쟁의 시기에 나토를 이끌다'(On My Watch: Leading NATO in a Time of War)를 냈다. 8부로 구성된 회고록은 전자책 버전으로 약 1,000페이지에 이른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 나토 사무총장(위)와 그의 회고록 표지/캡처, 페이스북
스톨텐베르크 전 총장의 회고록을 소개한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엉덩이의 가시처럼) '까탈스런 골칫덩어리'(러시아어로는 занозa в заднице. 엉덩이에 박힌 가시라는 뜻으로, 주로 까탈스럽고 골치 아픈 사람이라는 말이다/편집자)로 불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발언이 나온 곳은 2023년 6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상회의 전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에 대한 표현을 공동성명에 더욱 명확하게 표현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게 바이든 전 대통령을 화나게 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회원국 사이에서는 공동성명 초안으로 '회원국들이 합의에 도달하고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우크라이나가 동맹에 가입하도록 초대한다'로 합의된 상태였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불만을 표시한 트윗(현 X·엑스)를 빌니우스로 가는 길에 띄웠다.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나 가입에 대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공동성명에 대한 논의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그의 트윗은 여러 회원국들에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젤렌스키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미국 측은 짜증을 냈고, 한동안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지원 문구를 삭제할 태도를 보였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바이든 전 대통령이 나에게 몸을 숙여 '그(젤렌스키)는 골칫덩어리'라고 속삭였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오늘 우리는 동등한 파트너로서 만난다. 동맹으로서 만나는 날을 고대한다"며 "이번 공동성명을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고 기억했다.
참고로, 키예프는 2022년 가을 나토 가입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이에 줄기차게 반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의 공식 포기를 휴전 및 협상 시작의 조건으로 제시했으며,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와 자포로제(자포리자)주, 헤르손주(州)에서 우크라이나군 철수를 요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러시아의 최후통첩으로 규정했다.
빌리우스에 이어 2024년 여름,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유럽-대서양 통합(나토 가입 포함)을 향한 지지를 재확인하면서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여정이 진전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마르크 뤼터 현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8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경로는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 문제는 현재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나토 본부앞 광장에 걸린 회원국 국기들/텔레그램 캡처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또 회고록에서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개전 당시 상황을 전했다.
"키예프(키이우)가 며칠 안에, 나머지 우크라이나 지역도 몇 주 안에 함락될 것이라는 것이 나토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러시아군은 최소한 돈바스 지역과 드네프르강 동쪽 지역을 신속하게 점령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2022년 3월 24일 나토 정상들이 브뤼셀에서 특별 정상회의를 가졌을 때, 러시아의 승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썼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의 무관심을 비난하고 군사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는 또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와 협상을 하고, 최전선에서 전쟁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핀란드식 해결책'을 처음 암시했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떤 영토 양보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토 양보에 대한 젤렌스키 대통령과 참모들의 거부감은, 나토 가입을 통해 새로운 국경과 우크라이나 안보가 보장된다는 조건 하에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재임 시절 나토의 군사적 효율성이 약화됐다고도 했다.
"나토는 냉전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변했다. 상당한 삭감과 감축이 이뤄졌다. (중략) 나토는 평화 보장과 공동 안보 수호라는 핵심 임무로 복귀하기 위해 투자와 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그는 노르웨이 출신 기자인 페르 안데르스 마드센과 약 5년간 회고록을 집필했다면서 "나토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첫날부터 이 책을 준비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국가 방문이나 회담이 끝나면 자신의 생각을 녹음기에 남겼고, 사무국 직원들은 업무 일지를 세세하게 작성했다. 그러다 보니 회고록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이 나토가 직접 관여한 사건들에 많이 할애됐고, 중동 문제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러-우크라 언론을 참고해 스톨텐베르그의 회고록 내용을 분야별로 소개한다/편집자
스톨텐베르그 전 나토 사무총장의 회고록 발간을 전하는 AFP 보도/캡처
◇러시아와의 대화 시도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취임 당시,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가 자신의 핵심 업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며 새로운 양자 관계 구축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나는 '우리(나토)가 러시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 답은 간단했다. 강력한 나토와 러시아 간의 건설적인 관계 발전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보았기에, 나는 모스크바와의 대화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나토주재 러시아 대표부 대표(주나토 대사)로 나와 있던 알렉산드르 그루슈코(현 러시아 외무부 차관)와의 어릴 적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알렉산드르)의 아버지 빅토르 그루슈코는 KGB 제1국 요원으로 1955~1972년 노르웨이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빅토르는 당시 젊은 외교관이었던 나의 아버지와 알고 지냈다. 나도, 알렉산드르도, 같은 적십자 병원에서 태어났다."
