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체르노빌 원전 전경과 방사능 피해를 상징하는 아이의 얼굴 이미지. 멀리 사고 원자로가 있던 체르노빌 원전 시설이 보이고, 방사능 피해를 입은 듯한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이미지는 체르노빌 사고가 남긴 보이지 않는 피해, 특히 다음 세대와 어린이에게 남은 공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체르노빌 역사박물관 홈페이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4호기가 폭발했다. 당시 그곳은 소련 영토였다. 오늘의 우크라이나 땅이다. 원자로 건물은 무너졌고 화재가 났다. 방사성 물질은 대기 중으로 퍼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사고 원인을 저출력 상태에서의 부적절한 시험과 통제 상실로 설명한다. 안전조치가 무시됐고 우라늄 연료가 과열됐으며 원자로의 보호 장벽이 뚫렸다는 것이다.
체르노빌은 원전 사고였다. 그러나 단순한 기술 사고는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위험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원자로는 폭발했다. 국가는 늦게 말했다. 시민은 자신이 어떤 위험 속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러시아 관영 통신 타스는 체르노빌 사고를 원자력 역사상 최대 재앙으로 설명한다. 타스는 사고로 원자로 노심이 완전히 파괴됐고 원전 건물이 부분 붕괴됐으며 방사성 물질이 대량 방출됐다고 정리했다. 또 4월 27일 프리피야트 주민 4만7천500명이 대피했고 1986년 5월 동안 30km 출입금지구역 안의 188개 거주지에서 약 11만6천 명이 이주했다고 설명했다.
피해는 한 도시 안에 머물지 않았다. 타스는 방사능 오염 지역이 20만㎢를 넘었고 그중 70%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와 러시아 영토였다고 전했다. 레닌그라드주와 모르도비야와 추바시야에서도 낙진이 관측됐고 이후 노르웨이와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도 오염이 확인됐다고 정리했다. 여기서 체르노빌의 본질이 드러난다. 사고는 체르노빌에서 났다. 그러나 위험은 국경을 넘었다. 원자로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바람은 소련의 행정 경계도 유럽의 국경도 따르지 않았다. 원전 사고는 한 국가의 내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사고 이후였다. 타스는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첫 짧은 공식 발표가 4월 28일에야 나왔다고 적었다. 고르바초프가 사고의 실제 규모를 설명하는 TV 연설을 한 것은 5월 14일이었다. 타스는 또 고르바초프가 2006년 BBC 인터뷰에서 당시 지도부가 사건의 전체 그림을 갖고 있지 못했고 주민 공황을 우려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체르노빌은 폭발의 재앙이었다. 동시에 정보의 재앙이었다. 소련은 위험을 즉시 투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국가의 체면과 체제의 안정이 시민의 생명보다 앞섰다. 그래서 체르노빌은 지금도 단순한 원전 사고가 아니라 정보 통제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40년이 지났다. 그러나 체르노빌은 과거가 되지 못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그날 러시아군은 체르노빌 원전 부지를 장악했다. IAEA는 체르노빌 원전 부지가 2022년 2월 24일부터 3월 31일까지 러시아군 통제 아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자포리자 원전은 2022년 3월 4일부터 러시아군 통제 아래 있으며 현재도 러시아 연방 통제 아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체르노빌은 소련의 실패가 남긴 장소였다. 그 장소가 다시 러시아군의 군사 작전 속으로 들어갔다. 1986년 체르노빌이 은폐의 재앙이었다면 2022년 이후 체르노빌과 자포리자는 원전이 전쟁의 인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원전의 의미도 바뀌었다. 평시의 원전은 전기를 만드는 시설이다. 전쟁 속 원전은 다르다. 점령의 대상이 된다. 압박의 수단이 된다. 공포의 근원이 된다. 포격과 드론과 정전과 근무 인력의 압박은 모두 원전 안전을 위협한다. 핵연료가 있는 시설은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금기를 흔들었다. 러시아의 핵안보 전문기관인 피르센터도 자포리자 원전이 2022년 이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정리했다. 피르센터는 2022년 3월 1일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 주변 지역을 통제한다고 IAEA에 통보했고 3월 4일 원전 외곽 훈련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적었다. 러시아 측은 이를 우크라이나 측 도발로 설명했고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포리자 원전은 전쟁 초기부터 서로 다른 주장과 군사적 충돌 속에 놓였다.
