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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북한군 포로 스캔들이 터졌다. 우리 정부 당국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이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러시아 쿠르스크주(州) 전선에서 사로잡은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공개한 것. 그동안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보수 야당은 뒤통수를 맞은 듯, 송환 정보를 은폐한 정부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고,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소셜미디어(엑스·X)에서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고 맞섰다.
여기까지는 국내의 여야간 정쟁이라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대통령의 엑스(X) 글이 우크라이나 정부 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한-우크라이나, 한-러 관계로 불똥이 튀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6일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유엔에서 북한군 포로 두 명의 서울 이송을 발표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강하게 대응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며 "발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살인자나 매국노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발언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포로 이송 사실을 은폐했다고 비난하는 한국 야당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스트라나.ua가 주목한 것은, 포로 송환 사실 공개에 따른 한-우크라 간 충돌과 그 결과다.
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비공개 합의를 어겼다며 유감을 표명했고, 키예프(키이우)는 포로 이송과 관련한 비밀 유지 약속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우크라 간의 진실 게임 여부와 상관없이 포로 이송 정보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 공개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스트라나.ua는 짚었다. 북한은 포로 가족들을 '인민의 적의 가족'으로 규정하고 처벌하거나, 평양이 포로들의 납치 혹은 살해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사례까지 겯들었다. 나아가 포로 이송 정보가 공개될 경우 한반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도 있다고 봤다. 이 대통령이 강경하게 반응한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스트라나.ua는 "포로 이송 정보의 공개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가뜩이나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키예프의 무기 이전 요청을 거부해 온 서울이 이번 사건으로 북한, 러시아와의 긴장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아무것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명분이 더욱 강해졌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지적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오랫동안 한국 정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비롯한 한국형 방공망 무기(천궁 Ⅱ)와 재정 지원을 요청해 왔다.
지난 6월 말 방한한 안드레이(안드리) 시비가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이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방공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7월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문인 알렉산드르 카미쉰(Александр Николаевич Камышин, 전 전략산업부 장관)이 서울을 방문(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관계자를 만났다)해 패트리어트 미사일 체계용 PAC-3 미사일의 제공을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PAC-3는 최대 고도가 40㎞에 이르는 최신 기종으로, 변칙 기동을 하는 러시아 이스칸데르-엠(M) 미사일 등을 요격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對)우크라 무상 지원 중단 조치 이후,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담이 큰 유럽 또한 주기적으로 한국 정부에 우크라이나군에 무기를 제공할 것을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 참전과 그 확대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역설한 것도 '공동의 적과 싸운다'는 명분 아래 한국 정부의 지원을 유도하려는 의도였다고 스트라나.ua는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한 포로 문제를 언급한 것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대형 스캔들로 번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아쉬움을, 한국 정부로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안도감을 느낄 판이다.
러-우크라 현지에서도 그 강도와 결은 다르지만 북한군 포로의 서울 송환 사실 공개에 대한 비판이 잇따른다.
우크라이나 온라인매체 리가넷 등에 따르면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의 미디어 담당인 옥사나 토로프는 페이스북에 “양국간 합의와 비밀유지 합의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세계에 북한군 포로의 한국 인도 사실을 밝혔다”며 “이는 쇼이자 관심 끌기이며, 강렬한 효과를 위한 눈에 띄는 연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드미트로 리트빈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그런 합의는 없었으며 사실이 아니다”며 “특정 포로들이 어디로 가는지 숨기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고 반박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렇다고 비판의 흐름을 뒤집지는 못한 듯하다.

러시아의 반응은 더 적나라하다.
스캔들이 터진 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25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지원 가능성에 경고 메시지를 냈다. 그는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키예프에 대한 한국의 군사 지원은 필연적으로 한국과 러시아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이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에 거듭 전달됐다"며 "우리는 한국이 이런 입장을 계속 유지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타스 통신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공망 지원을 거절해왔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논평"이라고 설명했지만, 시기적으로는 북한 포로의 서울 이송 이후 한국의 보답 조치 가능성에 미리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앞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23일 미국 뉴욕에서 안드레이시비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필요한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러시아 매체들은 “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를 살인자, 반역자(이 대통령은 매국노라고 했다/편집자)로 부르며 송환 사실 공개를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해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외교 관계에 불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매체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는 25일 ‘배신자냐 살인자냐: 한국 대통령, 젤렌스키 맹비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심각한 국제적 스캔들로 끝났다”며 “젤렌스키 (대통령)는 북한군 포로를 한국에 넘겨줬다고 폭로하고, 한국 대통령은 젤렌스키를 거침없이 ‘살인자’이자 ‘배신자’라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한국 지도자는 젤렌스키가 남북 관계, 인명 피해, 국가 이익에 대한 피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홍보를 위해 서둘러 송환을 세계에 떠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며 이 대통령의 ‘살인자’ ‘반역자’ 표현이 젤렌스키를 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인터넷 포탈 얀덱스의 뉴스 부문(dzen.ru)에 올라온 관련 뉴스는 거의 모두 이 대통령의 젤렌스키 대통령 비난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야당의 사실 은폐 비판에 대한 맞대응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