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우크라 부패 스캔들의 국면 전환-2)미국 평화안에 대한 젤렌스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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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국면 전개 두가지-평화협상에서 계속.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끝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년 9개월 전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특수군사 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직후 일부 서방 국가의 망명 권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공격에 저항하기로 하고, 정장 대신 특유의 전투복을 입었다. 그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는 숱한 압박과 회유, 설득 과정을 이겨냈을 것이다.

오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수순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측에 제시한 평화계획 28개항(미국의 평화안)의 수락 여부를 놓고 그는 3년 9개월 전보다 훨씬 더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선택은 1차적으로 추수감사절인 오는 27일까지다. 앞으로 나흘 가량 남았다. 최종적으로는 연말까지 서명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데드 라인'을 흘리며 대놓고 압박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텔레그램@V_Zelenskiy_official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텔레그램@V_Zelenskiy_official

 

그의 국내 정치적 입지도 흔들리는 상황이다. 사업 파트너였으며 측근인 티무르 민디치 주도의 에너지 부문(원전 기업 에네르고아톰) 부패 스캔들이 최고라다(의회)와 시민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포크로프스크 등 최전선 전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유럽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국가 반부패기관(NABU·나부와 SAPO·사포)은 여차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민디치 아파트에 대한 도청 내용을 터뜨릴 태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1일 특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에 얹어 이렇게 설명했다.
"국가의 명예와 존엄성을 잃거나 핵심 동맹국(미국)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든, 혹은 (미국이 제시한) 어려운 평화 계획 28개 항을 받아들이거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압박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그는 또 이같은 상황을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타개할 기회로 삼을 뜻을 내비쳤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단결이 필요하고, 우리는 모두 정신을 차리고 서로 싸우는 걸 멈춰야 한다. (중략) 전시에는 의회도 일사분란하게 일해야 하고, 정부도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국민은) 우리의 적이 누구(러시아)인지 잊지 말고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가장 유력한 그의 선택은 미국의 대(對)러시아 강경파(매파, 전쟁 옹호파)와 유럽 주요 국가들(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지지를 믿고 미국의 새 평화안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의 결과를 전해 듣고, 유럽 주요 국가들과 함께 평화안을 만든 뒤 이를 지난 8월 18일 워싱턴을 방문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제안은 미국의 이번 평화 계획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주목할 것은 우크라-유럽이 평화안 수락을 거세게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번에도 주저앉힐 수 있느냐 여부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다고 해도, 러시아가 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전쟁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데, 우크라이나가 무기및 군사 정보 등에 관한 미국의 대우크라 군사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무조건 항복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새 평화안을 들고 키예프(키이우)를 찾은 드리스콜 육군장관 등 미 군사 대표단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의하고 있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미국의 새 평화안을 들고 키예프(키이우)를 찾은 드리스콜 육군장관 등 미 군사 대표단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의하고 있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1차 관문은 조만간 스위스에서 열리는 미국과의 후속 접촉이다. 미국의 평화안을 1차적으로 검토한 뒤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회의(우리의 국가안보실 격) 서기(장관급, 사무총장)은 며칠 안에 스위스에서 미국과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단장은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이 맡는다. 일부 매체는 우크라-유럽이 며칠 내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안 수정의 설득에 나설 것이라며 유럽 대표도 스위스 접촉에 참석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미국 평화안에서 우크라이나 측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대목은 역시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러시아 측에 넘겨주고, 향후 병력을 60만명 수준으로 묶고, 나토(NATO) 가입을 금지한 부분이다. 크리스티나 가요비신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표부 부대표(차석 대사)는 20일(현지 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이를 "'레드 라인'(금지선)을 넘어선 것"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오래 전에 '평화 원칙'에 포함시킨 러시아의 피해 보상 및 전쟁 범죄의 단죄 부분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새 평화안은 러시아가 동결 자산중 1천억 달러만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투자하고, 전쟁 범죄를 일체 묻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와 러시아 정교회를 유럽연합(EU)의 기준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조항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에게는 아주 껄끄럽다.

하지만 이같은 불만은, 어쩌면 현실을 무시한 감정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존엄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만약 그(젤렌스키)가 (이 평화안을) 싫어한다면, 아마도 계속 싸워야 할 것"이라며 "얼마 전 대통령 집무실(백악관)에서 그에게 '당신은 그럴 만한 카드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키예프가 미국의 평화 계획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줄이겠다고 이미 경고했으며, 언젠가는 뭔가를 받아들여야 할 터인데, 지금까지 그는(젤렌스키) 아무 것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른 자리에서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잃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계속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계속할 경우) 돈바스의 나머지 지역도 잃게 될 게 자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트라나.ua는 21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젤렌스키 대통령의 마감일' (Дедлайн для Зеленского)이라는 코너에서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미국의 새 평화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며 "일부 조항에 대한 수정을 미국 측에 제안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과거(지난 5월과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 이후/편집자)에는 미국의 종전 제안에 포함된 돈바스 주둔 병력의 철수 등에 대해 즉각 공개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고 '레드 라인'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중대한 상황 변화"라고 해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SNS를 통해 미국-유럽과의 접촉 사실을 알리며 자신의 입지 구축에 적극적이다. 그는 "미국 측이 준비한 문서를 검토 중"이라며 "이는 실질적이고 존엄한 평화를 보장하는 계획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이익이 모든 단계에서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 거의 매시간 회의, 통화, 협상이 진행 중이며 많은 걸 바꿀 수 있는 조항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밴스 미 부통령과 통화한 사실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는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항상 존중해 왔고, 앞으로도 존중할 것이며, 모든 현실적인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통화 내용을 SNS에 썼다.

