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또 빈손으로 돌아온 젤렌스키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대체 무슨 일이?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바로가기기사저장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큰 마음을 먹고 17일 워싱턴으로 날아갔으나, 거의 빈손으로 귀국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이라면 일부 매체는 아마 '워싱턴 외교 참사'로 기록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이 끝난 뒤 곧바로 유럽 주요 정상들과 전화 통화했는데, 메르츠 독일 총리는 "그(젤렌스키)가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또 스타머 영국 총리는 통화 중에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휴전 협정'의 기본 틀인 트럼프 방식의 20개 행동 플랜(계획)과 유사한 우크라이나의 평화 프로젝트를 공동 개발하자"고 제안했다.(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 보도)

미 백악관에서 열린 미-우크라 정상회의/사진출처:텔레그램
미 백악관에서 열린 미-우크라 정상회의/사진출처:텔레그램

 

젤렌스키 대통령이 10.17 워싱턴 미-우크라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할 때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다. 8.15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러 관계가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거듭 표명했다. '알래스카 효과는 끝났다'는 식의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의 발언을 크렘린(우샤코프 보좌관)이 "잘못된 인식"이라고 반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도 긍정적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대(對)러 압박을 위해 미국산 토마호크 장거리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제공(나토가 구입한 뒤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PURL·우크라이나의 우선 구입 목록 프로그램/편집자)하는 데에도 비교적 열린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그러한 조치가 미·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발끈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미-우크라 정상회담의 의제는 토마호크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이전 여부로 좁혀졌다. 기대에 부푼 젤렌스키 대통령은 토마호크 미사일로 러시아 방위산업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지점을 표시한 지도를 갖고 미국으로 향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이나가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RBC-우크라이나에게 "젤렌스키 팀이 갖고 간 몇 개의 지도들은 푸틴 대통이 전쟁을 끝내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러시아의 방위 산업과 전시 경제 체제의 취약한 고리들을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는 토마호크 미사일로 러시아 주요 군사 기반및 석유·에너지 시설을 타격할 경우, 푸틴 대통령의 전시 경제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브리핑 자료로 준비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토마호크 장거리 미사일/사진출처:lsm.lv
미국의 토마호크 장거리 미사일/사진출처:lsm.lv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시작부터 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당초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백악관에 도착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줄줄이 밀리면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예정된 오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귀국 비행기를 타야 했다. 

놀라운 것은 늦어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기다리는 백악관 분위기. 프랑스24 특파원은 "백악관의 기묘한 풍경"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기다리면서 이탈리아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그의 히트곡 '콘 테 파르티로'(Con Te Partiro, 이탈리아어로 '당신과 함께 떠나요'라는 뜻)를 듣고 있다"고 전했다. 전세계가 젤렌스키-트럼프 정상회담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뉘앙스(어감)으로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보첼리의 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보첼리가 공연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16일) 푸틴 대통령과 2시간 30분에 걸쳐 전화통화를 한 것도 우크라이나에게는 조짐이 좋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워싱턴에 도착한 뒤 푸틴-트럼프 전화 통화 내용을 듣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경쟁 상대와 먼저 대화를 나누는 트럼프식 행동에 속이 적잖이 상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 없는 게 '을'의 입장인 우크라이나가 처한 형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개된 흐름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표명하고 러시아 에너지 수입국에 대한 2차 관세 부과 등 광범위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러시아 최대 석유 수입국들인 중국과 인도가 이를 거부하자, 인도에 대한 관세부과를 발표한 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푸틴 대통령과의 집권 2기 첫 정상회담을 알래스카에서 가졌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평화에 대한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고 자화자찬했다.

이후 서방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종전안에 합의했고, 러시아 측의 요구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 철군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져 나왔다. 

미-러 정상회담을 위해 알래스카에 도착한 푸틴-트럼프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미-러 정상회담을 위해 알래스카에 도착한 푸틴-트럼프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하지만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 표명과 함께 러시아를 '종이 호랑이'로 부르며, 우크라이나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제공하겠다고 위협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우크라 정상회담이 성사됐으니, 젤렌스키 대통령은 토마호크 미사일 등 러시아와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군사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토마호크 미사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출범이후 중단된 군사 지원을 일부라도 복원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같은 꿈은 또 이그러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한 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공급하거나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알래스카 정상회담의 '버전-2'가 아닐까 싶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을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도 없이 러-우크라 양측에게 "여기에서 그만 멈춰라"고 촉구하는 데 그쳤다. 

