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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으로 메시지 앱 텔레그램을 개발한 파벨 두로프 CEO가 러시아와 이란 등 전쟁 중인 국가들의 텔레그램 차단및 접속 제한 조치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텔레그램은 중국에서 개발된 틱톡과 함께 대표적인 비서방 유명 IT 플랫폼. 눈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간에도 서방의 집요한 견제에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던 두로프다.
그는 2024년 8월 프랑스에서 아동 성착취물(포르노)과 마약의 소지 및 배포 공모, 사기 등 12가지의 혐의로 체포, 기소됐고 유럽연합(EU) 측의 텔레그램 제재에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미 경제잡지 포브스가 2026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 발표에서 텔레그램의 자산 가치를 대폭 평가절하한 뒤 두로프 CEO의 재산을 전년도(2025년) 171억 달러에서 66억 달러로 100억 달러 이상 줄였다. 그에게 밀어닥친 가장 큰 위협은 텔레그램 사용자가 많은 국가 중 하나인 러시아 당국의 제재 조치다. 러시아 통신감독당국인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텔레그램이 국내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2월 서비스(접속) 속도의 제한 조치에 나섰는데, 4월 중에는 완전히 차단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현지 모니터링 프로젝트(단체)에 따르면 지난 10일 러시아에서 텔레그램 사용자의 95%가 접속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텔레그램 접속이 느려터져 사용자들이 기다리지 못하거나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알림을 받았다고 한다. 당국이 공식적으로 차단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으로는 거의 100%가까이 텔레그램 접속 자체를 막은 셈이다.

두로프 CEO는 러시아 당국이 기술적으로 쌓아올린 차단의 벽을 뚫기 위해 기술 개발및 홍보에 적극 나섰다.
경제매체 브즈글랴드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두로프 CEO는 11일 러시아와 우크라이 당국의 검열에 맞서기 위해 텔레그램 프로토콜을 업데이트한다고 발표했다. 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우크라 양국의 사용자들이 계속 텔레그램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러시아인들이 접속을 계속하려면 △앱을 곧바로 업데이트하고 △장애 발생에 대비해 여러 개의 VPN(Virtual Private Network, 가상 사설망)과 프록시 서버(사용자와 앱 사이를 중개하는 서버/편집자)를 미리 설정하며 △소통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이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VPN 사용 시 보안을 강조하며, 러시아 앱이 VPN을 통해 실행될 경우, 당국에 VPN 정보가 전송돼 차단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러시아 앱의 VPN 사용 자제를 권했다.
이같은 권고는 러시아에서 텔레그램을 계속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 불편이 뒤따른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텔레그램 적극 지지자가 아니라면, 쉽게 이탈할 위험은 그만큼 커졌다.
두로프 CEO는 또 사용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텔레그램의 권장 사항을 따르고 있으며, 이 덕분에 텔레그램은 지난 주 러시아에서 서비스가 완전히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분산형 검열 방지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텔레그램은 또 타사 앱(예를 들면 텔레가·Telega)이나 메신저 미러(대체 앱)를 사용할 경우, 통신 보안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알림을 제공하는 등 보안조치를 강화했다. 경고 알림은 사용자 이름 옆에 표시된다.
두로프 CEO는 텔레그램이 러시아에서 차단되었다는 표현을 쓰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텔레그램과 함께 러시아 당국의 '블랙 리스트'에 오른 미국의 메신저 앱 '왓츠앱'이 지난해(2025년) 8월 전화 통화 기능이 차단된 뒤 올해 2월 완전히 차단됐다. 왓츠앱은 러시아의 '온라인 디렉토리'(국가 도메인 네임 시스템·NDNS)에서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 디렉토리'란 러시아 당국이 허용한 온라인 서비스의 도메인 목록을 말한다. 러시아 인터넷에서 왓츠앱 도메인(whatsapp.com과 web.whatsapp.com)을 빼버린 것이다. 왓츠앱은 이후 "러시아 사용자들의 접속을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현실적으로 복귀는 어렵다.

두로프 CEO가 러시아 시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왓츠앱과 달리 텔레그램은 러-우크라 시장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연이어 사용자들에게 향후 기술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차단 조치의 영향을 극소화할 수 있도록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이유다.
텔레그램의 이같은 상황은 4년 여전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될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전쟁 발발 후, 텔레그램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가장 유용한 전쟁 정보 수집및 소통 수단으로 각광을 받아 왔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의 협조 요청을 지속적으로 완강히 거부하면서 크렘린의 눈밖에 났고,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텔레그램을 대체할 '맥스'(MAX) 앱을 개발하면서 '러시아=텔레그램'이라는 공식은 깨졌다. 다행히 일부 러시아인들이 VPN이나 프록시 서버 등을 통해 텔레그램 접속을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카카오톡이 텔레그램 대체 앱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러시아 당국과 텔레그램 간의 줄다리기는 올들어 더욱 팽팽해졌다.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은 지난 2월 "두로프 CEO와 대화를 나눴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며 "더 이상 접촉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두로프는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한다"며 "그러다보니 청소년 범죄, 테러 행위, 사보타주(비밀 폭파 작전) 등 수많은 범죄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비밀 채팅 기능을 지닌 텔레그램을 통해 각종 범죄가 모의되고 실행되는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FSB 측(공보센터)은 또 텔레그램이 전장에서 군인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 메신저를 통해 신속하게 각종 정보에 접근해 러시아군을 향해 포격 또는 드론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막수트 샤다예프 러시아 디지털 개발·통신부 장관도 "외국 정보기관(우크라이나)이 텔레그램 메시지에 접근하고 있다"며 동조하고 나섰다. 또 "텔레그램을 통해 15만 건의 사기 범죄가 발생했으며, 그중 3만 건 이상이 사보타주 및 테러 공격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텔레그램 측은 "외국 정보기관의 메시지 암호화 해제 시도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러시아 당국의 주장은 의도적인 날조"라고 일축했다.
