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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내 종전'을 공언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연말 마지막 담판도 무위로 돌아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쩔 수 없이 또 해를 넘겨 '전쟁 5년째'로 접어들었다.
2025년 12월 28일(현지시간, 유럽 시간으로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는 미-우크라 정상회담이 열렸다. 협상 테이블에는 트럼프-젤렌스키 양국 정상을 중심으로 그동안 미-우크라 평화 협상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했다. 미국 측에는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댄 케인 합참의장, 스티븐 밀러 국토안보보좌관, 조쉬 그루엔바움 연방조달청장이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테이블을 둘러보며 "협상에 매우 적합하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서 이같은 대규모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측과 마주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협상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엿보게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회담에 앞서 미국과 협의해온 평화 계획의 기본안(20개항)과 3개의 추가 문서를 23일 직접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등 자신의 손에 든 '패'를 모두 보여줬다.
마러라고 리조트 협상장은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전 종식을 위해 기울인 미국의 노력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러시아 경제유력지 코메르산트 평가). 주변에서는 우크라이나 종전 혹은 평화 협정 체결을 향한 결정적인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여기에는 미-우크라 실무 협상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이 타결 가능성이 높아야 젤렌스키 대통령이든, 푸틴 대통령이든 만날 것이라는 발언도 일부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기 전날 푸틴 대통령과 1시간 넘게 통화하면서 조율을 끝낸 것으로 관측됐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담당 보좌관은 푸틴-트럼프 정상 간의 통화 후 "양국 정상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국민투표 또는 다른 이유로 제안한 임시 휴전(우크라이나는 국민투표 준비를 위해 60일간 휴전을 제의/편집자)은 분쟁을 장기화하고 적대 행위 재개의 위험을 초래할 뿐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했다"며 휴전 합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국민투표 실시를 주장하는)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문제'(도네츠크주에서의 우크라이나군 철수/편집자)에 대해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며, (미-우크라 정상회의에서) 지체 없이 채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러라고 리조트 협상을 준비하면서 후견인 격인 유럽 정상들과 전화 통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러시아를 더욱 압박할 수 있는 작전을 짰다. 우크라-유럽이 '평화 협정'의 조건에 대한 조율을 마친 셈이다.
연말 마지막 담판을 앞두고 의도치 않게 러-미 vs 우크라-유럽이라는 진영이 더욱 확고해진 듯했다. 협상의 결과는, 형식이 내용을 덮는다는 이론을 차용하면,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몰랐다.
협상은 예상보다 오래 끌었다. 그간의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을 기준으로,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이례적으로 길었다. '뭔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도 덩달아 올라갔다.

하지만 뒤이어 진행된 젤렌스키-트럼프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은 기대에 한참 못미쳤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안보보장 문제는 100% 합의"라고 말했으나 또다른 쟁점인 영토 문제는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평화 계획의 특정 사안(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넘어갔다. 그러나 영토 (양보) 문제는 국민투표에 회부되면 부결될 게 뻔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인정했다. "95% 타결"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접촉선 문제(최전선을 결정하는 문제, 즉 영토 문제/편집자)는 미해결 상태로 남았다고 말했다. 실무회의에서 사실상 합의가 끝난 안보보장 문제만 정상회담에서 재확인됐을 뿐, 일찍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장했던, '정상들까리 만나야 담판이 가능하다'는 영토 문제는 여전히 이견만 확인한 채 2025년 평화 협상은 끝났다.
마러라고 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발표된 유일한 실질적인 성과는 추가 작업을 진행할 '실무 그룹'을 구성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미-러 갼 사전 합의(푸틴-트럼프 대통령 전화 통화)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가 이에 동의하는 형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측 대표단 면면도 사실상 공개했다. 미-러 실무 그룹의 구성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쪽에 포함되든, 미-러-우크라 3자 형식이 되든, 협상의 진행 방향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새해들어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해가는 과정에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토 문제는 지금까지 워낙 많이 다뤄진 주제다. 해결 방안을 놓고 숱한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했다. 곁가지를 걷어내면,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전체를 차지한 뒤 휴전 혹은 종전하자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절대 반대다.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싶으면 점령해보라는 투다.
