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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태풍'급으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 에너지 분야의 권력형 부패 스캔들(사건)이 '핵폭탄'급으로 바뀔 조짐이다. 우크라이나 부패사건을 수사하는 국가 반(反)부패국(NABU, 나부)과 기소를 담당하는 반(反)부패특별검찰국(SAPO, 사포)가 12일, 전날 체포한 사건 피의자 5명에 대한 고등반부패법원의 심사(우리 식으로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 혹은 영장실질심사)에서 권력형 비리 구조를 낱낱이 공개하면서다. 서방 일부 언론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퇴진까지 거론할 정도다.

법원의 심사 결과, 체포된 5명 중 일단 3명이 60일간 구속됐고, 연루설이 불거진 법무·에너지부 장관이 사임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11일) 일일 대국민 메시지(영상)도 건너뛰었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키예프(키이우) 등 주요 도시의 정전 사태가 장기화하고, 도네츠크주(州)의 전략 요충지인 포크로프스크의 함락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일일 대국민 메시지 취소는 그만큼 급박했다는 정황 증거나 다름없다.
또 사건 수사 발표 하룻만에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게르만 갈루센코 법무장관과 스베틀라나 그린추크 에너지부 장관이 서둘러 사임한 것은 정권 차원의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즉각 이번 스캔들(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의 공무직 해임을 총리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2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민디치 사건: 첫 번째 목들이 날아갔다'(Дело Миндича. Полетели первые головы) 코너에서 "구속 여부를 따지는 법원 심사(영장실질심사)에서 새로운 내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갈루셴코 법무, 그린추크 에너지부 장관이 즉각 사임했다"고 전했다. 스비리덴코 총리 정부도 이날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이자 대통령 최측근인 티무르 민디치와 그의 재무 책임자 알렉산드르 츠케르만에 대한 제재를 공식 요청했다. 두 사람은 NABU의 압수수색 전날(10일)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갔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민디치가 세 자녀의 아버지(동원 면제자/편집자)로서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다.

검찰(SAPO, 사포)이 법원 심사에서 공개한 내용을 보면 이번 사건은 권력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해 부정한 이익을 취하는 소위 '국정농단'을 떠올리게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과거 설립한 엔터 업체 '크바르탈95'의 공동 소유주인 민디치가 대통령을 업고 사사로이 권력을 휘둘렀다는 뜻이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민디치는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를 이용해 에너지 분야에서 범죄적 수단으로 획득한 자금의 축적, 분배, 합법화를 통제했다"고 혐의를 설명했다. 특히 "민디치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갈루셴코 (전)장관이 대통령과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스트라나.ua는 "이번 사건이 대통령실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연결될 것임을 검찰이 공개적으로 암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공개된 (도청) 녹음 파일에는 갈루셴코 장관이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후 민디치와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검찰은 법정에서 민디치 일당의 권력 남용 혐의를 세세히 밝혔다. 도청된 대화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차기 정부의 장관및 주미 대사에 대한 인사는 물론, 에너지부와 환경부의 통합 등 조직 개편도 논의했다. 또 압수된 거액의 현찰을 보면 금융권 윗선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400만 달러 상당의 봉인된 묶음에는 바코드와 미국 도시의 표시가 찍혀 있는데, 이는 국영화한 '센스 은행'이 민디치 부패 네트워크에 가담한 증거이며, 미콜라 글라디셴코 금융 감독위원회 의장 등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 야당 인사는 주장했다.
검찰은 또 국가수사국(SBI) 요원들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수사하고, 국가수사국 요원들이 5%를 가져가기로 합의했다"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에는 정부 고위 관료와 에너지 부문, 금융권, 법 집행 기관의 이익이 얽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최고 권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즉각 현직 장관 2명을 해임하는 등 꼬리 자르기에 나섰지만, 이 사건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최측근 민디치가 대통령의 묵인 없이 독자적으로 대규모 부패 계획을 꾸몄다는 주장을 믿을 우크라이나인들은 별로 없고, 반부패기관들과 시민단체, 포로셴코 전 대통령과 같은 야당 인사들이 '반(反)젤렌스키 동맹'을 꾸려 적극 공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불똥은 곧 우메로프 전 국방장관(현 국가국방안보회의 서기), 말류크 보안국(SBU) 국장, 예르마크 대통령실장, 스비리덴코 총리에게로 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유일한 대응 방법은 NABU와 반젤렌스키 세력에 대한 전면 공격이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미 두 현직 장관의 해임을 통해 '꼬리 자르기'에 나선 만큼, 목숨을 건 정면 돌파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언론은 이리떼처럼 권력 물어뜯기에 나선 상태다. 언론의 속성상 한번 문 '핵심 이슈'를 쉽사리 놓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부실한 방탄조끼의 발주 등 민디치 주변에 떠돈 각종 스캔들이 이 사건 이후 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 계속 터져나오는 이유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권력 기반을 뒤흔들 스모킹 건(결정적인 증거)은 민디치 아파트를 도청한 녹음 테이프다. NABU는 그 일부를 언론에, 또 일부는 법정에서 공개했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음성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만약 사실이고, 공개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 회오리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역사에는 녹음 테이프 하나로 권력을 내놓은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25년 전인 2000년 11월 당시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긴 소위 '공가제 암살 관련 녹음 테이프'다. 그 내용은 쿠치마 대통령이 언론인 조지아(그루지야)계 우크라이나인 게오르기 곤가제(Георгій Ґонґадзе, 1969–2000) 암살을 명령했다는 것. 이 녹음은 공개 즉시 '카세트 게이트'로 확대되고, 쿠치마 대통령의 10억 달러 횡령 폭로가 이어지면서 정권 자체가 휘청거렸다. 우크라이나의 야당은 '쿠치마 없는 우크라이나' 운동을 벌이며 정권 퇴진을 밀어붙였다. 쿠치마 대통령은 차기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후계자로 2014년 '유로 마이단'으로 쫓겨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대통령을 지목했다.

스트라나.ua는 "곤가제 녹음 테이프 하나가 우크라이나 역사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대, 거대한 격변의 시대를 열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이후 두 차례의 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내전, 2022년 2월의 전면전에 이르는 지정학적 혼돈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규정했다. 이 모든 역사적 격변을 촉발한 게 25년 전 공개된 '녹음 테이프' 하나라는 것이다.
또 정치·경제·사회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소위 '순환 이론'에 따르면, 그 주기는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주기 이론 중 하나는 25년설이라고도 했다. 25년 전 '테이프 스캔들'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한 시대가 또 한번 '녹음 테이프'로 종말을 맞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