양측의 거센 공방전 속에 러시아 통신당국이 텔레그램의 운영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접속에 시간이 많이 걸리도록 만들어 유저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편집자)는 보도에 이어 '4월 초부터 접속을 완전 차단할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크렘린은 지난 3월 "텔레그램이 접속 차단을 피하려면 러시아 법을 준수하고, 당국에 적절하게 대응(사실상 협조)해야 한다"고 정리했으나, 통신당국은 "텔레그램이 서버를 러시아에 두고 러시아 법을 준수하지 않는 한 서비스를 계속 제한할 것"이라고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과 텔레그램 측의 공방을 안드레이 클리샤스 연방평의회(상원) 입법·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은 나중에(3월 31일) 이렇게 정리했다.
"국가와 그 규칙이 우선인가, 플랫폼과 그 규칙이 우선인가의 다툼이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국가는 독자적인 규칙을 가진 주요 IT 사업자를 수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밖에 없다. 사업자(텔레그램)가 '이것이 내 기준'이라고 말한다면, '이곳이 러시아'라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모든 다국적 기업은 비즈니스를 하는 국가의 국내법에 따라야 한다."
4월 들어 위기를 느낀 텔레그램 측의 대응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두로프 CEO는 지난 4일 러시아의 텔레그램 차단 소문에 선제 대응이라도 하듯이 "러시아 형제자매 여러분, 디지털 저항 공간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당국의 어처구니없는 제한 조치를 우회하기 위해 VPN과 프록시 서버를 구축하고, 저희 또한 텔레그램 트래픽을 감지하고 차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법을 계속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6천5백만 명의 러시아인이 매일 VPN을 통해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있으며, 5천만 명 이상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이란에서도 디지털 규제 저항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5천만 명"이라고 텔레그램에 썼다.
하지만 러시아 최대 유무선 통신사인 로스텔레콤은 텔레그램 메신저의 트래픽이 10분의 1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미하일 오세예프스키 로스텔레콤 CEO는 3월 26일 러시아 산업가 및 기업가 연합(RSPP) 총회에서 "왓츠앱의 트래픽은 러시아에서 이미 전무한 수준으로, 이미 죽었고, 텔레그램도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러시아인들은 3월 중순부터 당국의 텔레그램 제재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들이 텔레그램 메신저 장애에 대해 앞다퉈 보도했고, 러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장애 관련 불만이 접수됐다. VPN을 사용하지 않으면, 알림 표시는 나오는데,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았다.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3월 17일 현지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애플리케이션 장애 추적 데이터를 인용해 "러시아에서는 약 80%의 사용자가 텔레그램 메신저 접속에 문제를 겪고 있다"며 "지난 24시간 동안, 특히 러시아 IP 주소에서 접속하는 경우, 텔레그램 접속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메시지 전송이 되지 않고, 업데이트 상태로 바뀌거나 접속에 몇 분씩 걸리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했다.
또 많은 VPN 서비스이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러시아 당국이 텔레그램 차단을 우회하는 데 사용되는 VPN 사용을 3월 1일부터 금지한 게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안드레이 스빈초프 러시아 국가두마 정보 정책 위원회 부위원장은 3월 12일 "로스콤나드조르는 VPN 트래픽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VPN을 사용하더라도 텔레그램은 러시아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장담했다. 앞서 두로프 CEO의 기술 관계자들도 2월 중순 "메신저의 완전한 차단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게다가 모스크바 타간스키 법원은 3월 15일 극단주의를 조장하는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텔레그램에 3,500만 루블의 벌금을 부과했다. 며칠 뒤, 텔레그램 운영진은 11만4,300개의 채널과 그룹을 하루 만에 차단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당국의 텔레그램 압박은 오는 15일부터 2단계로 들어간다. 러시아에서 금지된 VPN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서비스 접속을 주요 온라인 플랫폼이 제한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샤다예프 디지털 개발·통신부 장관은 지난 2일 국민은행 격인 스베르방크, 포탈 사이트 얀덱스, SNS인 VK(브콘닥테), 인터넷 쇼핑몰 와일드베리스와 오존, 가즈프롬 미디어, 대형마트 X5, 헤드헌터, 부동산 중개사 CIAN 등 20여 개 기업 대표들에게 금지된 VPN의 IP 주소들을 제공하며 서비스 차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이를 거부할 경우, '화이트 리스트'(러시아에서 인터넷이 차단될 경우에도 접속이 가능한 사이트 목록/편집자)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텔레그램=러시아'로 여기는 서방 진영의 압박도 두로프 CEO에게는 큰 부담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두로프 CEO는 10일 EU가 텔레그램에 압력을 가하고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U 집행위원회와 협력하는 AI 포렌식스(AI Forensics)가 "텔레그램이 불순한 콘텐츠를 유포하는 채널을 차단하지 못해 사실상 범죄의 온상 역할을 한다"고 비판한 데 대한 강한 반박이다. AI 포렌식스의 주장은 유럽의 언론 매체에 실렸다.
두로프 CEO는 텔레그램에서 "AI 포렌식스는 미국 투자자 조지 소로스 관련 단체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며 "EU는 시민단체와 언론 매체를 통해 텔레그램에 대한 감시 강화(채팅 통제)와 검열(DSA)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EU의 이러한 조작 시도를 폭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자유마저 빼앗는데 이용되기 때문"이라고 썼다.
거대 IT 플랫폼이 한 국가의 권위에 대항해 싸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 두로프 CEO의 분투가 성공할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사생활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EU조차 텔레그램 압박에 나서고 있으니 그의 처지는 이래저래 고달프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