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May 2026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의 날에 드러난 우크라이나의 두 얼굴

관련기사

러시아의 전승 기념일인 9일은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럽의 날'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유럽의 날'을 맞아 국민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우크라이나인들은 유럽의 일원으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유럽을 수호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형식적인 행사나 포스터를 통해 '유럽의 날'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유럽 가족의 일원이라는 진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날을 기념한다"며 "유럽도 전면전이 시작된 첫날부터 오늘날까지 우크라이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국가, 우리의 국민,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독립적으로 선택할 권리, 즉 유럽에서의 미래를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크라이나가 9일을 '유럽의 날'로 바꾼 것은 전쟁 발발 이듬해(2023년) 6월이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5월 8일은 나치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이며,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날을 기념한다"며 기존의(9일) 승전 기념일을 (서)유럽 진영과 마찬가지로 8일로 앞당기는 법안에 서명하고, '나치즘에 대한 승리와 추모의 날'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9일은 '유럽의 날'로 지정됐다. 누가 봐도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날짜및 명칭 변경이 아직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스트라나.ua는 9일 수도 키예프(키이우)와 하르코프(하르키우), 오데사 등 대도시에서는 주민들이 아침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휴일에서 평이로 바뀐 9일 전승 기념비를 찾아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텔레그램 영상 캡처 
공휴일에서 평이로 바뀐 9일 전승 기념비를 찾아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텔레그램 영상 캡처 

스트라나.ua는 "하르코프 주민들이 이날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소련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비에 꽃을 바치는 사진과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면서 "그러나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수도 키예프에서도 주민들이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리는 오벨리스크를 찾아 '꺼지지 않는 불꽃'(영원의 불꽃)에 헌화하고 '무명의 용사들'을 추모한 뒤 떠났다. 현장에는 방문객 수보다 더 많은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남부 오데사에서도 주민들이 오데사 명예의 거리에 있는 무명 용사의 기념비에 꽃을 바쳤다. 명예의 거리 입구는 경찰에 의해 차단된 채 신분증과 휴대전화 검사가 이뤄졌다. 휴대전화 확인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러시아와의 접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대도시에서 포착된 9일 전승절 추모 행사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대도시에서 포착된 9일 전승절 추모 행사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스트라나.ua

현장을 찾지 않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인터넷에서 승전을 축하하는 방안을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날 아침부터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승전 기념일 행사(열병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구글 트렌드의 데이터를 보면,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어 '5월 9일 퍼레이드(Парад на 9 мая)', '승리의 날 사진(с днем победы картинки)', '2026년 승리 퍼레이드(парад победы 2026)', '5월 9일(с 9 мая)' 등을 키워드로 구글을 탐색했다. 

우크라이나 검색 구글 트렌드/캡처
우크라이나 검색 구글 트렌드/캡처

러시아도 승전 기념일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인들의 기억에 불을 지르는 전단을 뿌리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스트라나.ua는 7일 "러시아 드론이 접경 주(州)인 수미와 남부 오데사에서 승전 기념일을 기리는 전단지를 살포했다"며 "전단지에는 '우리 할아버지들은 참호 속에서 한 형제였다'거나 '역사가 우리를 갈라 놓았지만, 승전 기념일은 나눌 수 없는 기억'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드론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뿌린 전승절 홍보 전단. 할아버지들은 참호 속에서 한 형제였다고 적혀 있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러시아가 드론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뿌린 전승절 홍보 전단. 할아버지들은 참호 속에서 한 형제였다고 적혀 있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200흐리브냐 지폐 디자인에 새겨진 전승절 홍보 전단. 진짜 젤렌스키는 누구이며 왜 그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나!라고 적혀 있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200흐리브냐 지폐 디자인에 새겨진 전승절 홍보 전단. 진짜 젤렌스키는 누구이며 왜 그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나!라고 적혀 있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200흐리브냐 지폐처럼 디자인된 전단에는 "진짜 젤렌스키는 어떤 사람이며, 우리가 왜 그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스트라나.ua는 "여기서 젤렌스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조부이자 붉은 군대에서 복무했던 세묜 (젤렌스키)을, 아니면 소련의 영웅인 참전 용사 가브릴 니키토비치 젤렌스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짚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2019년 5월 9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SNS)에 조부 세묜 젤렌스키의 묘소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바 있다.

그로부터 2년 뒤(2021년),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 '인민의 종' 당 소속 최고라다(의회)의원 예고르 체르네프는 나치에 맞서 싸우다 우크라이나 반군(UPA, 친나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 세력)에 의해 살해된 우크라이나인들도 '부역자'라고 부르며, 붉은 군대(소련)가 나치와 싸웠다는 점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조부도 '부역자'로 분류했다.

문제는 과거의 역사보다 더 생생한 우크라이나 사회의 분위기다. 전쟁 발발 5년째를 맞았지만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는 여전하다. 
타티아나 베레즈나야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문화부 장관은 지난달(4월) 22일 여론조사기관 '그라두스'(Gradus)에 의뢰해 우크라이나인의 콘텐츠 소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우크라이나인의 71%가 정기적으로 러시아어 콘텐츠를 찾는다고 발표했다. 그중 거의 4분의 1은 매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그 이유를 이념적 신념이나 특정한 견해가 아닌 습관을 들며, 러시아어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2004년 대선 부정선거로 촉발된 소위 '오렌지 혁명'이후 친서방 노선으로 돌아서면서 러시아와의 단절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러시아어와의 숨바꼭질을 계속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유명 작가 라리사 니초이는 지난해(2025년) 12월 "르보프(르비우)는 우크라이나어 사용 도시가 아니다"며 "길거리에서 러시아어가 점점 더 많이 들린다"고 비판했다. 또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러시아어로 이야기한다"고 한탄했다.

앞서 유럽연대당 소속 의원인 볼로디미르 뱌트로비치는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의원 대다수가 공식 연설외에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해를 넘겨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어 옴부즈맨 엘레나 이바노프스카야는 지난 3월 르보프 아이들은 권력과 오만의 언어인 러시아어를 너무 쉽게 배운다고 불평했고, 한 블로거는 8일 "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어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며 "러시아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사용도 늘면서 러시아어 사용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의 대안도 그리 현실적인 것 같지는 않다. 베레즈나야 장관은 "고품질의 우크라이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고, 엘레나 이바노프스카야 국가언어보호위원장은 9일 한 방송에 나와 "내각과 국가안보회의, 교육부 및 기타 정부 기관의 대표들로 우크라이나화 추진을 위한 조정본부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쟁이 채 끝나지 않는 상태에서 두 장관급 인사의 우크라이나화 계획은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조심스럽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