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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결연한 의지를 보이면 세계적인 범죄자들이 약해진다. 이같은 신호는 러시아에게도 전달되어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공습(이란 전쟁)을 시작한 지난달(2월) 28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워싱턴의 군사작전을 지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열흘 가까이 지난 9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란 전쟁에 관한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텔레그램에 쓴 글에서 "'세계 시장, 우크라이나 및 그 파트너 국가에 대한 위험'을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며 "이란 전쟁이 우크라이나와 세계 여러 지역, 우크라이나에 대한 필수 물자 공급, 그리고 우리 국민의 안보와 복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썼다. 또 내외신 인터뷰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대한 중동 지역의 막대한 수요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사일 공급을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불과 열흘만에 말을 바꾼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사흘 만에 이란을 끝장내겠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말을 진짜 믿은 것일까? 아니다. '나는 당신(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중동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전쟁 개시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 의지를 확인한 뒤 앞장 서 지지한 이유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2일 '이란 전쟁에 대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어떻게 변했는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 이란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방공 미사일 확보가 어려워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킨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스트라나.ua는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군사작전 개시를 적극적으로 부추겼고,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던 몇 안 되는 세계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바꾼데 비판적인 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지난 1월, 미국을 향해 "이란 사태에 개입하여 정권(아야톨라 하메네이 정권)을 제거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변화가 가능한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모든 지도자, 모든 국가, 모든 국제기구는 지금 당장 개입하여 이란이 불행하게도 이렇게 된 데 책임 있는 자들을 제거하도록 시위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당국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다. 이후 재개된 이란과 미국과의 협상 중에 독일의 뮌헨 안보포럼에 참석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2월 14일 연설에서 "즉각 중단"을 촉구하면서 "이란 같은 정권에게는 시간을 줄 수 없다. 시간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을 죽일 뿐이다. 즉시 (정권을 교체해)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7일에는 영국 스카이 뉴스(Sky News)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지도부에 대한 군사 작전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국민은 다른 나라를 공공연히 공격하고 많은 해악을 끼치는 현 정권을 바꾸기 위해 도움을 구하고 있다"며 "(이란) 국민이 아닌 정권을 겨냥한 군사 작전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튿날(28일) 미-이스라엘이 이란 공습을 시작하자, "미국이 단호한 의지를 보이면 세계적인 범죄 조직은 약해진다"며 "이란 국민에게 테러 정권을 타도할 기회를 주고, 이란발 테러로 고통받아온 모든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군사작전을 지지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움직임으로 유가가 상승세로 급변한지 불과 며칠 만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말은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기대에서 미래의 우려로 옮아갔다.
그도 이란 전쟁이 몰고올 국제 유가의 폭등을 애써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가 상승은 단숨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았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2일 "러시아는 이란 전쟁으로 하루 최대 1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전했고, 로이터 통신도 "국제 유가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러시아는 3월 말까지 세수로 전월에 비해 거의 두배인 약 5,900억 루블을 거둬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저유가로 늘어나는재정적자로 고민하던 러시아 정부에게는 가믐에 단비와 같다.

FT는 "러시아는 이란 전쟁으로 하루 최대 1억 5천만 달러의 추가 수입을 얻고 있다"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차단 이후 석유 수출로 이미 13억~19억 달러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추산했다. 3월 말까지는 총 33억~49억 달러 사이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러시아 우랄산 원유의 평균 가격이 이달 중 배럴당 70~8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 것으로, 지난 두 달 평균 가격인 약 52달러에 근접할 것이라는 당초 기대를 뛰어넘었다. 세계 원유 시장에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한때 배럴당 119달러를 넘어선 뒤 100달러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키릴 드미트리 푸틴 대통령의 대외 업무 특사는 러시아산 원유 1억 배럴이 해상에 있다고 12일 밝혔다. 해상에서 떠돌던 러시아산 원유들은 미 재무부의 일시적인 제재 해제에 따라 인도와 중국 등으로 인도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의 계산도 큰 틀에서 다를 바 없다. 유가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러시아는 지난 2월(3천억 루블)과 1월(3천140억 루블)의 두배 가까이 되는 약 5900억 루블을 세수로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제유가가 러시아의 예산 편성시 기준 유가보다 높은 것은 2025년 1월 이후 처음이다.
