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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크라이나전쟁의 종전 시나리오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부활절(20일) 휴전→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5월 9일) 푸틴-트럼프 미러 정상회담이 무산되는 분위기다. 미국이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협상을 진행하는 '셔틀 외교'가 당초 예상보다 거센 저항에 부딫친 탓으로 보인다. 미-러-우크라 3자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당근과 채찍' 정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12일 미국에 대한 러시아의 적대적 활동을 제재하는 행정명령 14024조를 1년 연장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결렬될 때가 온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겨냥해) 말한 것을 지키거나 아니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put up or shut up).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다음날(13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수미주(州) 미사일 공격과 이에 따른 다수의 민간인 사상에 대해 "실수한 것"이라며 유럽의 대러 비판에 동참하지 않았다. 또 "러시아에 대해 추가로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며 예민한 질문을 피해갔다.
◇헷갈리는 미국 주요 인사들의 발언과 행동
미국은 러시아가 소위 '미국식 휴전'에 동의하기 전까지는 제재 압박을 철회할 뜻이 없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부과한 행정명령 14024조를 연장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미국은 "러시아 정부의 특정한 악의적 활동은 <중략> 미국의 국가 안보, 외교 정책, 경제에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며 행정명령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개시하기 전인 2021년 4월 15일 도입된 이 행정명령은 사이버 공격과 미국 및 다른 국가의 선거 개입, 미국 시민에 대한 위해(危害), 금융 및 기타 제재 위반 활동에 연루될 수 있는 러시아 개인 및 기관에 제재를 가한 것으로, 러시아 자산 동결과 제재 확대, 러시아 군수산업 단지와 협력하는 외국 금융기관에 대한 '세컨더리 제재'(제 3자 제재)로 이어진 기본 문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말에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2014년, 2018년, 2022년 도입한 대(對)러시아 제재를 1년 연장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가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제재를 받는 나라가 되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뒤이어 캐롤라인 래빗 백악관 대변인은 3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이 에너지 대금을 취급하는 러시아 주요 은행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한 미 재무부의 조치를 연장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조치로 러시아 스베르방크와 VTB, 알파방크 등은 일시적이나마 석유와 가스 등 러시아 에너지 거래 대금을 중재할 수 있었다.
미국의 이같은 반(反)러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도 전임 정부와 달라진 게 없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크렘린도 이에 불만을 표시하며 제재 해제를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더욱 활발해진 미-러간 각급 소통
주목되는 것은 그 와중에도 잇따른 미-러 간의 '깜짝 소통'들이다.
지난 10일 튀르키예(터키)의 이스탄불에서는 미 국무부와 러시아 외무부 간에 외교 관계 정상화에 관한 회의가 열렸다. 외교관들의 비자 발급과 압류된 자산의 해제, 직항편 재개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11일) 스티븐 위트코프 미 중동 특사가 예고없이 러시아로 날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크렘린은 면담후 웹사이트에 올린 보도자료에서 "이번 만남의 주제는 우크라이나 (평화) 합의의 여러 측면이었다"고 썼다. 면담에는 키릴 드미트리예프 크렘린 특별대표와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이 배석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면담후 바로 러시아를 떠났고, 드미트리예프는 "회담이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위트코프가 푸틴 대통을 만난 것은 2월, 3월에 이어 3번째였다.
그는 왜 갑자기 러시아로 날아갔을까?
미국의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에서 진전이 없는 것에 대해 실망했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악시오스에 "4월 말까지 휴전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이스탄불 회담과 11일 위트코프 특사의 급박한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사이에는 '실망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캐롤라인 래빗 백악관 대변인은 "위트코프 특사의 전격적인 러시아 방문을 모스크바와 키예프(키이우) 사이의 군사적 갈등에 대한 휴전과 최종적인 해결을 향한 또 다른 단계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대통령은 이 분쟁의 양측 모두에게 지속적인 좌절감을 표명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11일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서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러시아는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전 협상에 임하는 러시아의 태도에 대해 미 국무부도 여러 차례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크렘린이 키예프(키이우)와의 군사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지연할 경우,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겠다"며 "몇달이 아니라 몇주 정도 기다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 법안이 미국 상원에 제출되기도 했다.
◇ 이달내 휴전을 향해 미국이 움직인다
스트라나.ua는 "미국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종합해 볼때 트럼프 대통령은 4월 말이나 5월 초까지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강력한 압력을 가한 끝에 지난 3월 우크라이나로부터 휴전 수락을 얻어냈다. 남은 것은 전면 휴전에 대한 러시아의 동의다.
