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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서는 '나토(NATO)의 대리전'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모든 군사작전은 나토 측에서 수립돼 우크라이나군에 하달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미국 등 나토 측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방어를 위해 필요한 지원만 할 뿐, 전쟁 수행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전쟁을 하든, 평화협상을 하든, 오로지 우크라이나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사실일까?
'우크라이나전 3년째 전쟁 저널리즘'(이진희 지음, 2024년 10월 맑은 샘 발간)에 따르면 전쟁 2년 6개월여가 지난 시점에서 나토의 대리전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을 위해 대신 싸워준다"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보루" 등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 혹은 나토) 대리전'으로 정의했다.
개전 초기부터 서방 측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전(대리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개된 비밀'이었다고 이 책은 주장했다.

그리고 6개월여가 지났다. 이제는 우크라이나도, 서방 언론도 대놓고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모든 군사작전을 통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트럼프(미 대통령)발(發) 종전 움직임이 진실의 공개를 부추긴 것으로 여겨진다.
◇잘루즈니 전 총참모장의 미국 개입 인정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개전 초기 러시아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 우크라이나의 '국민 영웅'으로 등장한 발레리 잘루즈니 전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 현 주영대사)는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이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의 군사 작전 계획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개입을 폭로한 뉴욕 타임스(NYT) 보도를 확인하면서, "통제 작전본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유럽주둔 미군 사령부 본부에 있다가 2022년 4월 비스바덴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그곳(통제 작전본부)에서 작전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정보및 군사 장비 목록을 취합해 워싱턴과 유럽 각국으로 보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이 체제는 서방 동맹국들과 미래의 군사 작전을 수립하는데도 훌륭한 소통 메커니즘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이날 발언은 NYT가 지난달(3월) 30일 미국이 전쟁 발발 초기(2022년 봄)부터 우크라이나의 군사 작전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매우 깊숙히 간여했다는 특종 보도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튿날(9일)에는 잘루즈니 장군의 뒤를 이어 총참모장에 오른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장군이 현지 언론 '레브이 베레그'(Левый берег 왼쪽 강변, 좌안·左岸이라는 뜻)와의 인터뷰에서 NYT 기사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박하면서도 대체로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군 지도부가 맡은 역할은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11일자에 의해 밝혀졌다. 영국군 지도부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군 간에 의견 충돌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3년의 우크라이나 반격작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중재자로 나섰다는 것. 2023년 여름의 반격 작전은 러시아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로 끝났고, 워싱턴과 키예프(키이우) 간에는 갈등이 한껏 치솟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NYT, 더 타임스의 보도와 잘루즈니-시르스키 전현 총참모장의 발언 등으로 보면, 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 당시, 우크라이나는 일부 병력을 '바흐무트' 탈환에 투입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 측과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시르스키 총참모장은 투입 가능한 병력의 부족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흐무트 전선으로 병력을 뺀 것은, '기습 공격'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믿었다고 9일 주장했다. NYT는 "우크라이나군은 당초 12개 여단을 동원해 멜리토폴 방향으로 진격하기로 했으나, 미국에는 알리지 않고 갑자기 5개 여단을 바흐무트로 빼냈다"며 "이로 인한 우크라이나군의 전력 분산(결국 멜리토폴 공세에는 7개 여단 참여)에 미국은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르스키 총참모장은 이날 바흐무트 공격에 5개 여단이 투입됐다는 NYT 보도를 부인하면서 "2개 여단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했으먀, 5개 여단이 투입됐다면 바흐무트와 솔레다르를 모두 해방하고 러시아군의 보급로를 차단해 전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는 병력및 무기 부족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기습 공격으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면서 "그 곳의 적 방어선은 반격 주루트인 자포로제(자포리자) 멜리토폴 전선과는 달랐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회고했다.
◇ 2023년 우크라 반격작전 연기 놓고 미-우크라 충돌
반격 작전의 연기도 미국에게는 불만이었다.
