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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 언론이 연말연시에 이례적으로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를 인용한 기사를 여러 건이나 내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출범 직후 우크라이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불시의 무기 공급 중단과 같은 미 행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벌어진,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뒤이야기들을 다뤘다. NYT는 집중 취재한 장문의 기사를 통해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 정책 행보를 되짚어본 것으로 추정된다. 러-우크라 언론이 전한 내용을 중심으로 NYT 기사를 정리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MK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NYT는 2025년 2월 말 미 백악관에서 열린 미-우크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밴스 미국 정·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사건(이후 백악관 면박 사건)의 뿌리를 두 사람간의 해묵은 감정에서 부분적으로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부터 젤렌스키 대통령을 '개자식'(ублюдoк)으로 불렀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선거가 (민주당과 언론이 주장한) 크렘린의 개입으로 자신이 당선된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당국에 의해 대선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주장하면서, 또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차남 헌터 바이든에 대한 조사를 협박했다는 권력남용 혐의로 첫 번째(2019년) 탄핵 소추를 당했을 때,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개자식'이라고 불렀다는 게 측근 5명의 전언이다.

백악관 면담 사건은 이후 미 국방부(현재는 전쟁부로 개칭/편집자)에서 공개적으로 조롱 대상이 됐다고 NYT는 썼다. 폭스 뉴스가 '백악관 언쟁'을 재방송하자,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TV 볼륨을 올릴 것을 지시했고, 댄 콜드웰 장관 선임보좌군 등이 들어와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웃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을 칭찬했다는 것. 그들은 대통령이 건방진 키예프(키이우) '새끼'를 어떻게 눌러놨는지 떠들며 좋아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기억이다.
전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재임 시절 젤렌스키 대통령을 '골칫덩어리'라고 말한 바 있다.
국방부의 이같은 분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 인사에서 짐작 가능했다고 NYT는 암시했다. 스트라나.ua와 러시아 매체 콤스몰스카야 프라우다(KPru)에 따르면 J. D. 밴스 미 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침몰하는 배이며, 미국은 4년 차(2022년 2월 발발)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 이상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로 국방부를 채웠다는 것. 이들은 안보정책의 우선 순위를 ‘중국 견제’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명한 국방 전문가 출신의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이 대표적인 인사다. 헤그세스 장관도 그의 영향을 받아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돌려야 한다고 믿었다. 대(對)우크라 무기 지원 중단은 그 흐름 속에 반복됐다.

'백악관 공개 면박 사건'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무기및 군사 정보 제공이 중단됐다. 근 대엿새 만에 중단 조치가 해제됐지만, 콜드웰 등 국방장관 보좌관들은 헤그세스 장관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종료 직전에 우크라이나에 약속했던 미국산 155㎜ 포탄을 제외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펜타곤(국방부)의 비축량이 위험할 정도로 부족하며, (보급을) 중단하는 것만이 유럽이 전력 증강에 나서도록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155㎜ 포탄의 제공 금지 명령을 내렸고, "이후 3개월 반 동안 수천 발의 포탄이 독일의 한 탄약고에 쌓여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당시 독일의 비스바덴 미군 기지에 나와 있던 우크라이나군 장교들은 미국발 무기 선적 군용기 11편의 이륙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펄쩍 뛰었다고 한다.
콜드웰 보좌관은 또 바이든 행정부에서 쓰고 남은 38억 달러의 미사용 예산을 우크라이나 제공용 무기 구매에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대통령은 "피트 (헤그세스), 정말 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 해. 내가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155㎜ 포탄 제공이 계속 중단되자, 크리스토퍼 카볼리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과 그의 참모진은 재고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수없이 보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종말의 시작'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우크라이나군이 서서히 패배하고 있는데, 미국이 더 많은 탄약을 제공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더 빨리 패배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일부 미국 장교들은 이 조치를 '그림자 금지'라고 불렀다.
NYT는 "4성 장군 출신으로 폭스 뉴스 해설가인 잭 킨 장군이 헤그세스 장관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한 뒤 비로소 공급 재개 절차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그러나 우크라-유럽에게 앞으로의 미국 지원을 우려하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헤그세스 장관은 대(對)우크라 군수 물자 공급 중단 직후,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 국방장관 회의에서 폭탄 선언을 했다.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전 국경으로 복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협상 타결의 현실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때 처음으로 우크라이나가 전쟁 종식을 위해 영토를 양보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NYT는 전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NYT는 2025년 3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미-우크라 고위급 회담에서 루비오 장관의 공격적인 협상 태도를 이렇게 전했다.
그는 전선이 표시된 우크라이나 지도를 펼쳐놓고 우크라이나 대표들에게 "당신들이 절대적으로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금지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국가로서 생존하기 위해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가요?"라고 물었다. 마이크 왈츠 당시 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2025년 5월 사임)은 옆에서 루스템 우메로프 당시 우크라이나 국방장관(현 국가안보국방회의 서기)에게 파란색 색연필을 건네며 "그려보세요"라고 압박했다.
우메로프 장관은 러-우크라-벨라루스 국경이 접한 하르코프(하르키우)주(州), 루간스크주, 도네츠크주, 자포로제(자포리자)주, 헤르손주를 잇는 선을 그었다(러시아군에 점령된 지역의 포기 의사/편집자). 그는 또 자포로제 원전 주변 지역에도 선을 그으며,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원전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니콜라예프(미콜라이우)주의 드네프르강 유입로인 '킨번 스핏'(Кинбурнской косы, Kinburn Spit)을 가리키며, 이곳을 되찾으면 니콜라예프 조선소에 선박이 정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협상 전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모든 영토를 되찾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 관리는 NYT에 "이것이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하며, "우크라이나가 처음으로 평화를 위해 국토의 20%를 포기할 의사를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도 "우크라이나가 덫에 걸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날 늦게 우크라이나 지원 재개를 공식적으로 지시했다.

