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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에 속했던 작은 공화국 몰도바의 9.28 총선은 당초 친(親)서방, 친러 정당의 접전 예상과는 달리, 마이아 산두 대통령이 이끄는 친서방 집권 여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서방 언론은 총선을 전후해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주로 제기하고 비판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듯하다. 친(親)러시아 분리및 독립 요구가 거센 '트란스니스트리아'(러시아어로는 프리드네스트로비예 Приднестровье 드네스트르강 연안 지역이라는 뜻) 지역에서는 투표 자체가 사실상 차단되고, 출구조사가 금지되는 등 정치 후진국의 선거 행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또 친서방 산두 정권을 지지하는 서유럽 국가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도 폭로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산두 대통령의 '행동과 연대당'(PAS)이 9.28 총선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했다. 반면 산두 대통령에게 각을 세운 이고르 도돈 전 대통령이 이끄는 친러시아 성향의 '애국 블록'의 득표율은 24%에 그쳤다. 일부 군소 정당이 친러시아 성향을 띠고 있지만, PAS가 과반을 득표한 상황에서는 친러 세력이 의회 권력을 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번 총선은 산두 대통령의 친서방 정책이 계속 이어질지, 의회에 의해 제동이 걸릴지 여부를 가름하는 선거였다. 서방 외신은 PAS의 승리로 몰도바의 유럽연합(EU) 가입 등 산두 정권의 친서방 노선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은 투표율이 52%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해외 거주 몰도바인들이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여당에 몰표(78% 지지)를 던졌다. 몰도바 국내 상황으로만 보면, 집권 여당의 정치적 입지가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친러 성향의 지역에서는 투표가 사실상 원천 봉쇄됐다. 지난 22일에는 몰도바 당국이 총선 후 대규모 시위(폭동)를 계획했다는 혐의로 야당 인사(친러 인사) 74명을 체포했다. 민주주의 기준으로 보면, 총선을 앞둔 전형적인 야당 탄압으로 봐야 한다. 총선 후 크든 작든 부정선거 규탄, 혹은 총선 무효 시위가 벌어질 게 뻔하다.

야당 측의 부정 선거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총선 전만 해도 PAS와 '애국 블록'이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이달 초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애국 블록'이 36%, PAS가 34.7%를 각각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개표 결과 PAS가 과반 득표를 넘겼다. 몰도바 선관위가 출구조사를 금지하는 바람에 여론의 변화를 추적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주민에 대한 투표 봉쇄(혹은 방해) 와 해외 거주 몰도바인들의 현 정부 지지, 유럽 일부 국가들의 보이지 않는 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 정보기관의 활동(공작)에 대한 텔레그램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의 폭로는 서방 진영에 뼈아프다.
투표가 진행 중인 28일, 두로프 CEO는 몰도바 총선을 앞두고 프랑스 (및 몰도바) 정보기관이 몰도바 반정부 채널에 대한 검열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엑스(X)를 통해 두로프의 주장을 반박하며, 그가 과거에도 유사한 주장(루마니아 대선/편집자)을 했다고 비판했다.

두로프 CEO가 처한 여건이나 논리를 보면, 프랑스 당국의 주장을 100% 믿기에는 께름직하다. 그는 현재 프랑스에서 텔레그램 내 아동 음란물 유포·마약 밀매·조직적 사기 및 자금 세탁 등을 방치해 사실상 범죄를 공모하고 수사 당국의 정보 제공 요구에 불응한 혐의 등으로 예비 기소된 상태다. 보석으로 일단 풀려났지만, 정기적으로 프랑스에 가 도망갈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해야 한다.
그는 엑스(X)를 통해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프랑스 정보기관으로부터 법적 절차를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몰도바의 반정부 텔레그램 채널(선거에 관한 정치적 콘텐츠/편집자)을 검열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그 기관(프랑스 정보기관)이 실제로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사법 절차에 개입하려는 시도(사법 방해/편집자)이고, 그렇지 않다면(말 뿐이라면/편집자) 그들은 나의 취약한 법적 지위(예비 기소/편집자)를 이용해 동유럽(몰도바)의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또 "루마니아 (대선)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6월 두로프 CEO는 프랑스 정보기관이 루마니아 대선 기간에 보수 우익 성향의 채널 차단을 요구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루마니아 대선은 2024년 11월에 치러졌는데, 우익 세력을 대표하는 칼린 조르제스쿠(Călin Georgescu)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승리하자, 루마니아 헌법재판소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을 이유로 선거 자체를 아예 무효화했다. 루마니아 우익 정당의 지지를 받은 몰도바 정당도 이번 총선에서 등록 금지됐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끼어 있는 몰도바는 지정학적으로 루마니아와 러시아의 영향을 받을 수 밖는 처지다. 러시아와 루마니아 우익 세력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정당들의 선거 활동이 명백히 방해받았다고 할 수 있다.
두로프 CEO는 "(프랑스 정보기관에서) 우리에게 넘어온 채널(콘텐츠)들을 살펴본 결과, 명백하게 규칙을 위반한 채널 여러 개를 찾아 삭제했다"며 "얼마 후 두 번째 목록을 받았는데, 프랑스와 몰도바 정부가 용납할 수 없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해 우리는 채널 차단 요청을 거부했다"고 썼다.
잘 알다시피 텔레그램 메신저는 정부 당국의 콘텐츠 검열이 심한 개발 독재 국가에서 특히 인기가 있는 플랫폼이다. 프랑스 정부가 텔레그램을 통해 동유럽 정치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는 이유다. 두로프 CEO는 또 프랑스의 최근 반정부 대규모 시위가 텔레그램을 통해 조직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몰도바 야당은 이번 총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반정부 투쟁을 시작할 계획이다. 루마니아 우익 정당과 연계됐다는 이유로 총선 참여가 좌절된 '승리'당은 "총선은 선거가 아니라 임명이었다"며 총선 불복을 선언했다. 도돈 전 대통령도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야당의 총선 불복및 반정부 시위가 몰도바 정국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고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
우선, 투표 방해. 몰도바 보안 당국은 친러 성향의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주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를 보안상 등의 이유로 봉쇄했다. 이에 따라 많은 주민들이 투표장으로 가지 못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한 '프리드네스트로비예 몰도바 공화국'측은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가 트란스니스트리아 사람들의 총선 참여를 방해했다고 비난했다.



또다른 이슈는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트란스니스트리아' 스캔들이다.
집권 여당은 야당이 승리할 경우,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주둔한 러시아군(정식 명칭은 평화유지군)이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 헤르손주(州) 공략에 나선 러시아군을 돕기 위해 배후에서 오데사를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 측은 산두 진영이 승리할 경우, 키시나우가 우크라이나군의 지원을 받아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소위 '프리드네스트로비예 몰도바 공화국'을 강제 병합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주장들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우크라이나에서도 터져 나왔다. 어느 쪽 주장이든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지만, 나라를 반쪽으로 쪼개놓을 확률은 점점 더 커졌다.
스트라나.ua는 산두 대통령이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몰도바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휩쓸리기를 원치 않고, 유럽 역시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꺼린다며 몰도바 야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특히 (키시나우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점령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동쪽에서 협공 지원을 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군이 현실적으로 그만한 여유가 없다고 했다.
또 집권 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려면, 러시아군이 드네프르 강을 건너 오데사 지역으로 진입할 경우에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은 현재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와 자포로제(자포리자), 헤르손주에서 드네프르강을 넘어 서진(西進)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