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밤부터 12일 새벽까지 서울 용산의 러시아 정교회 부활성당, 부산 성모성탄성당, 인천 만성당에서 부활절 예배가 열렸다. 테오판 한국대주교가 서울에서 예배를 집전했고, 부산과 인천에서도 같은 밤 부활절 예배가 거행됐다. 한국에서 정교회는 원래 러시아에서 들어왔다. 시작점은 1900년 2월 17일 서울 러시아 공사관이다. 한국정교회 대교구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이날 공사관 안에서 임시 성당을 꾸미고 첫 성찬예배를 올렸다. 한국 정교회는 이 날을 사실상 출발점으로 본다. 그 전 단계도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1897년 7월 2일 한국 선교부 설치를 결정했다. 다만 선교부는 곧장 서울에 들어오지 못했다. 첫 책임자로 임명된 암브로시 구드코 원장은 정치 상황 탓에 비자를 받지 못했고 선교단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노보키예프스크에 1년 넘게 머물러야 했다.
이후 1899년 니콜라이 알렉세예프 부제가 먼저 서울에 도착했고, 1900년 1월 흐리산토스 세헷콥스키 신부가 부임하면서 선교 체계가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했다. 테오판 대주교의 교구 자료에 따르면 흐리산토스 신부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러시아 제국과 접촉했던 한국인 통역·근무자 약 30명이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첫 설교와 교리 교육은 이들을 향했다. 한국 정교회의 첫 신자층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이미 러시아와 접촉한 조선인들이었다는 얘기다. 선교 활동은 정동을 중심으로 진행됐다.한국정교회 대교구에 따르면, 흐리산토스 신부는 1903년 정동에 학교 건물을 겸한 임시 성당을 마련했고, 그해 4월 17일 성 니콜라스 성당 축성(祝聖)식이 거행됐다.
러시아 정교회 한국교구 자료에 따르면 정동 부지가 러시아 외교 라인을 통해 제정 러시아 자금으로 확보됐고, 선교사 숙소와 학교, 종탑이 함께 세워졌다고 설명한다. 모스크바에서 특별 제작한 종도 이때 들어왔다. 정동의 러시아 정교회는 처음부터 예배당 하나만 덩그러니 선 것이 아니었다. 학교와 번역, 선교 거점까지 묶은 복합 선교기지였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자마자 난항을 겪게 된다. 1904~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쫓겨난 것. 1906년 빠벨 이바노프스키 신부가 들어오며 선교는 재개됐지만, 원할하지 않았다.
1910년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1917년 러시아 혁명, 그 뒤이은 재정 단절과 연락망 붕괴가 선교부를 차례로 흔들었다. 그래도 명맥은 남았다. 한국정교회 대교구 공식 역사에는 1900년부터 1945년까지 정교회 선교사들이 세례를 준 한국인이 789명으로 집계돼 있다. 다만 1940년 시점 신자는 전국 17개 지역에 흩어진 150명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러시아 선교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은 해는 1949년이다. 한국정교회 대교구는 마지막 러시아계 성직자 폴리카르프 프리마크 신부가 그해 추방되면서 러시아 선교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정리한다. 이후 한국전쟁이 터졌고, 서울 성당도 큰 피해를 입었다. 전후 공동체 복구에는 그리스군 종군사제들이 깊이 관여했다. 1955년 서울 성 니콜라스 공동체는 만장일치로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 관할 편입을 요청했다.

오늘 한국 정교회의 주류 계보가 러시아가 아니라 세계총대주교청 아래 놓인 이유다. 전쟁 뒤 교회는 다시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정동 성당은 반파됐고, 긴 법정 다툼과 재산 정리 끝에 서울 마포로 터를 옮겼다. 한국정교회 대교구 공식 역사에 따르면 지금의 아현동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1967년 건립됐고, 1968년 문을 열었다. 러시아가 심은 씨앗은 전쟁 뒤 그리스계 관할 아래서 연명한 셈이다. 지금 한국의 정교회는 그래서 두 갈래다. 하나는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 소속 한국정교회 대교구다. 현재 교구장은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다. 올해 4월 한국정교회 공식 게시물도 그를 ‘한국 대주교이자 일본 엑사르호스’로 표기한다.
다른 하나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소속 러시아 정교회 한국교구다. 현재 교구장은 테오판 대주교다. 2019년 4월 러시아 정교회가 그를 한국교구의 관할 주교로 임명했고, 지금도 공식 사이트는 그를 한국대주교로 소개한다. 러시아 정교회는 2019년 2월 26일 남북한을 아우르는 별도 한국(코리아)교구를 설치하면서 한반도에 다시 교구 체계를 세웠다. 현재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예배처는 서울, 부산, 영종도, 인천, 경주, 청주, 평양 등 7곳이다. 서울과 부산은 정규 본당, 영종도와 인천은 수도·선교 거점 성격이 강하다.
평양 생명삼위성당도 한국교구 공식 명단에 포함돼 있다. 숫자는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양측 모두 2026년 현재 ‘전체 등록 신자 수’의 최신 공식 통계를 뚜렷하게 공개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러시아 정교회 한국교구는 한국 내 러시아 국적 상주자가 약 6만 명이고, 중앙아시아 출신 러시아어권 고려인도 약 10만 명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이 숫자는 곧바로 실신자 수라고 보기보다는, 러시아 정교회가 기대하는 잠재 신자 기반에 가깝다. 반면 한국정교회 대교구는 교세를 숫자로 과시하기보다 공동체 유지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는 올해 4월 4일 예비신자 13명이 세례와 견진을 받았다. 규모는 작아도 공동체는 계속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한국의 러시아 정교회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1900년 서울 러시아 공사관에서 시작됐다. 1903년 정동 성 니콜라스 성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러일전쟁과 식민지, 러시아 혁명, 한국전쟁을 거치며 거의 사라졌다. 1955년 한국 정교회의 중심은 세계총대주교청 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2019년, 러시아 정교회는 다시 한국교구를 세웠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