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3295게시일 2014-04-08 국가 러시아 벼루에 천천히 물을 붓고 먹을 간다. 투명한 물이 금세 새까매진다. 부모님과 전시회장을 찾은 러시아 아이들도 여럿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한 자세로 붓을 잡으세요.' 부모와 아이가 나란히 붓을 잡는다. 그리고 생전 처음 붓으로 글씨를 써본다. 검지와 엄지, 중지로 펜을 쓸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붓글씨도 조화입니다. 긴장과 이완, 힘의 강약이 글씨에 깃들어야 해요. 발레리나가 발가락 끝으로 무대에 서듯 붓끝을 동그랗게 밀며 살짝 올리세요.' 강연자의 지도에 따라 러시아인들은 먹 글씨를 쓰다가 뭉툭하게 잡았던 붓을 화선지에서 살짝 떼 본다. 삐뚤빼뚤하다. 자신이 쓴 글씨를 보니 웃음이 난다. 개개인의 성격이 다르듯 글씨도 각양각색이다. 주러 한국문화원 지원으로 4월 3일부터 이주일간 모스크바 소콜니키 공원 내 캘리그라피 박물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무각 김종칠 서예가의 작품 50여점이 선보였다. 6일 강습회에는 100여 명의 현지인들이 참석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다. 전시장은 묵향으로 가득했다. '자 사랑, 행복이라는 한글을 써볼겁니다.' 김 서예가의 강연에 따라 자모를 써내려간다. 'ㅇ'을 쓰다가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한글에는 'ㅇ' 이런 글자도 있나봐.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한글 자모다. 발음이 부정확하지만 사랑(류보프), 행복(스챠스찌에) 하고 한국어-러시아어를 차례대로 발음하며 붓을 천천히 자음에서 모음으로 모음에서 자음으로 옮긴다. 한글의 아름다움이 모스크바에서 솔솔 푸는 풍경이 2시간 동안 계속됐다. '문자의 역사는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일군 서사시며 영감의 파노라마다'고 했다. 간단한 어휘지만 러시아인들이 이날 한지에 담은 것은 한국의 얼이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자랑스러운 한국 고유의 문자입니다. 한글은 뛰어난 예술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답니다.' 김 서예가는 한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서예의 기본에 대해 설명했다. '글씨는 묵의 농도뿐만 아니라 힘의 강약에 따라 생동감을 얻습니다. 이렇게 글씨 크기나 두께, 붓놀림의 경중에 따라 글씨가 웃기도 하고,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러시아 현지인들은 이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한글 캘리그라피의 미적 아름다움에 매료됐다며 전시회를 찾은 이유를 전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소개한 올례그 세르게이비치는 '한국의 사극이나 영화에서 한글 캘리그라피를 접했다'며 '러시아 손 글씨에서 볼 수 없는 한글만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글씨에 반해 전시회장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지의 옷을 걸친 문자가 시각적 아름다움을 통해 러시아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특히 캘리그라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 및 드라마 등의 타이틀로 사용되면서 러시아 현지인들에게 친근한 콘텐츠가 된 것. 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모든 글씨를 붓을 사용해 개성 있는 필치로 써낸 글씨를 의미하는 캘리그라피는 지속적으로 한류문화콘텐츠인 K-Pop 음반을 비롯해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광고 디자인과 포스터 등에서 사용되며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영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알렉세이 샤부로프 모스크바 캘리그라피 전시장 관장은 “러시아의 손 글씨가 귀족적인 화려함과 세련미를 지니고 있다면 한국의 손 글씨는 대중과 소통하고 감화하는 부드럽고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진다”며 “행사가 열릴 때마다 강습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관심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현지인들이 쉽게 한글 손 글씨에 감응하는 것을 보며 매번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무각 김종칠 서예가와의 일문일답 Q. 이번 모스크바 캘리그라피 전시회의 특징은? - 이번 러시아 전시회에서는 한국의 항아리에 순수 닥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항아리는 우리의 음식을 저장할 때 쓰는 질그릇이다. 그 항아리에 손 글씨로 러시아 대중영웅 빅토르 최의 노랫말과 톨스토이의 작품을 담았다. 한국과 러시아의 정신적 교감 내지는 소통의 의미를 담았다. 또한 한국어의 전통적인 가치와 예술적인 미를 러시아 현지인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서예가 갖고 있는 평면성에 설치 미술 요소를 가미해 대중에게 한층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Q. 푸쉬킨, 톨스토이와 빅토르 최의 글의 한글 캘리그라피 작품이 돋보인다. - 고등학교 다닐 때 푸시킨을 시를 접했다. 푸시킨과 톨스토이의 문학은 특히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가치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빅토르 최는 한인 3세로서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 젊은이들의 영웅이었다. 그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자유’ 정신은 서예가 표방하는 가치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쓰게 됐다. Q. 러시아와의 인연은? - 2009년 러시아에서 첫 전시회를 가졌지만 인연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대학 졸업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예가로서 '직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계속하던 중 ‘직지’에 대한 흔적을 찾다가 고려의 북방 영토였던 현재의 러시아 지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러시아와 인연이 시작됐다. Q. 전시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 러시아 사람들의 경우 문화적 수준이 높고 삶 자체가 문화 예술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박물관에 돋보기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문화 국가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외래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포용력이 있으면서도 이질적인 문화와 완충하면서 수용한다. 완전히 흡수해버리고 소비가 끝나면 다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풍토와는 다르다. 알 때까지 탐구하고 깊숙하게 받아들이려하는 문화를 대하는 러시아인들의 모습이 진실해보였다 Q. 전시회는 단발적 행사다. 아쉬운 점이나 개선점이 있다면? - 문화는 결국 소통이다. 일회성 행사는 가십거리가 되기 쉽다. 대중문화와 달리 전통예술 분야의 경우 현지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서예 분야의 경우 지원받을 수 있는 명목이 없다. 한국의 전통예술문화를 알리는 소중하고 갚진 일이지만 개인이 사비를 투자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예술인들의 바람은 늘 있어왔다. 문제는 열악한 현실이다. 이런 부분들이 조금씩 개선되기를 바란다. 최승현 통신원 출처 :한국문화국제교류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