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Jan 2026

휴전 분위기에 가슴을 치는 젤렌스키 대통령, 러시아 공습에 서방이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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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서는 울화가 치밀만도 하다. 미국의 압박에 등 떠밀리듯 이미 30일간의 전면 휴전에 동의했는데, 적(러시아)은 미국과 휴전 협상을 계속하는 척하면서 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그러나 미국은 휴전 협상을 이유로 적의 공습을 막을 방공망 지원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 공습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우크라이나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저녁 대국민 영상/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저녁 대국민 영상/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러시아는 지난 4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향인 동남부 도시 '크리보이 로그'에, 6일에는 수도 키예프(키이우)에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6일 저녁 대국민 영상 연설을 통해 서방 측에 더 많은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의 제공을 요구했다. 그는 "우메로프 국방장관과 안드리 시비가 외무장관이 오는 11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람슈타인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이하 람슈타인 회의)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 제공 문제를 제기하고, 서방의 평화유지군 파견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생산 문제를 논의할 것을 지시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번 람슈타인 회의에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람슈타인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두 달 후인 2022년 4월 미국 주도로 구성된 장관급 회의체로, 거의 매달 회의를 열어  대(對)우크라 군사적 지원을 논의해 왔다.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에는 소극적인 미국을 대신해 영국과 프랑스가 람슈타인 회의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람슈타인 회의에 참석한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지난 1월 람슈타인 회의에 참석한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미국과 러시아간에 (30일간 휴전을 위한) '흑해 협정'이 체결되었더라면, 러시아는 흑해에서 칼리브르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중및 해상 휴전이 완전히 합의되지 않는 바람에 우크라이나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원망이다.

방공망이 헐거운 우크라이나는 공중및 해상 휴전이 절실하다. 유리 이그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은 6일 "러시아군이 키예프와 그 일대를 향해 탄도 미사일 6기를 발사했으나, 우리는 그중 단 1기만 요격했다"며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없으면 개량된 러시아 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주에만 우크라이나 도시와 마을에 러시아의 유도 에어(활공) 폭탄 1,460개 이상, 공격용 드론 670대 안팎, 미사일 30기 이상이 날아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특히 열받게 한 것은 4일의 크리보이 로그 공습이다. 당시 어린이 9명을 포함해 최소 18명이 숨지고 6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 저녁 영상 연설을 통해 크리보이 로그에 대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에 미국 등 서방 측이 침묵한 데 대해 분개했다. 그는 "눈을 감지 않고 진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면서 "러시아가 탄도 미사일로 어린이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위험하다"고 서방 측을 겨냥했다. 그의 이날 발언은 브리짓 브링크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가 공습에 대해 논평하면서 공격 주체(러시아)에 대한 비난보다 전쟁 종식을 촉구한 데 대한 불만으로 해석된다. "크리보이 로그 공습에 대한 그녀의 논평 수준은 비정상적으로 소극적이었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가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도 대사급 수준에서만 러시아의 크리보이 로그 공습을 비난했을 뿐, 대통령도, 총리도, 외무장관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워싱턴에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크리보이 로그 공습 다음날 밤, 예멘 후티반군에 대한 미군의 공격 영상을 공유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미-러 간에 휴전 이야기가 나오기 전만 해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크리보이 로그와 같은 비극, 예를 들면 2022년 봄의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이나 2023년 겨울 드네프르 주택가 공격에 대해 서방 지도자들이 러시아의 비인간적인 공격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크라마토르스크 사건 직후에는 존슨 영국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숄츠 독일 총리 등이 총대를 멨고, 드네프르 사건 이후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번 공격에 대해서는 최근 키예프를 방문한 베어보크 장관마저 침묵을 지켰다. 물론, 독일은 정권 교체기에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브링크 주우크라 미국대사/사진출처:엑스 @USAmbKyiv
브링크 주우크라 미국대사/사진출처:엑스 @USAmbKyiv

브링크 주우크라 미국 대사의 경우,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높은 편에 속했다. 2023년 여름 크라마토르스크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두 사람이 사망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도시, 마을, 주민들에 대한 뻔뻔스러운 공격을 계속하는 가운데 크라마토르스크에서 또다시 잔혹한 공격이 가해졌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對)우크라 정책 변화와 함께 브링크 대사의 발언도 달라졌다. 그녀는 이번 키예프 공습에 "러시아에 책임을 묻거나 공격을 뻔뻔스러운 것"이라고 질타하지 않았다. 

나토 역시 크리보이 로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끈하는 노림수는 뻔하다. 크리보이 로그 공습을 '전쟁을 끝내고 싶지 않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피해를 입은 크리보이 로그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역에 사흘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한 이유다.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전략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건이 전쟁 발발 한달 후에 전해진 키예프의 외곽 도시 '부차'의 학살 사건이다. 서방은 이 사건이후 키예프에 대한 지원을 급격히 늘렸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합의한 평화협정을 걷어찼다. 

하지만 서방 진영도 이제는 민간인 사망에 대한 반응이 점차 무뎌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매우 우려스러운 사태 진전이다. 민간인 희생이 더 이상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할 명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전 협상을 중재하는 미국이 굳이 러시아를 자극하고 싶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와 인터뷰하는 위트코프 미 특사/영상 캡처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와 인터뷰하는 위트코프 미 특사/영상 캡처

트럼프 미 행정부가 우크라이나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만난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 특사는 최근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가자지구와 같다"고 지적하며 "(러시아도) 자기 방어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쏘아대는 러시아를 같은 반열에 두는 듯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 군사 전문가는 "러시아의 공습에 대한 비난이나 반응이 워싱턴에서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현실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달라진 국제사회의 인식을 잘 알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공습으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계속 소리 높여 외치는데,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오는 것 같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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