중재에 나선 미국 측은 양국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게는 확실한 안보 보장이라는 당근과 비무장지대-자유경제구역이라는 현실적인 타협안을 내놨다.
러-우크라 반응은 당연히(?) 서로 달랐다. 미-우크라 정상회담 전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표한 평화 계획 20개 항에서 영토 문제의 해결 방안이 여전히 표류 중인 사실을 확인한 러시아는 미국을 압박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보좌관은 "8월 알래스카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미·러 합의 사항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안된다"고 제동을 걸었다.

푸틴 대통령은 더욱 강경했다. 27일 합동군사령부 지휘관 회의에서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를 감안하면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철군 여부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열흘 전(17일) 국방부 확대회의에서 한 발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그는 국방부 확대회의에서 "돈바스 철군에 대한 정치적 결정을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미룰 경우, 필연적으로 군사적 패배라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그쳤다. 그는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화에 (우크라이나가) 참여하기를 거부한다면, 러시아는 군사적 수단을 통해 역사적인 영토(돈바스)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우크라 정상회담의 내용을 전달받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이후인 29일(현지시간)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지휘관 회의에서 게라시모프 총사령관(러시아군 총참모장)으로부터 "12월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가 지난 1년 동안 가장 빨랐다"는 보고를 듣고 "돈바스 등 우크라이나 영토의 해방 목표가 계획대로 수행되고 있다"고 만족해했다. 그가 17일, 27일, 29일 잇달아 러시아군의 전쟁 성과를 보고하는 군지휘관 회의를 가진 것은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협상을 겨냥한 게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 철군을 압박할 명분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철군 협박용 메시지를 던져주려는 의도에서다.
미국도 이를 인정한다. 어차피 전쟁이 계속되면 돈바스는 러시아에게 빼앗길 영토이니 우크라이나군이 자진해서 철수하고 그 지역에 비무장지대, 자유경제구역을 설치해 앞날을 도모하라는 게 미국의 설득 요지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가 쉽지않다는 점.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칫하면 종전 후 '반역자'로 몰려 크게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현 전선에서 전투를 중단하고 양측이 같은 거리만큼 물러난 뒤 그 곳에 비무장 자유경제구역을 설정하자고 주장한다. 아니면,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하고, 이를 위해 60일간 휴전하자고 제안한다. 미-러 정상은 사전 전화통화에서 사실상 휴전에 반대했다. 또 국민투표에 회부되면 거부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정치적 결단을 계속 촉구하는 이유다. 영토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해결 상태로 남았다는 것은, 미국의 대(對)우크라 압박이 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국은 그동안 대우크라 안보 보장을 영토 문제와 연계시키면서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요구해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9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정상 회담, 푸틴과의 통화. 주요 발언' (Встреча Зеленского и Трампа, звонок Путину. Главные заявления)이라는 코너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플로리다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철수나 비무장지대 설치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고, 자유경제구역의 설치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평화 협정의 동의를 얻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전체 계획(평화 협정)에 대해, 개별 사안(영토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거나, 아예 국민투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의회에서 표결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이 발언에 주목하면서 "언뜻 보기에는 평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직접 우크라이나 의회에 가 평화 계획을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며 "영토 문제 등 평화 계획의 주요 쟁점들을 국민투표가 아니라 의회에서 표결 처리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트라나.ua는 최근 세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한 예를 들면서 "전쟁 중 군의 철수및 재배치가 국민투표나 의회 표결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들고 나온 것은 종전 후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이 (푸틴 대통령의 호언장담대로) 도브로필리아와 벨로제르스케를 점령한 뒤 세베르스키의 도네츠크 강 북서쪽에 있는 리만을 향하고, 코스티아노프카(코스티안니우카)를 거쳐 슬로뱐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로 진격할 경우,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통제 지역에서 철수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봤다. 적의 진격에 맞서 '군사적 필요성'과 '병사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더 유리한 방어 진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협상은 앞으로 (최소한) 몇 주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전선에서 힘의 균형이 변한다면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주에서 철수를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이후 러-우크라 간에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민투표의 접근법을 "영토를 내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평화를 원하느냐, 아니면 더 오랜 전쟁, 도시 파괴, 정전을 원하느냐"로 바꿀 수 있다. 이 경우,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스트라나.ua는 전망했다.
