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정상들의 집요한 설득에 전쟁을 보는 시각을 바꿨다는 주장이 일부 외신(주로 파이낸셜 타임스·FT, 우크라이나 매체 주장은 당연하다/편집자)을 통해 꾸준히 흘러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미국의 주요 언론(워싱턴 포스트·WP와 뉴욕 타임스·NYT)과 속보성이 생명인 인터넷 매체(폴리티코와 악시오, 블룸버그 통신 등)은 의외로(?) 침묵을 지킨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G7회의가 끝난 뒤 1주일여만인 24일 입을 열었다. 그것도 영국의 스카이 뉴스가 "당신은 승자를 좋아하시죠.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금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받아낸 답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과의 회담 도중 질문을 받고 "어떻게 보더라도 그는(젤렌스키 대통령) 꽤 잘 해내고 있다. 적어도 버티고 있으니까. 양측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나는 그가 꽤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또 "그가 용감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는 훌륭한 장비와 뛰어난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고도 했다. 스카이 뉴스의 질문이 비록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젤렌스키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볼 만하다.
그가 G7 정상회의 도중 '러시아냐, 우크라이나냐? 선택해달라'는 식의 예민한 기자들 질문에 끝내 답변을 피해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1주일여만에 나온 그의 긍정적인 발언도 그동안 쉼없이 쏟아져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대한 유럽 G7 정상들의 주장이나 우크라·서방 언론의 평가와는 거리감이 있다는 느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뉴스1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일간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16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더 과감하게 행동하라"고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이 압박 없이는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며 그같이 주문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이나'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압박이 러시아로 하여금 실질적 외교(평화 협상)에 나서도록 하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무래도 국내 언론의 관심을 끈 것은 우크라이나 매체가 아니라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보도다.
FT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본토 깊숙한 목표물을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타격 작전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 강화에도 동의했다"고 소개했다.
FT의 이날 보도는, 엄밀히 따지면 G7 공동성명의 우크라이나 부분을 풀어쓴 데 불과하다.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 부문에서 최근 몇 달 간 우크라이나군이 전장에서 일군 성공을 높이 평가하고, 석유 및 가스 부문에 대한 새로운 조치를 포함해 대(對)러 경제 압력(제재) 강화 의사를 밝히는 등 4개항으로 되어 있다.

에비앙 정상회의를 주최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 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25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대한 입장을 바꿔 처음으로 중재자가 아닌 군사 지원과 제재, 영토 보전 문제에서 우크라이나의 파트너로서 행동하는 내용의 문서(정상회의 공동성명)를 지지했다"며 "이는 미국과 유럽 간의 새로운 관계 개선을 의미한다"고 G7 정상회의의 성과를 부각시켰다. 특히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유럽과 미국의 입장이 수렴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親)러 노선에서 벗어나 유럽이 요구해온 우크라이나 지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뜻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G7 공동성명 발표 이후, 러시아 측이 미국을 향해 실망스런 반응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3일 모스크바 외교아카데미에서 열린 모스크바 주재 외국 대사들 초청 원탁회의에서 "미국이 객관적 중재자 역할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 압박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유럽) 노선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정직한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모든 희망이 이미 무너졌다는 전제 아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목표 달성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외국 대사들을 상대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설명하고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원탁회의를 진행했다. 러-우크라 언론들은 자신들이 주목한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을 선별적으로 추려 보도했다. 그 중 핵심을 간추리면 이렇다.
"푸틴-트럼프 알래스카 (앵커리지) 정상회담을 우크라이나의 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기였다는 건 의심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들(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러시아의 공세를 중단시키기 위해 즉각적인 휴전을 원하고,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군사충돌 당시의) 민스크 협정처럼 잠시 숨 돌릴 틈을 얻어 우크라이나에 최신 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소위 '의지의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점령군(군대)을 배치할 시간을 벌려고 한다."
"러시아는 임시 또는 과도기적 해결책에 만족하지 않으며, 누구의 말(최후통첩)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축구 용어로 말하자면 지금 공은 우리 쪽에 있지 않다. 그들은 '오프 사이드' 반칙을 범한 상태에서 우리 쪽으로 공을 던지려고 한다."
"개전 첫해(2022년) 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나 사실상 평화협정(초안)에 합의했다. 이 협정은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 지위를 수용하면, 러시아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철군하고, 크림반도의 지위는 10~15년 이후 재협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키예프(키이우)외곽 부차 학살 책임을 러시아에게 돌리면서 좌초됐다.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는 군사 지원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정) 서명 포기를 요구했다."
