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바로가기기사저장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새해 첫 인사 발표는 한달 여전에(2025년 11월 28일) 관둔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의 후임자였다. 그가 일찌감치 실장 후보군에 들어 있다고 인정한, 키릴 부다노프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 국장이 2일 새 대통령 실장으로 낙점됐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과 발레리 잘루즈니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현 주영 대사)과 함께 차기 대선 후보 3강에 든, 인기 있는 군장성(중장)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부다노프 (국장)가 예르마크 (실장)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 의미는?'(Буданов занял место Ермака. Что это значит?)라는 코너에서 "곧 만 40세가 되는 부다노프 GUR 국장이 신임 대통령 실장으로 임명됐다"며 이미 유명세를 떨친 그의 삶을 두루 살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키예프(키이우)에서 태어난 부다노프 신임 실장은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과 마찬가지로 오데사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2016년 크림반도에서 펼친 GUR 특수작전으로 부다노프라는 이름을 처음 알렸는데, 작전을 지휘한 그가 부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미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된 이 작전으로 미국은 격분했고,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이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 따졌다고 한다. 결국 발레리 콘드라추크 GUR 국장은 자리를 내놓았다.
하지만 부다노프는 이 작전으로 미 중앙정보국(CIA)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CIA가 주도하는 특수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GUR 특수부대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부상을 입고, 미국 메릴랜드주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군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했다. CIA가 집중적으로 돌본, 혹은 키운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NYT는 2024년 2월 CIA의 대(對)우크라 비밀 작전에 관한 기사에서 부다노프 국장과 미 정보요원들 간의 인연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2019년 봄에는 암살 시도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기도 했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그의 2016년 크림반도 습격 사건에 보복하기 위해 그의 차량에 폭탄을 설치했지만, 실패했다.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루된 용의자들은 체포됐다.
이듬해(2020년) 여름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의해 GUR의 수장(국장)으로 발탁됐고, 우크라이나 전쟁 3년 차인 2024년 최고 영예인 '우크라이나의 영웅' 칭호를 받았다. 실제로 그가 GUR를 맡은 뒤, 러시아 본토와 점령지(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에서 벌인 특수부대의 '사보타주'(비밀 폭파 작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여러 차례 큰 주목을 받았다. 2022년 크림반도와 러시아 대교를 잇는 크림대교 폭파를 시작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유소 드론 공격, 러시아 흑해 함대 해상 드론 공격 등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는 가장 잘 나가는 군인으로, 차기 대선 후보로 부각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도 포함되기 시작했다. 2025년 12월 26일 공개된 여론조사업체 소시스의 조사에 따르면 부다노프 국장(실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1차 투표에서 젤렌스키-잘루즈니와 함께 3파전을 벌여 5.7%의 지지를 얻고, 젤렌스키 대통령과 결선을 치른다면 56% 대 44%로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잘 나가는 만큼 예르마크 전 실장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 예르마크 전 실장은 오래 전부터 부다노프 국장의 해임을 시도했지만, 굳건한 미국 네트워크 덕분에 상대방(예르마크)이 날아가고, 본인(부다노프)은 그의 후임이 됐으니 아이러니다.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집중적으로 받은 만큼, 부다노프 국장도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앞날을 예측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전쟁 첫해 가을(2022년 9월) 우크라이나군이 방어에서 반격으로 군사작전을 전환하자, 부다노프 국장은 "우크라이나가 2023년 봄에는 크림반도에 진입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어 2023년 2월에는 "전쟁이 2023년 겨울에는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얼무버리지 않고 "예측이 빗나갔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지난해(2025년) 2월, 그는 "러시아는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최소한의 휴식, 즉 휴전이 필요하다"며 "전쟁은 2025년에 끝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아닌 평화 협정을 통해 종식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가 최종적으로 예측한 전쟁 종식 시한은 올해(2026년) 2월이다.
"평화 협정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가 2026년 2월 중순에 열릴 것이다.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질 것이다."(2025년 11월).