결정적인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 욕심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집권여당 '인민의 종' 대표인 다비드 아라하미야가 발표했던 선거 준비 실무 그룹의 첫 회의가 미-우크라 정상회의 전인 26일 열렸다. 이 자리에서 아라하미야 대표는 "대통령 선거와 평화 협정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투표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같은 흐름을 잘 탄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화를 가져온 평화 대통령'이자 '평화 협정의 보증인'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스트라나.ua는 2020년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에서 숙적 아제르바이잔에게 진 아르메니아의 총리 니콜 파시냔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전쟁이 (평화 협정으로) 끝난 뒤 파시냔 총리는 정치적으로 끝났다는 예측이 많았지만, 그는 '평화 협정의 보증인'을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설명했다. 파시냔 총리는 이후 이웃 국가인 튀르키예(터키)와 화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1915년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 학살을 'KGB의 조작'이라고까지 규정했다.
아르메니아 정상의 이같은 변신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현실로 나타났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현재로서는 도네츠크 철군에 동의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향후 재선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짚었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은 온라인 투표를 실시한다면 대선과 국민투표에서 모두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변수가 생겼다. 러시아가 꺼내든 '우크라이나 드론의 대통령 관저 공격' 주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거짓말'로 몰아가고 있지만, 국제사회나 언론의 흐름은 이미 '러시아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관저 공격에 대해 직접 들었다"며 "매우 화가 났다. 지금은 그런 짓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고 반응했다. 유럽에 주재하는 매튜 휘태커 나토 주재 미국 상임 대표도 29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러시아 측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매일 밤 러시아의 드론·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이 공격을 막아내는 게 최우선"이라며 "진정으로 평화 협정을 원하고, 합의(체결)가 임박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분위기는 격앙 그 자체다. 드리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 제거를 주장했고,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보복을 천명하면서 평화 협상에 대한 입장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독일과 핀란드, 폴란드 정상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이같은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새해 들어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일은 차기 대선 전략과 연계시켜 평화협상 체결의 명분을 찾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전략은 지난해(2025년) 8월 전격적으로 성사된 알래스키 미-러 정상회담에서 시작된 미국 주도의 평화 협상을 되짚어가면서 찾아야 한다.
그 긴 여정을 러시아 매체 rbc가 28일 미-우크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리했는데, 간추리면 이렇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분쟁 해결에 성공한(가자지구 휴전은 2025년 10월 10일 발효) 후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중동 평화협상을 마무리지은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중동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기업가인 재러드 쿠슈너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미국의 평화 계획(평화안) 마련에 착수했다. 공식화한 것은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대외 투자·경제협력 특별대표)가 10월 24일 미국에 도착하면서부터다.

미국 측 대표(위트코프와 쿠슈너)와 드미트리예프 특사 간의 여러 차례 협상을 통해 28개 항으로 구성된 평화 계획(초안)이 마련됐다. 이 초안은 다음달(11월) 11~19일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회의(우리의 국가안보실 격) 서기(장관급)가 미국을 방문하자, 우크라이나 측에 제시됐다. 동시에 댄 드리스콜 미 육군 장관이 19일 키예프(키이우)에 도착했다. 그는 이튿날(20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평화 협상 재개 가능성을 타진한 뒤 21일에는 유럽 관리들과 회담을 갖고 "미군은 우크라이나를 사랑하고 지지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며 지금이 평화를 논의할 적절한 시기라는 게 미군의 솔직한 평가"라고 운을 띄웠다.
그가 키이우에 도착하기 전날, 악시오스는 "미국이 비밀리에 평화 계획을 수립 중"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지난 8월 알래스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원칙에 기반한 것"이라고 1보(특종)를 썼다. 미 정지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영국 로이터 통신,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에 평화 계획이 부분적으로 실리기 시작했다.