"그들(우크라이나와 유럽)은 '현 전선에 따라 휴전하고 협상을 하자'고 또다시 말한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했다. 이스탄불에서 합의하고 (초안에) 서명했으며 선의의 행동으로 공격을 중단하고 심지어 키예프에서 군을 철수시켰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튿날(24일)에도 공개 장소(프리마코프 전 외무장관을 기념하는 국제학술전문가 포럼인 프리마코프 포럼)에서 미국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2025년) 8월 앵커리지 미-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양보를 한 끝에 '합의'(언론에서는 주로 '앵커리지 정신'으로 표현/편집자)를 이뤄냈는데, 또 추가 양보를 요구받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는 '앵커리지 합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가 구체적인 제안들을 모스크바에 가져왔고, 푸틴 대통령은 앵커리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이런저런 세부적인 사항들이 (문제가) 있지만, 내가 책임지고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 자체가 타협이었다. 모스크바는 합의 내용 준수를 약속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직 아무런 답변이 없다. 이는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에 러시아는 임시 방편(현 전선에서의 휴전 후 협상을 요구하는 유럽 측 주장/편집자)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의 강요(유럽의 협상 최후통첩)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 이 자리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측에 러시아에 대한 군사 행동 확대를 승인했다'는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프스카(키예프) 프라브다'의 보도에 대해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일축했다. 우크라이나 언론이 왜곡 보도했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라브로프 장관의 앵커리지 정상회담 설명에 미국측 파트너인 마코 루비오 장관은 25일 "당시 어떠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발끈한 라브로프 장관은 이튿날(26일) "앵커리지에서 나는 루비오 장관과 함께 정상회담에 배석했다"며 조목조목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당시 루비오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직접 (위트코프 특사가 낸) 미국 측 제안을 하나씩 옲으며 위트코프 특사에게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했고, 그도 인정했다"며 "루비오 장관이 앵커러지 정상회담에서 제안만 있었을 뿐, 합의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합의'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꼬집었다.
푸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해외담당 보좌관도 21일과 23일 공식 석상에서 잇달아 미국이 '앵커리지 합의(정신)'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입장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국제 현안에 대한 태도를 수시로 바꿔 온 그의 '카멜레온'식 색깔 변화를 감안하면, 그가 앞으로 푸틴 대통령과 대화한 뒤 또 어떤 태도를 취할지 미지수란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이가 드미트리 쿨레바 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다. 그는 전쟁 초기 미국과 나토, 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과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최일선에서 조정한 인물이어서 상대측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로 평가된다.
쿨레바 전 장관은 "그것은 적절한 장소(G7)와 시기에 나온 일시적인 발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다른 G7 참가국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했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전에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고, 통화 후 '모든 것이 괜찮다, 블라디미르'라고 말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를 보여주는 진짜 증거는 위트코프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모스크바 방문에 앞서 키예프에 오는 것"이라고 판단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앞서 꼭 필요한 '큰 승리'를 만들기 위해 중재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앞서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전세를 역전시켰다는 일부의 주장에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 회의적인 곳은, 의외로 미국 언론이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27일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발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러시아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두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앵커리지 합의'(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철수와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보장/편집자) 를 파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악시오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G7회의 후 러시아에 대한 '40일 작전'의 시작을 발표했다"며 "이 작전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대로) 평화 협상을 진전시킬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장거리 드론을 동원한 40일 작전이 되레 러시아 사회에서 전쟁 지속의 불가피성에 대한 지지를 강화할 뿐이라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원하는 유럽의 주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메르츠 독일 총리는 25일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국제 재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적대 행위 중단과 러시아와의 협상 개시를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의 침략에 저항해 온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독일의 변함없는 약속"이라고 강조했지만, 러시아와 협상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유럽내 협상파다.
그는 전날(24일) "미국과 유럽의 적극 참여 아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직접 대화를 위한 제안을 지지한다"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 등 유럽 5개국(E5) 정상의 공동성명을 주도했다. 이날 회동은 내달(7월) 7, 8일 터키 앙카라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유럽 주요국의 입장을 조율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성명은 또 "(나토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해온) 미국(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나토)에서 계속 수행하는 핵심적 역할"을 인정했다.
러시아와의 직접 대화를 둘러싼 유럽내 분열 조짐이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독일·프랑스·영국 등 소위 'E3'는 최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측이 러시아 측과 비밀리에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자, 거세게 반발했다. 반면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E3'가 대(對)러 협상 주도권을 갖는데 비판적이다. 특히 폴란드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물류 허브 역할을 해온 점을 들어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달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는 G7정상회의 이후 불거진 다양한 논란들을 정리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 국가들은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전환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으로 요구하며 대(對)우크라 지원을 설득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 7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에 대한 미국의 지지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5일 '40일 작전'을 발표한 것도, 한 꺼풀 벗기면 '바로 이것(나토 추가 지원금) 때문'이라는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브게니(예브헨) 흐마라 SBU 국장대행으로부터 작전 보고를 받은 뒤 "나는 침략국(러시아)에 압력을 가하고 전쟁을 종식시키도록 하기 위해 SBU의 40일 작전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SBU 알파 특수작전센터가 점령군의 인명 및 장비 파괴 건수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텔레그램에 썼다.