"2026년 2월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이 전쟁 종식을 위한 합의에 도달하기에 가장 유리한 시기다. 이는 군사 활동과 난방 시즌 모두에 기인한다."(2025년 12월)
스트라나.ua는 이번 인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향후 국정 운영 계획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우선 부다노프 국장이 전임 예르마크 실장이 맡았던 평화 협상의 우크라이나 측 수석 대표로, 미국과의 줄다리기에 나설 것이라고 짚었다. 설사 우메로프 국가안보국방회의(우리의 국가안보실 격) 서기(장관급)가 계속 협상팀을 이끈다고 하더라도, 그의 영향력은 우메로프 서기를 능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실제로 전쟁 중 러시아와 효과적인 협상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러시아와 포로 교환을 협상한 인물이 바로 부다노프 국장이었다.
그가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 정기적, 또 합법적으로 러시아 정보기관 측과 접촉한다는 사실도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의 28개 항 평화 계획(미국의 새 평화안)이 제시된 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댄 드리스콜 미 육군장관(미 대통령 우크라 특사)과 함께 러시아 정보기관 고위 인사를 만난 사실이 서방 외신을 통해 알려졌고, 푸틴 대통령도 이를 나중에 인정했다.

그는 전임자 예르마크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계획에 더 유연한 접근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평화 협상을 주도할 경우, 전쟁 종식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뜻이다.
미 NYT는 2일 "부다노프 신임 실장의 미국 네트워크와 러시아와의 협상 경험이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명했다. 실제로 부다노프 실장은 자신의 높은 대(對)국민 인기를 이용해 협상 양보안을 갖고도 국민과 군부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자리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은 예르마크 전 실장의 흔적은 부다노프의 등장으로 조만간 정부 각 부처에서 지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다노프는 그와 오랜 앙숙 관계이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후임 실장을 선택하는데는 △예르마크 실장의 낙마 원인인 '부패 스캔들' 이후 반(反)젤렌스키 세력이 추진하는 국민통합정부 구성안을 받아들이는 방안과 △예르마크 실장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방안 △대통령실을 여전히 강력한 권력 핵심 기관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안 등 3가지 선택지가 있었다"고 전제한 뒤 "부다노프 낙점으로 진로가 하나로 좁혀졌다"고 짚었다. 대통령이 국민통합정부의 탄생을 용인한다면 새 실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임과 후임 권력자, 즉 잘루즈니 같은 인물로의 권력 교체를 준비하는 '과도기 인물'이 되는 셈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예르마크의 그림자 권력을 유지하려면 대통령 실장을 계속 공석으로 두거나 예르마크 실장의 측근들인 부실장 급에서 임명하는 게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실을 권력 핵심으로 복원하려면, 강력한 정치적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반젤렌스키 연합'과는 결탁하지 않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같은 구도에서 대통령실을 권력 핵심으로 복원하는 데 부다노프 국장이 적격이라는 평가다. 그는 전임과 달리 '부패 스캔들'을 수사하는 반부패기관들에 대해 훨씬 더 단호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
그의 약점은 또다른 권력 기관인 국가보안국(SBU), 군부(시르스키 총사령관)와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밀어준다면, 그는 전임자와 같은 권력의 대통령 친정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그의 정치적 입지는 예르마크 실장의 사임 이후 의회를 움직이는 집권여당 '인민의 종' 대표인 아라하미야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강화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도 정치적 야망을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한 배를 탔던 예르마크 전 실장과는 근본적인 다른 차이점이다. 어쩌면 그는 대통령 실장으로서 젤렌스키 정부의 성공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앞날, 차기 대통령을 향해 총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젤렌스키 대통령과 예르마크 실장이 그를 해임하려고 한 것도 바로 그의 정치적 야망 때문이었다.
스트라나.ua는 또 "대통령이 정치적 야망이 큰 부다노프를 대통령 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 정치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고 짚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를 후계자로 낙점하고, 재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닐까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여기서 관건은 선거가 언제 치러질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 언제, 어떤 조건으로 끝날지다.
또다른 일각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퇴임후 그의 안전을 보장해줄 후임자로 부다노프 국장을 낙점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후계자로 낙점한 이유와 비슷하다. 부다노프도 푸틴 대통령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으며, 오랫동안 정보 전문가로 일했다.
그의 정치적 커리어에 닥쳐올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실장은 최고 권력과 지근 거리에 있지만, 여차하면 대통령을 대신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자리다. 여차하면 부다노프의 대중적 인기가 급격히 추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의 측근들은 대통령 실장 자리를 고사하라고 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자리를 수락했다는 것은 대통령실을 이용해 정치적 야망을 채울 계획을 미리 세워두었거나, 현재와 미래 권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