NYT는 "(미국과 합의된) 반격 작전의 D데이는 원래 5월 1일이었다"면서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무기및 군사 장비의 제공이 늦어진다며 또다시 작전을 연기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는 방어를 강화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반격작전의 연기로 관계가 험악해진 미-우크라 사이에 영국군 지도부가 중재 역할을 맡았다"며 "영국은 미국 대신 우크라이나로 자주 날아가 양측의 감정을 달랬다"고 전했다. 당시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에게, 잘루즈니는 미국에 실망하면서 서로간의 감정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이때 영국군 지휘관들이 때로는 군복을 입고, 때로는 민간인 복장으로 우크라이나를 찾았다고 한다. 어느날 우크라이나에 장미빛(핑크색) 바지를 입고 나타난 영국의 롤리 워커 장군은 이후 '장미빛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영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스톰 섀도우' 장거리 미사일과 엔로(NLAW)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등을 제공하고, 전문가들을 파견해 이들 무기의 사용법을 도우고 있었다.
연기되는 반격작전을 채근한 것도 영국군 지휘관들이 대신 맡았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무기 추가 제공을 기다리며 반격작전을 3월에서 5~6월로 연기하자, 짐 호켄헐 영국 국방정보국장은 즉각 키릴 부다노프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 국장을 만나 반격작전의 세부 계획을 제시하면서 "러시아군은 강하지 않다.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군사력이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키예프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 사이에 러시아는 방어선을 3중, 4중으로 강화하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영국의 적극적인 중재 끝에 크리스토퍼 카볼리 유럽주둔 미군사령관이 2023년 8월 중순 토니 라다킨 영국군 참모총장과 함께 폴란드-우크라 국경 부근에서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과 만나 반격작전을 협의하고, 이후 군사작전 계획까지 수립했다고 더 타임스는 밝혔다.
미국은 또 2024년부터 자국산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인 '하이마스'(HIMARS)의 공격 목표 지정및 발사를 직접 통제했다고 NYT는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이 타격 목표를 직접 지정한 경우에도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우크라이나군에게 타격 좌표 등 목표물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관장한 조직은 '태스크포스 드래곤'이었다. 여기에는 러시아 본토 포격도 포함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정보 제공은 2022년 중반 남부 헤르손주(州) 주둔 러시아군 제58연합군 사령부를 겨냥한 포격에서, 2024년 9월 러시아 트베리주(州) 토로페츠 군용 창고에 대한 드론 공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 크림반도에 있는 러시아 흑해 함대 사령부 세바스토폴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해상 드론 공격은 미 CIA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크림대교 파괴를 위한 '달-우박 작전'
2024년 8월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를 동원한 크림대교 폭격에도 미국은 깊숙하게 간여했다.
NYT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 측의 요청에 크림대교 등 크림반도 내 러시아 인프라를 타격하는 '달-우박 작전'(Lunar Hail, 러시아어로는 Лунный град, 야밤에 우박이 내리듯 미사일을 퍼붓는 작전/편집자)을 수립했다.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로 크림대교의 취약 지점을 타격하고, 동시에 해군 무인 드론(수상 드론)으로 교각을 폭파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작전 준비 기간에 러시아는 크림대교의 방어 시스템을 대폭 강화했고, 작전은 일부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알렉세이 네이즈파파 우크라이나 해군 참모총장(중장)이 2024년 3월 우크라이나가 크림대교에 대한 세 번째 공격을 준비 중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 작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에이태큼스 미사일 공격을 고집했다. 유럽 주둔 나토군 최고위 지휘관들인 크리스토퍼 카볼리 장군과 안토니오 아구토 장군은 미사일 공격만으로는 다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반대하면서 작전을 취소하거나 보완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끝내 나토 측의 요구를 거부하고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그 결과, 크림대교는 다리 위에 몇 개의 구멍만 냈을 뿐 멀쩡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를 신속하게 수리한 뒤 통행을 재개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NYT에 "때로는 우리가 옳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에는 공격 날짜가 명시되지 않았다. 스트라나.ua는 "이 기사는 2024년 8월 16일의 미사일 공격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러시아 국방부는 크림대교를 향해 날아온 에이태큼스 미사일 12발을 격추했다고 주장했으나 우크라이나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썼다.
◇잘루즈니와 밀리 미 합참의장 간의 갈등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의 일방적인 군사작전에 속을 태웠을 뿐, 뽀족한 대응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여름 러시아 쿠르스크주(州)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공격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이 작전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해 우크라이나가 신뢰를 깬 것으로 여겼지만, 쿠르스크 공격을 위한 정보 지원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측은 쿠르스크 공격 정보가 러시아측으로 새나갈까봐 미국 측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미국에 알리지 않고 러시아 순양함 '모스크바'를 공격했다. 모스크바함의 정확한 좌표를 찍어준 것도 미국이고, 폭파 무기도 미국산 미사일이었는데, 우크라이나가 사전에 통보하지 않고 단독으로 공격을 감행하자, 미국은 개탄했다고 한다.