"나는 사무총장 부임 한 달 후인 2014년 11월, 그루슈코 대표(2021년까지 재임)를 회의에 초대하기로 했다. 동료들은 그의 초대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동료들 중 누구도 내가 그루슈코 대표와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루슈코 대표와의 '어려운 대화'는 러시아와 나토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한 한, 매우 큰 이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나는 '모스크바로 가는 문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러시아-나토 이사회의 완전한 기능 회복을 위해 나는 노력했지만, 다른 회원국들과 나토 본부 내 저항에 부딪혔다. 미국은 가능한 모든 대화는 양자 간에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반대했고, 영국도 같은 의견이었다. 이들은 러시아와의 대화가 나토의 열세를 인정하고 러시아식 (우크라이나) 접근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국가들은 대화를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의 혼란을 피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노르웨이 총리 시절인 2001년 6월 모스크바를 처음 방문했다.
"분위기가 좋았다. 푸틴 대통령과 양국간 긴밀한 협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의했다. 노르웨이 기업들은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었고, 양국은 해상 구조 작전을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다만, 바렌츠해에서 러시아와 노르웨이 간의 국경 획정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었다(2010년 9월 5일 양국 합의). 푸틴 대통령은 북극해의 러시아 영토 '스발바르 제도'에서의 러시아 이익에 대해 노르웨이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데 동의했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2022년 4월 '스발바르'(러시아명 '쉬피츠베르겐'·러시아어로는 Шпицберген 쉬삐쯔베르겐) 제도에서 일하는 러시아인들에게 가는 화물 컨테이너 2개의 국경 통과를 막기도 했다.
그는 수년간 수많은 협상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근면하고 합리적이며, 목표 지향적인 정치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는 협상 주제에 대해 늘 잘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들은 합의된 내용을 존중한다'고 믿었다. 이게 내가 주변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 대해서는 "어떤 물리적 시험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회고록에 썼다.
"2015년 2월 뮌헨에서 라브로프 장관과 만났는데, 그는 우아한 외교관과 난폭한 무례함이 절묘하게 결합된 인물이었다. 협상 테이블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노르웨이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말을 상기시켰다. 또 나에게 '당신은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될 조직을 이끌고 있고, 작은 나라 출신인 당신은 시골뜨기 같은 사람과 만나고 있지만, 우리(러시아)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우리는 절대 잠을 자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의 모든 행동, 가는 곳,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와의 대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했던 유럽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며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이 냉전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러시아를 다시 강대국으로 만들고 싶어했으며, 이를 통해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동유럽 국가들을 장악하려 했다'고 여겼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과의 좋은 관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그녀는 판단했다."
◇러시아-NATO 이사회 해체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2021년 봄,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위성 사진을 입수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록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태도를 바꿨지만, (러시아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고 밝혔다.
"내 생각에는 러시아인들을 악마화한 것은 (우리의) 실수였다. 나는 여러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예술과 문화에 경의를 표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에도 감사를 표시했다."
러시아-나토 이사회 해체 직전인 2021년 9월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뉴욕 유엔 총회에서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만났다. 그는 (발트 3국과 폴란드가 반대했던) 완충지대의 설정 등을 논의할 러시아-나토 이사회 회의를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라브로프 장관은 관심이 없었다. 회의가 열리더라도 우크라이나 문제가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러시아 측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믿고 있다.
다음달(10월) 6일, 나토는 러시아 대표부 직원 8명을 추방하고 2개 직책을 추가로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상주 나토 대표부 직원의 수도 20명에서 10명으로 줄였다. 이에 맞서 러시아 외무부는 같은 달 18일 나토 주재 대표부의 무기한 폐쇄를 발표했고, 이후 대표부의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러시아는 나토 대표부 폐쇄를 사전에 (나토 측에) 통보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이 다시 쾅 닫혔다"고 썼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인 2022년 1월 12일 러시아-나토 이사회 회의가 개최됐다. 러시아가 제안한 안보 보장 문제가 논의됐다. 주요 쟁점은 나토의 동진(東進) 포기를 비롯해 구소련 공화국의 나토 가입,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활동, 나토 비회원국의 나토군 배치 등이었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러시아가 이 회의에서 미국과 나토가 수십 년 동안 유럽의 평화를 보장해 온 안보 질서를 바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의 체결을 요구했다"며 "이 제안이 최후통첩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나토군 배치 문제는 언제든지 협상이 가능했다"며 "러시아가 균형 있고, 검증 가능한 조약을 체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일부 조항은 협상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나 일방적인 나토군 철수는 불가능했다"고 기억했다.
