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2022년 2월) 개시 한달 뒤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우크라 평화 협상에서 합의된 협정 초안을 파기한 우크라이나가 이듬해(2023년) 초,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금지와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권 인정을 조건으로 개전 전의 경계선(국경)으로 군대를 물릴 수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평화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날 협상 중재에 나섰던 참가들을 인용, 이같이 전하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안드레이(안드리) 예르마크 행정실장은 전세의 우세를 믿고 이 제안을 거부했으며, 바이든 전 미 대통령 측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설득에 나서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젤렌스키-예르마크 우크라이나 수뇌부는 러시아군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반지'의 파괴로 갑자기 사라지는 '샤우론의 군대'가 될 것처럼 행동했다고 FT는 지적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푸틴-젤렌스키 대통령 사이의 중재자는 러시아 크렘린과 미 백악관 인맥을 보유한 미국 변호사 리처드 콘(옐친 대통령 행정부의 핵심 고문과 모스크바 소재 외국 변호사 협회 회장, 미-러 비즈니스 협의회이사 역임/편집자)과 러시아 투자의 '큰 손' 봅 포레스먼(영국 바클레이즈 금융 그룹의 러시아 투자및 사업 총괄 대표/편집자), 전 동독 슈타지 요원 출신으로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마티아스 바르니히(독-러 해저터널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전무이사 등 역임/편집자), 그리고 우크라이나 프로듀서 알렉산드르 로드냔스키로 구성된 비공식 국제그룹이었다. 특히 '큰 손' 프레스먼과 함께 일한 바 있는 바르니히는 푸틴 대통령과, 로드냔스키는 젤렌스키 대통령-예르마크 실장과 접촉했다. 콘은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러시아 담당관인 에릭 그린과 접촉했다.


이들이 제시한 평화안은 러-우크라가 기존의 주장에서 한 걸음씩 물러나는 것.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병력을 빼 2022년 2월 전쟁 이전에 통제했던 크림반도와 돈바스(도네츠크주·州와 루간스크주) 일부 지역으로 물러나고,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국경 회복 요구를 철회하고,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권 인정과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육상 통로'의 안전 보장을 확약하는 것이었다. 또 종전(휴전) 후 우크라이나는 나토로부터, 러시아는 미국과 별도의 안보 협정을 통해 안보 보장을 받기로 했다.
바르니히와 로드냔스키는 해당 문서를 갖고 모스크바와 키예프(키이우)로 가 양국 최고 책임자들과 논의했다.
이 팀이 다시 만난 2023년 2월 1일, 바르니히는 푸틴 대통령이 문서를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고 동그라미를 치고 메모를 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이전 국경으로의 철수에 동의했다고 알렸다. 러시아군의 철수는 2022년 3월 이스탄불 평화협정 초안에도 담겨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바르니히와의 대화에서 국경과 나토 문제가 타결된다면,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은 물론, 2022년 3월 이스탄불 회담에서 논의된 것과 유사한 다른 안보 체제 가입도 가능하고, 다른 어떤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아 2022년 가을부터 반격을 시작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시 크림반도 탈환 등 1991년 국경으로의 영토 회복을 외치고 있었다.

로드냔스키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예르마크 행정실장에게 평화안 초안조차 보게 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 국경 문제에 대해 러시아에게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로드냔스키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의 군대'가 갑자기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로드냔스키는 지적했다.
전쟁 발발 1주년을 열흘 앞둔 2023년 2월 18일, 콘과 포레스먼은 푸틴 대통령과 접촉한 바르니히를 다시 만났다. 이때 러시아에서 온 메시지는 지난번과는 완전히 달랐다.
푸틴 대통령은 이 협상 채널의 존재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대외담당 보좌관 등과 공유하고, 협상 중재자들의 신뢰성을 미국 당국에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마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이 협상 채널을 인정하지 않으며, 기존의 공식적인 소통 채널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협상은 곧바로 난관에 처했고, 2023년 중·후반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도 실패로 끝났다.
당시 협상 타결의 동력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지만, 설리번 미 안보보좌관은 비공식 협상 채널을 인정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설득에 나서지도 않았다고 FT는 지적했다.

콘과 포레스먼은 전쟁 발발 1주년인 2023년 2월 24일까지 전쟁을 종식시키는 합의에 도달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측의 강경한 태도로 평화 회복 전망은 그들의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고 FT는 보도했다.
이후 평화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요구 사항은 급격히 증가했다.
FT는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2023년 푸틴 대통령이 현재 제시하는 조건보다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를 확보할 수 있는 잠재적인 기회를 놓쳤다고 협상가들은 믿는다"고 전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