루비오 장관은 당시 미국은 점령된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관할권을 인정할 의향이 있다고 우크라이나 측에 전한 것은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키예프(키이우)와 유럽 국가들에게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YT는 또 루비오 장관이 지난 2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첫번째 만남에서 긴장 완화를 위해 취한 행동을 소개했다. 말론 브란도가 영화 '대부'에서 맡은 마피아 보스 비토 콜레오네의 흉내를 내며 영화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는 것. 비토가 아들에게 라이벌 마피아의 위협을 경고하는 대화였다. "나는 평생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여자와 아이들은 부주의할 수 있지만, 남자는 절대로 부주의해서는 안 된다."
루비오 장관은 "핵보유국은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측면에서 이 대화를 인용했고, 라브로프 장관도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고 NYT는 전했다.
대우크라 지원 정책을 총괄하는 미 국방부 내 우크라이나 지지자들은 헤그세스 장관과 그의 참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 놓였고, 여름까지 모스크바와 협상을 하도록 우크라이나를 압박해야 한다는 기조가 깔려 있었다. NYT에 따르면 콜비 정책담당 차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우크라이나 전문가 소그룹(약 6명)은 2025년 6월 말 고위 군 장교 일행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말 그대로 '우크라이나'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워했다"고 회고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카볼리 미군 사령관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카볼리 장군이 미 상원에서 러시아의 위협은 만성적이고 점점 커지고 있다고 증언한 게 발단이었다. 보좌관들은 "카볼리 장군이 대통령의 평화 노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장관을 보고했고, 화가 난 헤그세스 장관은 "Fire Cavoli(카볼리 해임시켜)"라고 말했다. 카볼리 장군은 2025년 7월 1일 퇴역 예정이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도 미 중앙정보국(CIA)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했다고 NYT는 주장했다. 스트라나.ua와 러시아 매체 MKru에 따르면 존 랫클리프 CIA 국장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CIA 요원들의 활동을 계속 지지했다는 것.
NYT는 "헤그세스 장관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던 군 장성들을 배척하는 등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것과는 달리, 랫클리프 국장은 우크라이나 배치 CIA의 요원들을 최대 수준으로 유지했고, 작전 자금의 지원까지 늘렸다"고 지적했다. 특히 랫클리프 국장은 2025년 6월 CIA 요원과 군 정보 장교들이 참석한 비밀 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드론 타격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러시아 정유시설 타격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유시설 타격은 처음에는 효과가 미미했지만, CIA 측이 정유시설의 운영에 치명적인 연결 부위를 찾아내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CIA는 우크라이나 드론의 에너지 시설 공격으로 러시아 경제는 하루 최대 7,5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CIA는 흑해와 지중해에서 러시아의 원유를 수송하는 이른바 ‘그림자 함대' 소속 선박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도 지원했다.
NYT는 "우크라이나 드론의 러시아 정유 시설 공격 작전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 랫클리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며 "두 사람은 일요일마다 함께 골프를 치곤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드론의 공격을 크렘린과의 협상에 유리한 도구로 여겼다. 그는 랫클리프 국장의 보고를 받고 대(對)러 협상력을 높였다며 CIA를 칭찬했다고 관리들은 전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 협상 과정에서 이 카드를 꺼낼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
러시아 매체 RBC에 따르면 2025년 3~4월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습을 중단한 30일간의 휴전(3월 18일~4월 17일)이 끝난 뒤, 백악관의 한 측근은 NYT에 "대통령은 자신이 푸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휴전 한달 동안 러-우크라 양측은 서로 휴전 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했고, 러시아는 휴전 연장을 거부했다. 러시아는 이후 부활절 휴전(4월 19일 오후 6시~20일 자정)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 특사를 "멍청한 친구”라고 불렀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특전사 장성 출신인 켈로그 특사는 처음부터 행정부 주요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그는 유럽 파트너들에게 "행정부 내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고 말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전쟁 중인 국가의 용감하고 투쟁적인 지도자"라고 칭찬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트럼프 대통령이 켈로그 특사를 불러 “젤렌스키를 ‘시련 속의 용감한 지도자’라고 불렀다고?”라며 힐난했으나, 켈로그도 지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가 생존을 위한 실존적 투쟁이고, 미국에서 그런 상황을 직접 겪은 마지막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라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나중에 이 일화를 참모들에게 전하면서 “그사람, 멍청이야(idiot)”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에서 서서히 밀려났고, 트럼프의 오랜 골프 친구인 뉴욕의 부동산업자 스티브 위트코프가 대(對)러시아 협상을, 댄 대니스콜 육군 장관이 대(對)우크라 평화 협상 메신저를 맡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특히 희토류)을 확보하는 대가로 키예프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아왔다고 NYT가 폭로했다. 미국 대선 기간 중 키예프를 방문한 공화당 소속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트럼프 후보를 만나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이 표시된 지도를 보여줬다는 것. 트럼프 후보는 그레이엄 의원에게 "절반을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공개 면박 사건'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25년 4월 말 키예프와 광물 협정을 체결했다. 그 협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공식 계약의 부록/편집자)은 미-우크라 모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