회의에는 주나토 러시아 대표부 대표를 지낸 그루슈코와 알렉산드르 포민 러시아 국방차관이 참석했다.
"러시아 대표들은 나토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나토가 공격적인 군사 동맹이라는 판단이 확고해질 것이며, 이는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회의가 긴박한 시기에 열린 만큼 러시아 측 발언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러시아는 계속 위협적인 태도를 유지했고, 우리는 해결책을 전혀 찾지 못했다. (회의 후에는) 푸틴 대통령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의문만 남았다."
2022년 초, 나토는 모스크바의 제안(협박)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러시아와 자체적으로 대화를 진행하고 안보 보장에 대한 독자적인 제안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원국 정보기관들이 올린 정보는 결이 달랐다. 독일과 프랑스 정보기관들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의) 러시아군 배치를 '계절적 기동'이라는 표현을 쓰며 예민하게 보지 않았다. 베를린과 파리는 8년 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처럼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아니, 8년 전 위기 평가와 거의 일치했다. 이는 나토 회원국 간에 대(對)러 접근 태도에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나토의 분위기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러시아의 특수군사 작전 개시 전,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더욱 불길해졌다"고 강조했다.
"2022년 2월 초,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나토 공조를 위해 일부 정상들과 (온라인) 정기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이 회의에는 나를 포함해 영국과 캐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연합(EU)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회의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 개시를 알린 것은 2월 11일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16일부터 러시아가 군사 행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정보를 공개했다. 그는 '러시아가 이틀 내에 키예프를 점령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 경제와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을 겨냥한 제재 문제를 꺼냈다. 존슨 영국 총리는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제재 조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정상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반대했다. 나토는 키예프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로의 파병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매년 2월에 열리는) 뮌헨 안보회의 개막 전, 러시아 측이 크림반도에서의 군사 훈련 종료를 발표했으나 실제로 병력 감축의 조짐은 없었다"며 "많은 참석자들은 오히려 젤렌스키 대통령의 회의 참석에 놀랐다"고 회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의에서 러시아의 군사 행동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의 침략 임박 경고는 서방 기업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게 하고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그같은 사태(러시아 군사행동)를 막을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있었다. 나는 러시아가 침공을 계획하는 것과 침공을 결정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러시아의 특수군사 작전 개시를 데이비드 커틀러 나토 정보 및 안보 보좌관의 보고를 통해 알았다.
"우리(나토)는 곧바로 앤터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오스틴 장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키예프에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겠다고 했더니, '피난처가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알려줬다."
"그날(특수군사 작전 개시) 아침, 나토 본부의 분위기는 매우 엄중했지만 차분했다. 표면적으로는 불안이나 혼란의 기색은 전혀 없었으며, 모두가 자신의 책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부터 (지금보다는) 덜 안전한 유럽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하는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대화
스톨텐베르크 전 총장은 2022년 2월 28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첫 통화를 가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전보다 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 나토는 러시아 항공기를 격추해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나는 그(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비행금지구역 설정 대신에) 키예프에 대한 군사 지원을 늘리기로 합의했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그는 '당신은 나토가 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되물었다. 또 우크라이나 영공을 폐쇄(비행금지구역 설정)하는데 법적 제한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나토는 지상군이나 공군을 동원해 분쟁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지만, 영공을 폐쇄하면 러시아와의 갈등에 직접적으로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고통스러운 대화(전화 통화)에서 벗어나는 데 몇 분이 걸렸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했지만,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냉혹한 현실이었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나토가 처음에는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키예프는 며칠 안에, 나머지 우크라이나는 몇 주 안에 함락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하지만, 3월 24일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특별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의 승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해졌고,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나토를 비난하며 군사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우리(나토)는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기준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우리가 무기 지원에 너무 많이 한 걸까? 너무 적게 한 걸까? 푸틴 대통령에게는 그 선이 어디까지였을까? 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를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임인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과 처음 논의했다고 밝혔다. 대화는 2015년 9월 우크라이나 르보프(리비우) 인근에서 진행된 우크라-나토 합동 군사 훈련 참관 중, 포로셴코 대통령의 전용차 안에서 이뤄졌다. 그는 포로셴코 전 대통령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정치 지도자"라고 묘사했다.