미러 협상은 이달 초(2일) 푸틴 대통령(크렘린)의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가 워싱턴으로 날아가면서 본격화한 느낌이다. 미국은 그의 방문을 위해 드미트리예프 특사에 대한 기존 제재를 일시 해제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후 미국을 방문한 러시아 최고위 인사다.

워싱턴에서 그를 영접한 이는 위트코프 미 중동 특사다. 그는 드미트리예프와 회담한 뒤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 협정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과 자포로제(자포리자), 헤르손 등 러시아 점령 4개 주에 대한 러시아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건의했다. 로이터 통신은 그가 푸틴 대통령 특사와 만찬한 지 채 48시간도 되지 않아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만나 이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대통령을 만난 키스 켈로그 미 우크라이나 특사는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 지역에 대한 일부 조건을 협상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이 지역을 러시아에 완전히 넘겨주는데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편에 선 위트코프 특사와 우크라이나 편에 선 켈로그 특사 간에 이견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놀라운 것은 그 이후에 나온 켈로그 특사의 영국 더 타임스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베를린처럼 우크라이나를 분할하는 방법도 있다"며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서쪽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유지군(영어 표현으로는 reassurance force)이, 동쪽에는 러시아군이 주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두 세력 사이에는 비무장지대(DMZ)를 두자는 해법도 내놨다. 드니프르 강은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거쳐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가르며 흑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켈로그 특사는 그러나 더 타임스가 11일 자신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한 뒤 엑스를 통해 "발언이 잘못 전달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휴전 이후 '안정화 병력'(resiliency force, 즉 평화유지군)의 주둔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며 "분할 이야기는 (미군이 없는 상태에서) 주둔군의 통제 책임 구역을 언급한 것이지, 우크라이나의 영토 분할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고 적었다.
워싱턴과 런던발(發) 돌풍이 언론을 휩쓸고 지나간 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3일 '미국과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외무부, 정보기관, 드미트리예프 특사 등 여러 수준에서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워낙 바닥이어서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불만스런 젤렌스키과 기대감 표시한 트럼프 대통령
다각도의 미-러 대화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심기는 불편하다. 그는 13일(시차에 따라 14일) 미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평화협상) 접근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이 러-우크라 관계에서 중립을 유지하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러시아의 논리에 계속 휘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가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의 종전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현실적으로 빼앗긴 영토를 탈환할 힘이 없으므로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협상의 불가피함을 인정하기도 했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미CBS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60분'과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프로그램의 허가 취소를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이튿날(14일) 미-러 협상 분위기는 또한번 출렁거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전쟁을 막지 못한 바이든 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을 싸잡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동시에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수미 공격을 실수라고 감싼 뒤,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며 비난 일색의 유럽과는 결이 다른 태도를 취했다.
이후 백악관 브리핑에서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계속 미사일을 달라고 한다"며 "전쟁을 시작하려면 이길 수 있는지 알아야 하고, 자신보다 20배나 더 큰 상대(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때는 더욱 그렇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매우 좋은 제안'이 곧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기대를 뒷받침하는 내용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고 온 위트코프 특사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상호 '이해'에 도달함에 따라 평화 협정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어떤 거래가 진행 중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5시간에 걸친 회담이 끝날 무렵, 우리는 마침내 합의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요구는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영구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평화 협정은 러시아 점령 5개 지역(크림반도, 도네츠크, 루긴스크, 자포로제, 헤르손주/편집자)과 관련이 있지만, 전후 역내 안보 문제와 나토(NATO)의 제 5조 등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러시아와의 양자 관계를 재편하고, 진정한 역내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전날 "러시아와 미국이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의 주요 내용에 대해 아직 합의하지 않았다"고 밝혀 낙관론을 펴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위트코프 특사의 인터뷰 내용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발끈했다. 그는 "위트코프 특사가 자신의 권한 밖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러시아 점령 영토의 양도는 우리에게 '레드 라인'"이라고 강조했다.
부활절까지는 이제 며칠, 이달 말까지는 보름 정도 남았다. 그 사이에 미-러 간에 획기적인 대화 진전에 있을 것인지, 전면 휴전이 진짜 성사될 것인지 궁금하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미국 고위 인사들의 대러 협박도 '휴전'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고육지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