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Jun 2026

'5월의 재외동포'에 러시아 연해주 출신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를 돌보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고(故) 최재형(1860∼1920) 선생이 '5월의 재외동포'로 선정됐다. 재외동포청(청장 김경협)은 15일 "'가정의 달'인 5월 연해주 한인들에게 따뜻한 난로(러시아어로는 '페치카') 역할을 했던 최재형 선생의 삶을 통해 희생과 나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선정 경위를 설명했다. 
연해주 한인들은 어려움에 처한 동포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최 선생을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ПЕЧКА)라고 불렀다. 최 선생은 사업가로 성공한 뒤 재산과 삶을 현지 한인 사회은 물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쳤는데, 교육이 민족의 미래를 바꾼다고 믿고 니콜라예프스크 소학교 등 연해주 일대 32개의 소학교 설립을 지원했다. 그는 또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 시 자금과 총기를 마련해 주고, 사격 연습 장소를 제공하는 등 하얼빈 의거를 지원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정부는 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또 2023년에는 순국 103년 만에 우수리스크 최재형 기념관 뒤편의 흙을 국내로 가져와 아내 최 엘레나 여사와 함께 합장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최 선생의 일생은 파란만장하다. 함경북도 경원의 가난한 소작인의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9살이 되던 해 가족이 연해주로 이주하는 바람에 현지 한인 마을인 지신허(地新墟)에 정착했다. 이후 최 선생은 러시아 상선에서 일하며 러시아어와 국제적 시야를 넓힌 뒤 사업을 벌여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그러나 사업으로 얻은 재산을 개인의 편안과 안위를 위해 쓰기보다는 한인사회 지원에 아낌없이 사용했다.

또 1905년 을사늑약 등으로 유린당한 조국의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최 선생은 1908년 안중근, 이위종 등과 함께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했고, 함경도 국경 지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항일 투쟁을 벌였다. 또 항일 신문인 대동공보 사장과 전로한족대표회의 명예회장을 거쳐 1919년에는 대한국민의회의 외교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이듬해(1920년) 일본군이 연해주 일대에서 한인들을 학살하는 '4월 참변'을 일으키자, 피신하기는커녕 의연히 맞섰고, 결국 일본군에 체포돼 우수리스크 언덕에서 삶을 마감했다. 일본군은 후과를 우려해 선생의 시신을 암매장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경협 청장은 "최재형 선생은 자신의 성공과 재산을 동포사회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나눈 진정한 지도자였다며 "선생의 삶을 통해 희생과 나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고 바랬다.
바이러시아 buyrussia21@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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