SBU은 그동안 레닌그라드주(州) 러시아 해군 제15 무기고를 비롯해 크론슈타트 해군 기지, 크라스노다르주(州) 우스트-라빈스크 석유 저장소 등을 드론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또 페름주(州)에 있는 페름네프테오르그신테즈 정유공장과 석유 펌프장도 SBU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40일 작전의 핵심은 '크림반도 봉쇄'라는 분석도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저녁 대국민 연설(영상)을 통해 "러시아가 우리의 평화 조건을 수용할 수 있도록 G7 국가들이 우리의 크림반도 작전 수행에 구체적인 지원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며 "모든 것은 그들(G7)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또 "크림반도에서 진행 중인 작전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작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앞서 미하일(미하일로) 페도로프(페도로우) 우크라 국방장관이 "크림반도를 고립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만큼, 크림반도로 향하는 육상및 해상 교통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드론 작전을 예상해볼 수 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본토와의 교류가 불안정해지자 26일 지역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조만간 크림반도 상륙작전을 시도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도 있다.
러시아 매체 가제타루는 25일 "우크라이나는 G7의 도움을 받아 크림반도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하려 한다"는 현지 군사 전문가 크누토프의 주장을 소개했다. 크누토프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육상 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드론 특수 부대인 '루비콘'을 현지에 배치했다"며 "키예프 정권에게 남은 선택은 크림반도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으로, G7에 지원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크림반도를 공격할 수 있는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 등 추가 군사 자산을 지원받을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의 크림반도 상륙작전이 감행된다면, 2024년 8월의 전격적인 '쿠르스크 기습 작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관건은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에서 드러날 트럼프 대통령의 스탠스(입장)다. '앵커리지 정신'의 이행을 사실상 압박하는 라브로프 장관의 요구대로 푸틴 대통령과의 '합의'를 실효성 있는 것으로 볼지, 모든 상황이 이제는 키예프에 유리하게 바뀌었다고 판단할지 여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끊임없이 현 전선에서의 휴전과 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앵커리지 정신'을 근거로 우크라이나 측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양보(철군)를 평화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상태다.
푸틴 대통령은 23일 각료 회의에서 "러시아는 2022년 (3월의) 이스탄불 합의, 앵커리지에서 논의된 방식(앵커리지 정신), 그리고 현 전선 상황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와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협상 조건을 거듭 제시했다. 이중 핵심은 '앵커리지 정신', 즉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철군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부 분위기는 반대 쪽을 향하고 있다.
스트라나.ua는 25일 "G7 정상회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앵커리지의 미러 합의를 포기하고 유럽식 전쟁 종식안 수용/편집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며 "유럽 정치인들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믿고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칭찬하며, 공격 강화를 요구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종전 제안을 지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부응하는 미국측 입장은 24일 제러미 레빈 미국 국무부 부장관에게서 나왔다. 레빈 부장관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며 "워싱턴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구상을 지지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레빈 부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어떠한 양보에도 늘 반대해 온 강경파로 알려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스트라나.ua)도 나왔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입장에 모종의 변화가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앵커리지 정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난이 러시아에서 점점 더 자주 나오는 게 그 반증이다.
그렇다면 서방 외신이 언급하는 미국의 변화는 정확히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변화로 우크라·유럽이 기대하는 목표는 '최소'와 '최대'로 나눠진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최소한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전선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주장을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이 △'앵커리지 정신'을 포기하게 만들고 △대(對)우크라 지원(스타링크, 군사정보및 무기 판매 등)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며 △연 700억 달러 규모의 나토 군사 원조 계획을 수락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일시적인 제재 해제 조치를 더 이상 연장해서는 안된다는 경제적인 요구도 포함된다.
긍극적인 목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임 행정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대(對)러 전면적인 제재와 대(對)우크라 지원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에 대한 장거리 타격과 크림반도 등을 겨냥한 '40일 군사작전' 외에도 '러시아는 붕괴 직전이며, 사회적 반란의 위기에 처해 있어 이제 조금만 더 압박하면 (푸틴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프로파간다)을 퍼뜨리고 있다.