핵심 의제였던 토마호크 미사일의 제공 문제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인 트루소셜에서 "미국도 그 무기가 필요하다. 토마호크 미사일을 생각하지 않고도 전쟁을 끝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후 백악관 바깥에서 가진 짧은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 반복되자 "미국에 물어봐라, 그건 그들의 무기이니까"라고 짜증스럽게(?) 대꾸하기도 했다. "양측이 장거리 무기에 대해 논의했지만, 미국이 전쟁 격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것과는 달라진 태도였다.
그만큼 협상 분위기가 싸늘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 등의 보도를 보면, 두 정상의 토마호크 미사일 논의 과정은 다소 격렬했다. 큰소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토마호크의 제공을 강하게 요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최우선 순위가 외교라며 토마호크를 제공하면 외교가 훼손될 수 있다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악시오스는 또 회담이 2시간 30분 만에 갑작스럽게 끝났다고 전했다.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의 미 백악관 회동 모습/미 백악관 트루스 소셜 캡처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의 미 백악관 회동 모습/미 백악관 트루스 소셜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토마호크를 얻어내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토마호크와 드론을 교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관심을 끄는 수준에 불과했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에서 추구한 세 가지 목표(최대 목표는 토마호크 미사일 확보, 중간 목표는 무상 군사원조 지속, 최소 목표는 다양한 분야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박 강화/편집자) 중 단 하나도 달성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부다페스트 미-러 정상회담에 대한 젤렌스키-트럼프 대통령의 시각도 달랐다. 
회담이 끝난 뒤 '푸틴 대통령이 부다페스트 회담을 통해 진정한 협상을 원한다고 보느냐, 아니면 시간을 벌려는 것이냐'는 질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르겠다"고 말한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토마호크 미사일을 가질까 두려워한다"며 협상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신경 안 쓴다"며 "여러 번 당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잘 해왔다"고 답변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후속 질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며 "어제(16일) 그와 두 시간 반 동안 통화했고, 많은 세부 사항을 논의했는데, 푸틴 대통령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할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토마호크 문제가 푸틴 대통령의 회담 제안을 이끌어낸 것이냐'는 질문에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고 수긍하면서 "푸틴대통령도 협상을 원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에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공허한 이야기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토마호크를 생각하지 않고도 전쟁을 끝낼 수 있기를 바란다"며 "두 사람 모두 승리를 선언하게 하고,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고 썼다. 양측이 모두 승리를 선언하게 하라는 것은 결국 '외교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의미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백악관 밖에서 가진 짧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맞다.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전투를 멈추고 평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동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협상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모스크바는 공식적으로 키예프(키이우)에 남동부 4개 지역(돈바스지역과 자로포제, 헤르손 주)을 양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군이 통제하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주(州) 일부 지역을 넘겨줄 것(결과적으로 돈바스 지역 전체 요구/편집자)을 요구하는 선으로 물러서고, 나머지 지역에선 현 전선에서 동결하자는 양보안을 내놓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기는 버겁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토 양보와 휴전 간의 '선후(先後) 문제'를 제기하며 "어렵지만,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는 선(先)영토 양보, 후(後)휴전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휴전부터 한 뒤 다른 모든 것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절충이) 매우 어렵다"고 인정했다. 

스트라나.ua는 18일 "두 정상이 공개된 의제에 대한 진전이 거의 없었는데, 점심까지 거르면서 2시간 반이상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라고 자문(自問)한 뒤 "토마호크 문제 외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전한 '영토와 휴전의 선후 문제'가 논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종식·휴전의 조건인) 안보 보장 문제도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협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토마호크 미사일을 이용한 우크라이나의 대(對)러 공세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휴전 협상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다페스트 회담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을 옆에 두고, "푸틴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이에는 좋지 않은 감정(bad blood)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불편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며 "3자 간 논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별도로 만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결국에는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다페스트 회담에 대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유럽 정상들을 놀라게 만든 회담 장소의 선택에 대해서는 "헝가리를 안전한 나라(푸틴 대통령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탈퇴/편집자)"라고 부르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노력을 칭찬했다. 그는 "오르반 총리도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를 좋아한다"며 "아주 좋은 호스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회담이 끝난 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악관 바깥에서 짧은 브리핑(회견)을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채 헬리콥터를 타고 플로리다를 향해 급히 떠났다. 그리고 헬리콥터 안에서 회담 내용을 트루스 소셜에 올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전용 헬기가 백악관에서 이륙하는 모습/사진출처:페이스북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전용 헬기가 백악관에서 이륙하는 모습/사진출처:페이스북

스트라나.ua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워싱턴 회동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극 개입하기보다는 거리를 두는 쪽으로 더 기울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의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시나리오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의 극적인 휴전 동의, △트럼프 대통령의 대러 강력한 제재, △트럼프 대통령의 대우크라 양보 압력 등의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을 줄이면, 현재와 같은 소모전에서 러시아가 점차 더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협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같은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향후 과제는 유럽의 지지라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유럽의 재정적 지원 규모다. 내년에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1,200억 달러를 유럽이 모두 지원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다. 그렇다고 러시아 동결자산을 활용한 '배상금 대출'도 벨기에 등 일부 국가의 반대로 성사가 불투명하다. 날이 갈수록 키예프의 상황은 악화할 게 분명한데,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진짜 뭘까? 대러 제재를 할 듯 말 듯, 대우크라 지원을 할 듯 말듯 시간을 끌면서 우크라이나의 양보(선 영토 양보, 후 휴전)를 겨냥하고 있지나 않을까 싶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