평화 계획 28개 항은 드리스콜 장관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날(11월 20일) 저녁, 알렉세이(올렉시) 곤차렌코 우크라이나 최고라다(의회) 의원의 텔레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백악관이 이 문서의 진위(존재)를 확인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우크라이나가 추수감사절(11월 27일)까지 이 평화안에 동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드리스콜 장관의 대(對)우크라 협상을 지원하는 차원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부랴부랴 협상 대표단을 꾸려 23일 제네바에서 미국 및 유럽 대표들과 만났다. 협상이 끝난 뒤 로이터 통신 등은 미국 측 평화 계획이 19개 항으로 축소됐다고 전했다. 유럽의 입김이 많이 반영된, 우크라이나에게 다소 유리한 내용이라고 했다.
크렘린도 11월 25일 "알래스카 합의 정신에 여러 면에서 부합하는 평화 계획의 초안(28개 항)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튿날(26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계획이 "러시아에 너무 유리하다"는 이유(미-우크라·유럽 협상 결과)로 20개 항으로 축소되었다고 알렸다.
그 즈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25일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에서 만난 사실이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키릴 부다노프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 국장이 이끌었다. 러시아 대표단의 면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FSB 고위 관계자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드리스콜 장관 역시 이 회의에 참석했다. 서방 외신이 드리스콜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러-우크라 대표단이 미국의 평화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담당 보좌관은 이를 부인했다.
며칠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우크라 정보기관이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러나 전쟁 포로 교환과 같은 인도주의적 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회담에 미국 대표(드리스콜 장관)가 참석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는 "접촉(협상)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며 "28개 항으로 구성된 가능한 합의 목록(평화 계획)이 나의 알래스카 방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우크라 2차 협상은 11월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진행됐다. 같은 시각,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고, 유럽 정상 및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와도 전화 통화를 했다.
달을 넘겨 12월 2일에는 위트코프 특사와 쿠슈너가 모스크바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과 우샤코프 보좌관, 드미트리예프 특사를 만나 약 5시간 동안 협의했다. 회담 후 우샤코프 보좌관은 "타협점은 찾지 못했지만, 미국 측의 일부 제안은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합의 가능성을 알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크렘린 회동을 정상적인 업무 과정이자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러한 협상이 조용히 진행될수록 더욱 생산적"이라며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크렘린 회동 이틀 뒤(4일)부터 사흘간(4~6일) 미국 대표단은 마이애미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단과 마주 앉았다. 이어 8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진행 중인 미국의 평화 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우크라-유럽은 독자적으로 만든 평화 계획안을 미국에 전달했다(악시오스 보도).
미-우크라 3차 협상은 12월 14, 15일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됐다. 둘째 날에는 유럽 주요 인사들과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도 합류했다. 외신들은 이 협상에서 사안의 90%가 해결되었지만, 영토 문제는 여전히 가장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으로 남았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게 나토 헌장 5조(집단방위조항)와 유사한 안보 보장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그러한 보장이 제공된다면 나토 가입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미-우크라 협상은 12월 19~21일 마이애미에서 다시 열렸다.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루스템 우메로프 국가안보국방회의 서기와 안드레이(안드리) 그나토프 우크라이나군 참모총장이, 미국 측에서는 위트코프 특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영국 정상의 국가안보보좌관들도 자리를 함께했다고 한다. 위트코프 특사는 "회담에서 평화 계획,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경제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며 "생산적이고 건설적안 회담이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문제는 이때 거의 타결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안보 보장 문제는 100% 합의됐으며, 러시아 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합의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같은 시기(12월 20, 21일), 같은 장소(마이애미)에서는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가 위트코프 특사, 재러드 쿠슈너, 조쉬 그루엔바움 미 연방조달청장과 만났다. 미-우크라 협상 내용을 전달받고, 그때그때 러시아 측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드미트리예프는 마이애미를 떠나면서 SNS에 "마이애미,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모스크바에서 만납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모스크바에서 미국 대표단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듯한 메시지였다.
그리고 28일 마이애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단 전체가 참석한 확대 정상회담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푸틴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과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이 향후 평화 협상의 방향과 핵심을 알려주는 바로메타가 될 게 분명하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