자포리자는 체르노빌보다 더 현재적인 위험이다. 체르노빌은 과거 사고의 기억이다. 자포리자는 지금 진행 중인 위험이다. IAEA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 원자력 시설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역사상 첫 무력충돌이라고 설명한다. 포격과 공습과 인력 문제와 외부 전력 손실이 현장의 핵 안전과 보안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체르노빌도 다시 위험해졌다. 2025년 2월 14일 체르노빌 원전 4호기를 덮고 있는 신 안전 격납 구조물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 이 사안은 책임 주체를 놓고 주장이 갈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드론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타스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가 러시아 책임론을 “키이우의 계획된 도발”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피해 자체는 별도로 봐야 한다. 러시아 매체 RBC는 IAEA 평가를 인용해 드론으로 인한 손상이 상당했지만 현장의 방사선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RBC는 충격과 화재로 생긴 구멍의 지름이 약 6m에 이르고 장비와 전기 케이블도 손상됐다고 전했다. 다만 예비 평가상 지지 보는 큰 손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설명됐다. 이후 평가는 더 무거워졌다. 러시아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2025년 12월 IAEA 발표를 인용해 체르노빌 신 안전 격납 구조물이 방사성 물질을 가두는 핵심 안전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지지 구조물과 감시 시스템에는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코메르산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지목했고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고 함께 적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단정하면 안 된다. “러시아가 공격했다”고 쓰려면 별도 증거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가 조작했다”고 써도 안 된다. 기사에서는 이렇게 쓰는 것이 정확하다. 2025년 2월 체르노빌 격납 구조물이 드론 공격으로 손상됐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책임을 주장했다. 러시아는 부인했다. IAEA와 러시아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방사선 수치 상승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구조물의 안전 기능에는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이것이 체르노빌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연결하는 핵심이다. 하나는 사고였다. 다른 하나는 전쟁이다. 하나는 소련 말기의 기술과 조직과 정보 통제 실패였다. 다른 하나는 현대전 속 원전의 군사화다. 그러나 두 사건은 같은 질문에서 만난다. 체르노빌의 교훈은 “원전은 위험하다”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하다. 더 깊은 교훈은 “위험을 숨기는 국가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원자로의 결함도 문제였다. 운전자의 판단도 문제였다. 안전문화의 부재도 문제였다. 그러나 사고 이후 정보를 늦게 공개하고 시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은 국가 시스템이 재앙을 키웠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기에 또 하나의 교훈을 더한다. 원전은 전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원전은 점령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원전은 군사적 압박의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핵시설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 사고가 나면 방사성 물질은 국경을 묻지 않는다. 바람은 여권을 확인하지 않는다. 강과 흙과 공기는 전선을 구분하지 않는다. 1986년 체르노빌은 소련의 재앙이었다. 그러나 피해는 소련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2026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전 위험도 마찬가지다. 체르노빌의 격납 구조물이 드론 공격으로 손상되고 자포리자 원전이 군사 충돌의 압박 아래 놓일 때 그것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만의 문제도 아니다. 원전 안전은 국제 문제다.

체르노빌은 여전히 기억의 장소다. 죽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이주한 사람들. 돌아가지 못한 도시. 버려진 집. 이름만 남은 프리피야트가 그곳에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은 이제 기억만의 장소가 아니다. 다시 현재의 장소가 됐다. 전쟁이 그 기억을 깨웠다. 그래서 4월 26일 체르노빌을 다시 쓰는 일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와 소련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는 일이다. 국가와 정보. 기술과 권력. 전쟁과 시민 안전의 관계를 묻는 일이다.
40년 전 체르노빌에서 원자로가 폭발했다. 40년 뒤 우크라이나의 원전들은 다시 전쟁의 언어 속에 놓였다. 과거의 위험은 은폐에서 왔다. 현재의 위험은 군사화에서 온다. 그러나 두 위험의 뿌리는 닮아 있다. 인간의 생명보다 국가의 목적이 앞설 때 원전은 전기를 만드는 시설이 아니라 공포를 생산하는 시설이 된다.
체르노빌은 끝난 사고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이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