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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종전(휴전)을 위한 미-러-우크라 3자 후속(2차) 평화협상을 전후해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지속하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부 지도층 인사가 '영토(도네츠크주 양보)와 평화(전쟁 종식)의 교환 원칙'에 공개적으로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평화를 위해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모스크바에 양보할 의향이 있는 우크라이나인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이 평화 협상에서 돈바스 이양을 끝까지 거부하는 이유는 나중에 반역자로 몰리는 것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또 돈바스 양보에 합의하는 순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제거될 것이라는 험한 발언도 나온다. 그가 영토 양보안과 평화 협정은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전쟁 종식을 위해 영토를 양보할 수도 있다는 발언이 점차 지지를 얻어가는 모양새다.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러시아군의 잇단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 정전과 난방 중단으로 초래된 극한 상황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쟁이 만 4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가 한계 상황에 도달한 것으로 보는 편이 적절한 듯하다.

영토 대신 평화를 얻자는 소리를 과감하게 낸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의 침략을 거세게 비난하며 서방 진영을 훑고 다닌 드미트리 쿨레바 전 외무장관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쿨레바 전 장관은 지난달(1월) 12일 우크라이나 프라우다와의 기자회견에서 "러-우크라 양국의 대립이 쉬 해소될 것 같지 않다"면서도 "(영토 양보를 포함한) 평화안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겁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양보한) 평화안이 의회가 아니라 국민투표에 회부되더라도,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통과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주유소와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이것이지만, 모든 적대행위가 멈추고, 그 대가로 강력한 군대, 재건을 위한 수십억 달러, 그리고 EU 회원국 자격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설득할 경우, 우리 사회는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바닥 민심을 인용해 젤렌스키 정권에게 영토와 평화의 교환 원칙을 과감하게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뒤이어 지난 2일에는 비탈리 김 니콜라예프(미콜라이우) 주지사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 만나 "우크라이나는 지쳐 있다"며 "땅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평화 협정의 체결"을 촉구했다. 김 주지사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승리란, 1991년 이후 우리의 국경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죽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모두가 이제 매우 지쳐 있다"며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승리란, 전쟁을 끝내고 안전한 미래를 보장해 우리 아이들이 침략 이전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키예프(키이우)에게는 시간이 없다. 영토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며,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김 주지사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믿고 있는 '러시아 정권의 붕괴' 시나리오에 대해 "러시아 경제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내 생각에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주지사는 앞서 지난달(1월) 중순에는 지역별로 전쟁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전선에 가까운 지역은 '전쟁 중단'을, 먼 지역(주로 우크라 서부)은 '전쟁 계속'을 주장한다. 이같은 차이는 전쟁에 의해 삶의 질이 어떻게 변했느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돈바스 지역) 주민들은 전선이 가까워지면 그동안 일궈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란해야 한다. 또 고향으로 돌아오더라도 이미 폐허가 된 상태다. 상대적으로 전쟁의 피해가 적은 서부 지역은 러시아의 침공을 격퇴하고 1991년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여론도 전쟁 종식 쪽으로 조심씩 기울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아부다비 평화 협상의 재개에 맞춰 우크라이나에서는 평화를 위해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에 넘겨주는 데 동의할 의향이 있는 국민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NYT는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확실한 안보 보장이 제공된다면, 전쟁에 지친 우크라이나인들이 영토 양보를 할 의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돈바스 주민 크리스티나 유리첸코는 NYT에 "(운영하는) 댄스 스튜디오에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라면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라고 말했다. NYT는 "크리스티나와 같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전쟁에 지친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식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NYT가 인용한 내용은 키예프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지난 1월 실시한 여론조사다.
지난 2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 돈바스 양보를 지지하는 응답자는 40%(적극 찬성 9%, 대체로 찬성 31%)에 달했다. 하지만 응답자의 52%는 여전히 이에 반대했다. 기권은 7%.

또 응답자의 20%만이 평화 협상에 의해, 앞으로 몇 주 안에, 또는 적어도 2026년 상반기 안에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65%는 필요한 만큼 전쟁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고, 88%는 러시아가 에너지 부문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에게 항복을 강요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번 조사는 1월 23~29일 전화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1,003명의 응답자가 참여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2025년) 9월에는 우크라이나 사회학연구그룹 '레이팅'의 대표는 우크라이나 주민들 사이에서 평화 회담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