하지만 모든 여건은 그에게 불리하다. 특히 그에게 평화안을 제시한 댄 브리스콜 육군장관이 우크라이나 담당 미 대통령 특사로 임명되고,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키스 켈로그 특사(장군)은 지난 19일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키예프를 방문한 켈로그 미 대통령 우크라 특사. 그는 뻣뻣한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게 이채롭다./사진출처영상 캡처
지난 7월 키예프를 방문한 켈로그 미 대통령 우크라 특사. 그는 뻣뻣한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게 이채롭다./사진출처영상 캡처

미국 고위 인사들이 "공은 이제 키예프의 코트로 넘어갔다"고 강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이 평화 계획의 실행에 신속히 동의해야 한다는 압력이나 다름없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우크라이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계획에 가능한 한 빨리 응답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러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수정안을 찾아낼 수 있을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유럽의 지지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안의 수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흡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어제 오늘 발언만 놓고 보면 그 기회는 이제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이 평화 계획을 거부할 경우, 무기 및 정보 공급 차단은 물론이고, 제재 부과와 우크라이나 지도부에 대한 형사 고발 등의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통보한다면, 우크라이나는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정도 압박이 아니라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한번 힘겨루기를 시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이 평화 계획이 최종적이냐'는 질문에 일단 "아니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 발언을 근본적인 수정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볼 것인지, 미세한 문구 수정만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볼 것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유럽으로서는 평화안에 포함된 유럽 관련 조항을 앞세워 젤렌스키 대통령의 수정 요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평화안에 따르면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조항을 수락해야 하고,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기금으로 1,000억 달러, 또 동결된 러시아 자산에서 1,000억 달러 등 2,000억 달러를 내놓아야 한다. 나아가 러시아에 대한 기존 제재를 해제하고 휴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파병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예상대로 유럽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키예프가 이 안에 최종적으로 동의한다면 유럽은 반대할 명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21일 직접 나서 "미국의 새 평화안이 평화적 해결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평가했다. 평화안에 따르면 러시아는 △동결된 자산 1,000억 달러를 우크라 재건 자금을 내놓고 △점령한 하르코프(히리키우), 수미,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에서 철수하며 △나토 헌장 제5조에 의한 대(對)우크라 안보 보장 방안을 받아들이는 양보를 해야 한다. 대신 우크라이나가 양보하는 몇 가지 실익을 챙길 수 있다.

여기서 의문스러운 것은 우크라이나의 양보가 과연 실질적인 것인지 여부다. 스트라나.ua는 "전후 병력 규모를 60만 명으로 제한하는 것은, 매우 큰 감축 규모이지만, 그 정도도 평시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라고 평가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군 병력은 25만명에 불과했다. 총동원령으로 80만명으로 끌어올렸지만, 전시가 아닌 평시에 그만한 병력을 운용할 이유가 없다.

우크라이나군/사진 출처:우크라군 합참 Генштаб ВСУ
우크라이나군/사진 출처:우크라군 합참 Генштаб ВСУ

러시아어 사용과 러시아 정교의 허용도, 러시아계 주민 수백만명의 삶을 현실로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진행 중인 소위 '언어 전쟁'(러시아어 사용을 놓고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벌이는 다툼/편집자)도 해결하는 방법이다. 나토 가입은 이미 비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상태다. 유일하게 도네츠크주(州) 핵심 산업지대이자 군사 요새 지역에서 철군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우크라이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양보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재 각 전선의 전황과 미-유럽의 불확실한 군사및 재정 지원 등을 감안할 때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도 영토 양보의 대가로 수많은 보너스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할 때 전쟁의 피해 복구를 위한 미-러-유럽의 자금 지원과 (유로 마이단을 촉발한) EU 가입의 확정, EU 가입전 우크라이나 상품에 대한 유럽 시장의 개방 등은 종전 후 일반 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 가장 필요한 조치다. 

우크라이나는 또 4년에 가까운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와 평화공존의 길을 향해 함께 나아가며, 정상적인 국가와 일상으로 빠르게 되돌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모든 건 오로지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평화안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예상치 못한 국면 전개 두 가지-3) 유럽의 딜레마로 이어집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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