거꾸로 유가 상승은 우크라이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스트라나.ua는 12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젤렌스키 (대통령)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의 위험을 상기시켰다' (Зеленский вспомнил о рисках для Украины из-за Ирана)라는 코너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촉구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이 유럽의 흐름에 맞춰 변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2월 예상보다 높은 7.6%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에너지 위기 상황 속에서 3월에는 더욱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컨설팅 기업 'A95'의 세르게이 쿠윤 대표는 12일 우크라이나의 에너지난과 관련, "3월까지는 자동차 연료가 공급되겠지만, 4월에는 휘발유 수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4월 물량에 대한 협상은 내주에 시작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여전히 만연해 있기 때문에 누구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으며, 하루는 20% 오르고, 다음 날은 20% 떨어지는 등 종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미 리터당 70흐리브냐인 휘발유 가격이 곧 100흐리브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유럽의 주요 정상들도 유가 상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이란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메르츠 독일 총리는 11일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 전쟁을 신속하고 결정적으로 종식시킬 공동의 계획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며 "전쟁이 조속히 끝나야 석유 및 에너지 시장도 비교적 빠르게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미국의 대러 제재 해제 움직임을 거냥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 완화를 고려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이사회 의장(정상회의 상임의장)도 EU 대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미국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높은 유가 덕분에 러시아만이 이 전쟁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고 이란 전쟁을 비판했다.
조르지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2일 상원 연설에서 미국의 이란 남부 미나부 여학교 폭격을 비판하면서 "세계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일방적인 행동이 증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란 정권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작전"이라고 꼬집었다.
스트라나.ua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EU에서 나온 것은 전례가 없다"고 짚었다.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이란을 비난하며 사실상 항복을 요구한 유럽의 기존 태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의 이같은 태도변화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그 다음날(13일) 더 충격적인 일이 다가왔다.
스트라나.ua는 이날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러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 및 드론 공격 주장 반박Снятие санкций с России и опровержение по дронам 코너에서 "미국은 러시아산 석유 판매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한 반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드론 지원이 필요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를 한달간 일시적으로 해제했다. 2026년 3월 12일 이전에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 제품의 인도를 4월 11일까지 허용한 것. 이를 위해 선박 관리와 보험, 급유, 등록 등 해상 서비스는 물론, 도선과 화물 운송 및 하역에 필요한 관련 서비스에 대한 제재도 모두 풀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를 "제한적인 단기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러시아 크렘린은 "이번 조치는 상당량의 러시아산 원유 공급 없이는 시장 안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상황적으로 러시아와 미국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반겼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폭스뉴스 인터뷰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중동에서 이란의 샤헤드 드론을 격추하는데 미국을 도운다'는 모든 발언을 부인했다. 그는 "우리(미국)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우크라이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며 "우리는 누구보다 드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우크라이나가 이미 요르단의 미군 기지 보호를 위해 드론 전문가팀과 요격 드론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또한 페르시아만에서도 시설 보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친(親)우크라이나 성향의 영국 언론들도 이를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아무런 확인도 없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국과 중동 동맹국들이 값싼 이란 드론에 취약하다는 점이 키예프(키이우)에게 단기적이지만 약간의 대(對)미 협상력을 제공했다고 보도했으나, 미 국방부는 이란이 이미 거의 모든 자폭 드론의 재고를 소진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전쟁에서 미국의 굳건한 전우임을 과시하면서 미-러-우크라 3자 평화협상에서 미국의 압력을 완화하려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략이 무위로 돌아간 셈이다. 또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미국제 방공 무기의 확보 기대도 사라지게 됐다.
안드레이 피슈니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총재도 12일 미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이란과의 전쟁이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 경제에 더욱 큰 부담을 주는 반면, 푸틴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가 상승은 러시아에게는 재정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필요한 자원을 추가로 공급하는 반면, 우크라이나의 방공 시스템용 탄약과 미사일 확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