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미국 비밀문건으로 본 2000년대 푸틴-부시 정상회담 대화록, 대우크라 경고 확실했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바로가기기사저장

미국 국가안보문서보관소(National Security Archive)가 지난 22일(현지 시각) 푸틴 대통령과 미국의 조시 W 부시 대통령(아들 부시) 간의 정상회담에 관한 대화록을 공개했다. 정보공개 소송에 의해서다. 2001년 6월 슬로베니아, 2005년 9월 워싱턴, 2008년 4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3차례 미·러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이다.

당연히(?) 이 문서를 해석하는 시각이 서방과 러시아 간에 차이가 난다. 
러시아 매체 블록넛RU는 24일 "공개된 미국 기밀 문서를 보면, (오렌지 혁명과 같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또 푸틴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이념(공산주의)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나도 공산당원이었고,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매체는 "당시 푸틴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이 (북한 핵위기로) 북한과 전쟁을 하거나 북한의 이념을 바꾸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푸틴-부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사진출처:블록넛RU 
푸틴-부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사진출처:블록넛RU 

 

반면,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전(2001년) 슬로베니아에서 가진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 푸틴의 이같은 역사관과 영토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은연중 드러냈다. 

푸틴-부시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2001년 6월 16일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이뤄졌다. 대화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가 서구 문명의 일부이므로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도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냉전 시대에도 미국을 러시아에 위협으로 여긴 적이 없다"며 "러시아(소련)가 (동유럽국가들과) 동맹을 모색하고(바르샤바조약기구 결성), 나토(NATO)와 대립을 시도한 것은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나토가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변방에 둔 채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고/편집자) 유럽안보체제에 문제를 일으키는 국가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나토가 러시아는 빼고, 구소련 영향권 국가들, 특히 구소련 소속의 공화국들을 가입시켜 나토를 확장하려 한다면, 이는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적 언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구소련 소속 공화국들에 대한 나토 가입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2001년 슬로베이나에서 만난 부시-푸틴 대통령/사진출처:미 백악관
2001년 슬로베이나에서 만난 부시-푸틴 대통령/사진출처:미 백악관
2005년 워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부시-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2005년 워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부시-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2005년 9월 16일 워싱턴에서 푸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만날 때에는 세계 정세가 이미 크게 변화한 상태였다. 9·11 뉴욕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2003년에는 이라크를 공격했다. 또 우크라이나에서는 2004년 서방(미국)의 지원 하에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과, 반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집권했다. 

이 매체는 이같은 국제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고 짚었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이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에 대해 취하는 행동에 관한 '전략적 대화'를 약속했다"며 "이는 마치 러시아가 자국의 이익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였다"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의 핵협력이 미국을 위협하지 않으며, 이란은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평화적인 이용에 필요한 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나도 공산당원이었고,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며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이념에 확신을 갖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블록넛RU는 "푸틴 대통령은 이때 (북한 핵문제로) 북한과 전쟁을 하고, 북한의 이념을 바꾸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암시한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마지막 문서는 2008년 4월 6일 러시아 흑해 휴양지 소치에서 열린 정상회담 대화록이다. 이 매체는 "이때는 이미 양국간에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며 "푸틴 대통령은 2007년 2월 뮌헨 연설에서 일극 체제를 비판하며 러시아가 국제 정치에서 정당한 위치를 요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그루지야)의 국내 상황이 악화(반러, 친서방 노선 추구/편집자)되고 있는데, 이들 국가는 나토 가입을 약속받았고, 러시아는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고 짚었다.

2008년 4월 부시-푸틴 대통령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흑해를 등지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출처:크렘린.ru
2008년 4월 부시-푸틴 대통령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흑해를 등지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출처:크렘린.ru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할 경우,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장기적인 분쟁 지역'이 발생할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역사를 길게 설명하면서 "우크라이나가 부자연스럽게 생겨난 국가"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였던 지역들에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의 영토가 더해져 만들어진 국가라는 것. 게다가 2008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700만 명이 자신을 우크라이나인이 아닌 러시아인으로 여긴다고 그는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으로 우크라이나에 특히 러시아 국경과 매우 가까운 곳에 (나토) 군사 기지와 공격용 무기가 배치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블록넛RU는 "기밀 해제된 대화록에 따르면 러시아는 초기(2001년)에는 서방에 매우 평화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를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단순한 식민지로 여기면서 우크라이나에서의 참혹한 분쟁(전쟁)과 러-서방 간에 정치적, 경제적 관계 단절로 이어졌다"고 결론을 냈다. 

하지만 텔레그래프는 2001년 처음 만날 때부터 푸틴 대통령은 “소련의 붕괴로 러시아가 수천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며 일종의 ‘역사 강의’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수세기 동안 러시아의 일부였는데 당 간부들이 줘버렸다(given away)”며 “카자흐스탄도, 코카서스 지역도 마찬가지다. 소련의 선의(goodwill)가 세상을 바꿨지만, 돌아온 건 영토 상실뿐”이라고 주장했다.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 회견에서 “푸틴의 눈에서 영혼을 보았고 그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유럽이고 미국처럼 다민족 국가이니 동맹(나토 회원국)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나토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서방에 편입되겠다는 순수한 의도라기보다는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해 러시아 국경의 턱밑까지 오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발언으로 본다. 

2008년 소치 회담 기록을 보면,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장기적인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인공적인 국가(artificial country)”라고 못 박았다. 이 발언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실화됐다고 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