"살라미 소시지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던 중, 포로셴코 대통령이 나에게 '우리(우크라이나)는 언제 나토 회원국이 될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때 나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EU 가입을 통해 서방 세계에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려는 열망을 제대로 알게 됐다. 동시에,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헛된 희망을 품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나는 그에게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 지위에 더 가까워지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는 약속만 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이슈는 2022년 전쟁 발발후 다시 제기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중 나토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방식으로 그 의지를 드러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 여름 빌니우스 나토 정상회의에 자신을 초청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쟁이 끝나는 날 키예프는 나토 가입에 관한 공식 초청을 받아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했다. 그러나 나는 '키예프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며 이 문제가 나토에서 얼마나 큰 논쟁거리인지 그에게 알려줬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한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토 전체가 오랫동안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폴란드와 발트 3국은 우크라이나가 가능한 한 빨리 나토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과 미국은 이에 반대했다. 두 나라도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회원국이 될 자격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나토의 개입은 러시아와의 갈등 심화 및 대규모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것을 우려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회원국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로 모은 것은 2023년 5월 말 오슬로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의였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그 회의에서 "나토 가입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공식 초청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회원 가입의 기회를 더욱 넓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나토 회원국들은 빌니우스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협의를 통해 △우크라이나군과 나토 간의 공조를 확인하는 포괄적인 대(對)우크라 지원과 △우크라이나-나토 이사회 출범 △우크라이나에 대한 회원국 가입 행동 계획(Membership Action Plan)의 요건 면제 등 3개 항을 최종적으로 제시했다. 다행히 3개 항 계획은 미국 등 회원국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바이든 미 대통령도 나에게 오슬로 제안을 지지한다고 확인했다. 그 결과, 빌니우스 나토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는 '합의에 도달하고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하도록 초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빌리우스로 오는 길에 올린 트윗 글로 순탄치 않았다. 바이든 미 대통령도 화가 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골칫덩어리'라고 불렀다.
◇대(對)우크라이나 자금 지원의 어려움
스톨텐부르그 전 총장은 재임 기간 키예프를 위해 기울인 노력 너무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종종 괴로워했다고 토로했다.
"나는 재임 기간에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노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종종 자문했다. 실제로 나토의 2024년 대(對)우크라 지원 규모는 나토 회원국 전체 GDP의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치적 의지가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해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 이전에 각국 정부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문제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국 정상들은 국내에서 자신의 지지를 떨어뜨리는 (사회보장성) 지출의 삭감이나 세금 인상 없이는 예산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다."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여러 정상들이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나는 '평화로 가는 길은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 목표물에 대해 서방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블링컨 국무장관의 회담에서 키예프만이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안을 정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가 모든 영토를 수복할 것이라는 열망이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다. 종전 협정에는 적어도 중기적으로는 키예프가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직접 통제에 동의하는(영토 양보) 내용이 포함되는 게 맞다고 인정했다. 물론, 두 사람은 이것이 러시아 영토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두 사람은 또 미국이 발트 3국을 소련의 일부로 인정한 적이 없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국가 안보를 위해 땅을 양보한 핀란드의 (겨울전쟁, 1939년 11월~1940년 3월) 종전 방안을 알려줬다고 썼다.
"내가 핀란드식 분쟁 해결 방안을 처음 몇 차례 암시했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2024년 여름,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크라이나가 안보 보장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지는 휴전 협정의 틀 안에서 '중기적인 영토 양보'에 대한 반대 의사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설득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의 만남.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2015년 6월 오스트리아에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만나 나눈 대화를 회고록에 남겼다. 그는 "키신저 전 장관이 미국에서 77년 간이나 살았지만, 독일식 억양이 두드러졌다"며 "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했고, 냉전 종식 이후 나토의 동진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키신저 장관은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가 결코 단순한 외국이 아니다는 점을 서방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의 역사는 키예프에서 시작되고, 자유를 위한 러시아(소련)의 가장 중요한 전투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벌어졌다'고 했다."
키신저 장관은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에 대해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국가로서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서방이나 동방(러시아)의 전초기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동서양을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한 국가의 외교 정책은 올바른 우선 순위를 정하는 기술인데, 우크라이나는 서방보다 러시아에게 더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너무 자주 상호 배타적인 선택, 즉 친서방이냐, 친러시아냐의 노선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우려스럽다."
그는 키신저 전 장관의 발언을 (대우크라이나 정책에서)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
◇스톨텐베르그 전 총장은 누구?
1959년 3월 1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난 그는 오슬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대 시절에 노르웨이 노동당에 입당했다. 노르웨이 산업에너지부 장관(1993년~1996년)을 지낸 뒤 두 차례(2000년~2001년, 2005년~2013년)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2014년 나토 사무총장을 맡았으며, 2018년 사임할 예정이었으나, 적절한 후임자가 없어 임기가 세 차례나 연장됐다. 2024년 10월, 마르크 뤼터 전 네덜란드 총리에게 사무총장직을 물려주고 나토 본부를 떠났다. 이후 2025년 2월 16일, 뮌헨 안보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출처 : 바이러시아(https://www.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