이같은 접근 방식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 참전을 부추긴 이스라엘과 일부 언론의 전략과 유사하다. 2025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테헤란 공격, 2026년 초 이란 내 시위 등을 근거로 미국이 직접 테헤란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면 중동 전역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으로 러시아가 붕괴 직전에 놓여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는 적어도 분명한 차이가 한 가지 있다. 바로 핵무기 보유 여부다. 테헤란이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암살 직후 즉시 사용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우크라·유럽의 주장대로)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고, '앵커리지 정신'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면, 러시아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쟁 종식을 기대하는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를 향해 '평화 협상' 카드가 아니라 '핵 최후통첩'을 던질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어차피 '프로파간다' 아니겠는가?
이란 전쟁의 학습효과를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도 '앵커리지 정신'은 무시할 수는 있어도, 러시아와의 대립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차피 그는 지금까지 '앵커리지 정신'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철수를 압박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러시아에 대한 태도도 앞으로 비슷할 터인데, 그것마저도 키예프와 유럽 국가들에게는 '승리'(최소한의 목표 달성)로 기록될 수 있다.
또 현재 상황에서 전선에서의 전쟁 종식은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철수보다 훨씬 더 실현 가능하고 빠르며,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하든,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전황)이다. 러시아가 향후 몇 달 안에 우크라이나 드론의 후방 공격과 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돈바스 전선에서 공세를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가 판세를 가르는 핵심 요건이라는 말이다.
러시아 당국은 현재 국민들에게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기반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은 고통스럽지만,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연료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전선의 임박한 재앙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려는 키예프 정권의 마지막 발악이며, 우리 군대는 진격하고 있으며 승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러시아가 앞으로 몇 달 안에 후방 공습의 여파를 극복하고 돈바스 전선에서 공세를 가속화하는데 성공한다면, 키예프에게는 심각한 결과가 또 닥칠 수 있다. '얄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식으로 승리를 자신했던 2023년 대반격 작전의 실패와 같은 깊은 좌절감을 우크라이나 사회에 다시 한번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이 키예프에 대한 재정 지원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앵커리지 정신'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가혹한 조건을 러시아에 제시하며 협상 동의를 구할 수도 있다.
거꾸로 크렘린의 약속에도 큰 변화가 없다(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 연료난, 전선의 교착 상태)면,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막대한 인명 손실을 감수하면서 우크라이나 '요새 벨트'인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뱐스크 등을 장악할 이유에 대해 러시아 사회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반전 여론이 곧바로 푸틴 체제의 불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전쟁 자금 조달과 병력 동원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이때 푸틴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우선 핵공격 위협이다. 서방 진영이 핵전쟁에 대한 공포 속에서 상당한 양보를 하도록 협박하는 방법이다. 물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5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무기 및 정보 제공은 국제 안보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녀는 "이같은 사실을 미국과의 접촉에서 거듭 강조해왔다"면서 "앵커리지에서 도출된 미-러 간 합의는 전쟁 종식의 토대가 될 수 있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한쪽 당사자(미국)는 자꾸 합의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불만은 표시했다. 미국이 (유럽의 자금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계속 공급하고,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정유 시설 공격에 필요한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FT의 전날(24일) 보도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판단된다.
다른 하나는 현 전선에서의 휴전을 수락하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현 전선에서의 휴전도 러시아의 군사적 승리(2022년 3월 러-우크라 간에 타결된 평화협정 초안과 비교하면 사실이다/편집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전쟁의 휴전 합의에서 보듯이, 미국도 러시아에 상당한 이권(제재 해제, 점령 영토에 대한 러시아 관할권 인정 등)를 약속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전쟁 양상과 평화협상 과정을 감안하면 현 전선에서의 휴전은 푸틴 대통령에게 상당한 굴욕감을 안겨줄 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관건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후방 공격 대(對, vs) 러시아군의 도네츠크주 요새 벨트 공략 간의 승부다. 한마디로 시간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우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공습을 지속하거나 확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드론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40일 작전'에서 모든 비축량을 다 써버린 뒤 손을 놓을지 여부다. 내달의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가 대(對)우크라 추가 자금 지원에 합의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후방 공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여부도 중요하다. 약 1,710만 ㎢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러시아는 방공망 전력을 분산 배치할 수밖에 없다. 냉전 시대 구축된 기존 방공 체계는 순항 탄도미사일의 요격이 주목적으로, 소형 드론을 떼로 발사하는 우크라이나의 군사 작전에 취약점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전쟁 중 군사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메꾸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장기 소모전' 전략을 계속해 왔다. 이제는 도네츠크주의 마지막 '요새 벨트'도 지근 거리(슬로뱐스크 5㎞ 앞까지 진격)에 두고 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27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후방 공격으로 언론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렸지만, 도네츠크주(州)에서 우크라이나 방어군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러시아군은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뱐스크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최전선 공세를 더욱 강화한다면, 궁극적인 군사작전 목표인 '돈바스 점령, 러시아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