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다시 국제 무대로 돌아온다.
지난 6월 말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관한 징계를 일부 해제하고, 두 나라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을 개인중립선수(AIN) 자격으로 국제대회 참가를 허용한 국제빙상연맹(ISU)은 7일 도핑 징계에서 풀려난 카밀라 발리예바,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2025/2026 러시아 선수권대회 챔피언 마리아 자하로바 등 여자 싱글 선수들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표트르 구메니크 등 남자 싱글 선수들을 포함해 총 50여명의 러시아 선수들에게 AIN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에 출전한 아델리아 페트료샨은 명단에서 빠졌다. 아예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기각됐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ISU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다가오는 2026/2027 시즌에 참가할 수 있는 러시아 피겨선수(중립 선수 자격)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ISU가 주관 혹은 후원하는 주요 국제대회는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 규모를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을 끈 선수로는 '여자 피겨 신동'으로 이름을 떨친 발리예바(20)가 먼저 꼽힌다. 2022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도핑 스캔들'(2014년 금지 약물로 지정된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편집자)을 일으킨 발리예바는 자격 정지 4년(2021년 12월~2025년 12월)의 징계가 끝나 올 1월 말 은반 위로 돌아왔다.
복귀 무대는 '러시아 점핑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그녀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 당시, '우승 제조기'로 알려진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의 ‘삼보-70 크리스탈 아카데미'(통칭 '투트베리제 사단'으로 불린다. 투트베리제 감독 아래 세르게이 두다코프, 다니엘 글레이첸하우스 코치가 있다/편집자)의 소속이었으나 스베틀라나 소콜로프스카야 코치가 이끄는 '타티아나 나브카'팀 소속으로 바꿔 대회에 출전했다.
그녀는 복귀 무대에서 4년이라는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 날렵해진 몸놀림으로 고난도 기술인 쿼드러플(4회전) 토루프 점프를 깨끗하게 성공시키고, 트리플 러츠와 플립을 결합한 콤비네이션 점프까지 연달아 선보였다. 그녀는 개인전 예선 4위로 결선에 올랐고, 듀엣 점프 종목에서도 6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팬들도 인형과 꽃다발을 빙판 위로 던지며 그녀의 복귀를 환영했다.
22세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알렉산드라 트루소바(결혼 후 성은 이그나토바)도 2022년 이후 처음으로 올 1월 점핑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개인전 8강전에서 10명 중 9위를 차지해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트루소바는 2024년 동료 남자 피겨 선수인 마카르 이그나토프와 결혼했다.
그녀는 주니어 시절부터 4회전 점프를 구사하며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한 안나 셰르바코바, 알레나 코스토르나야와 함께 '러시아 피겨 3인방'으로 꼽혔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에서 셰르바코바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려 은메달에 머물자, 눈물을 흘리며 격해진 감정을 거칠게 토해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러시아 스포츠 전문매체 '참피오나트'(챔피언)가 2023년 9월 선정한 최근 10년간 최고 피겨 스케이터 부문에서 발리예바와 트루소바는 각각 11위와 1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금메달 셰르바코바.
참피오나트는 발리예바의 성공 요인으로 경이로운 유연성과 강력한 체력, 그리고 독특한 음악성을 꼽았다. 특히 쿼드러플 점프와 트리플 악셀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뛰어난 연기력을 앞세워 ISU 피겨 그랑프리의 모든 단계와 러시아 및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가볍게 우승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에서 '도핑 스캔들'에 발목이 걸려 금메달 꿈이 좌절됐다.
이 매체는 트루소바를 쿼드러플 점프로 여자 피겨 스케이팅 무대를 완전히 바꾼 '쿼드의 여왕'이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기록은 기네스 북에도 반복적으로 올랐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4회전 점프를 5차례 뛰는 것이라고 했는데, 베이징 올림픽에서 그 꿈을 이뤘지만, 아쉽게도 금메달은 놓쳤다.
앞서 ISU는 지난 6월 30일 새 시즌(2026/2027 시즌)부터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들은 국기, 국가 등 나라를 상징하는 요소를 사용하지 않는 AIN 선수 자격으로 ISU 주관 국제대회 참가를 허용했다.
ISU는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안보상의 이유로 2022년 4월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하고, 두 나라가 개최할 예정이었던 국제대회 유치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했다. 2022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 러-벨라루스 선수들이 공식 출전한 마지막 대회였다.
ISU는 그러나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선 두 나라의 종목별 선수 1명씩만 AIN 자격으로 출전을 허용했으며, 페트로샨과 구메니크는 메달권에 들어가지 못했다.
러시아 피겨 선수들의 국제 무대 진출 허용 이후 관심을 끄는 것은 러시아 선수들의 랭킹이다.
2025/2026 시즌 러시아 선수권 대회를 기준으로 남녀 싱글 부문 1위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구메니크(남)와 페트로샨(여)이다. 그 뒤를 예브게니 세메넨코와 마크 콘드라튜크(남)와 알리사 드보글라조바와 마리아 자하로바(여)가 잇고 있다.
러시아 랭킹 1위인 페트로샨(19)은 2023년 3월 러시아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에서 발리예바(2위)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당시 발리예바는 도핑 징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최종 결정은 2024년 1월 29일)여서 러시아 국내대회에 출전했었다.
페트로샨은 이 대회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 트리플 러츠, 트리플 플립, 트리플 토루프를 깔끔하게 구사하며 85.62점, 프리 스케이팅에선 쿼드러플 플립에 성공한 뒤 쿼드러플 악셀과 트리플 악셀에서 실수하며 감점을 받았지만 169.39점으로 두 프로그램 합계 255.01점으로 우승했다. 그녀는 또 여자 싱글 선수 중 처음으로 쿼드러플 리트버거를 처음으로 두 차례 구사한 주인공으로 기록됐다.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이 금지된 기간(2022년 3월부터)을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세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은 러시아의 독무대였다.
러시아 매체 참피오나트는 2023년 9월 "지난 10년 동안 여자 싱글 부문에서 누구도 러시아를 따라올 수 없었다"며 최고 여자 피겨 선수들을 선정, 발표했다.
1위는 베이징동계올림픽 우승자인 안나 셰르바코바이고, 2위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자로 꼽혔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다. 당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와 김연아가 금과 은메달을 땄는데, 편파 판정 시비가 거셌다. 리프니츠카야는 올림픽이 끝난 뒤 은퇴했다.
3위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 40개, 은 21개, 동 18개를 딴 이리나 슬루츠카야다. 2006년 올림픽 동메달,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 2개(2002, 2005년), 유럽 선수권 대회 금메달 7개(1996, 1997, 2000, 2001, 2003, 2005, 2006년)를 안았다.
4위는 엘레나 보도레조바
5위는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6위는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7위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알리나 자기토바다. 평창 올림픽 금메달이 '깜짝 우승'은 아니었다는 점을 그녀는 올림픽 전후 많은 대회에서 입증했다. 올림픽 전에는 2017년 ISU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림픽 후에는 2019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 유럽 선수권 대회 은메달을 쥐었다.
8위는 '러시아 피겨 3인방'으로 꼽힌 알레나 코스토르나야로, 2019년 ISU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우승하고, 이듬해(2020)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9위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다. '피겨 예술의 여왕'으로 꼽히며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세계 선수권과 유럽 선수권 대회를 휩쓸었으며, 2015, 2016년에는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에서는 자기토바에게 밀려 은메달을 땄다.
10위는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