미국이 더욱 답답해한 것은 잘루즈니와 그의 미국 측 파트너인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과의 갈등이다. NYT는 "밀리 전 의장은 가끔 우크라이나의 무기 제공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화가 난 잘루즈니 총참모장은 전화를 확 끊어버리고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과의 소통을 이어가기 위해 대(對)우크라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야 했다. 예컨대 밀리 의장의 보좌관이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사령관인 데이비드 볼드윈 소장에게 전화를 걸고, 볼드윈은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과 고향 친구인 로스앤젤레스의 비행선 제작자인 이고르 파스테르나크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이에 레즈니코프 장관은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찾아 "밀리 의장에게 화가 난 건 알지만, 그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반 협박조로 설득에 나섰다는 것이다.
◇잘루즈니-젤렌스키 불화설의 진상은
주목을 끄는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전 총참모장 간의 갈등, 잘루즈니-시르스키 전현 총참모장간의 불화설에 관한 내용이다.
NYT에 따르면 잘루즈니 총참모장과 그의 후임 시르스키 장군과의 관계는 누가 봐도 적대적이었다. 잘루즈니는 러시아 출신인 시르스키를 '러시아 장군'이라고 불렀다. 우크라이나어를 잘 몰라 회의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잘루즈니-시르스키 간의 군사작전 갈등에 시르스키 편을 들었다. 잘루즈니가 차기 대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었으니, 대통령실의 견제는 당연했다.
문제는 젤렌스키-잘루즈니-시르스키 3인 간의 불화가 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이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로 꼽혔다는 사실이다.
NYT는 "2023년 중반(6월),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개시했을 때, (나토의 통제본부가 있던) 비스바덴에서 수립된 작전이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 게임의 희생양이 되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루즈니와 대립하는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의 편을 들어 바흐무트 탈환작전의 병행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바흐무트'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 용으로 병력 2개 여단 혹은 5개 여단이 빠져나갔고, 우크라이나의 반격 전체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반격 작전이 무위로 돌아간 뒤 2023년 가을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헤르손주(州)의 드레프르강 동쪽(동안·東岸) 크린키 지역으로 상륙작전을 개시하자, 미국은 즉각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작전'으로 판단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 상륙작전은 크린키에 교두보를 확보한 우크라이나군이 몇달 뒤 러시아군의 집중 포격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철수함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우크라이나군이 기세를 올린 헤르손 탈환 뒷이야기

전쟁 발발 첫해(2022년) 9월, 우크라이나군이 1차 반격을 시작했다. 남부 헤르손주에서도 주도인 헤르손시(市) 탈환 작전이 수립됐다. NYT는 "헤르손시 군사작전은 원래 9월 초로 예정됐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8월 말로 앞당겨졌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앞두고 헤르손 탈환이라는 전과를 올린 뒤 이를 국제사회에 널리 홍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방 측은 실제로 이 소식에 환호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시 탈환 이후 퇴각하는 러시아군을 더 이상 뒤쫓지 않았다. 미국은 드네프르 강을 건너 공세를 더욱 강화하도록 키예프 측에 압력을 가했으나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은 역습을 두려워하며 신중하게 대응했다. 화가 난 미국과 영국은 헤르손 탈환작전을 지휘한 안드리 코발추크 장군의 해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나중에 러시아군을 추격해 드네프르강의 동쪽으로 공격을 계속하기에는 군사 전력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미국(나토)의 이같은 군사작전 개입은 2022년 4월 독일 비스바덴에 있는 미국의 유럽·아프리카 주둔군 사령부에서 체결된 미-우크라 군사 정보 제공에 관한 협정에 의해 가능했다.
NYT는 지난 3월 30일 "정보와 전략, 작전 계획및 기술등에 관한 파트너십을 담은 미-우크라 협정은 미국과 동맹국 소수에게만 알려졌다"며 "미국은 이 협정으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고 광범위하게 군사 작전에 개입했으며,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의 중추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NYT는 또 미국이 2023년부터 우크라이나 당국에 동원 연령을 18세로 낮출 것을 요구해 왔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정보기관 협력은 훨씬 이전부터 이뤄졌다. 미국의 NYT와 워싱턴 포스트(WP), ABC 방송은 미 CIA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2014년부터 비밀리에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