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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크라-유럽 간의 '파리 3자 회동'에 이은 '런던 협상'을 결렬시킨 당사자로 지목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6일 바티칸에서 열린 프란체스코 교황 장례식을 계기로 성사된 '조문 외교'를 통해 트럼프 미 대통령 주도의 '평화의 길'로 다시 들어설지 주목을 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활절 휴전후 재개된 러시아군의 잇단 대규모 공습에 남아프리아공화국 방문 일정을 축소하면서 바티칸 조문도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아왔으나,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조문 외교'를 펼쳤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 로마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연합(EU),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정상들과 양자 회담을 했다.
가장 관심이 쏠린 것은, 지난 2월 '백악관 충돌'이후 2개월 만에 다시 만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단촐한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장례 미사 참석전 약 15분간 의자 2개만 놓고 단독으로 만났다.
회담 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엑스(X, 옛트위트)를 통해 "완전한 휴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공통된 결과를 얻는다면 역사적인 회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는 "민감한 문제들이 논의돼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두 정상은 짧은(?) 만남 후 서둘러 다른 정상들과 함께 장례미사가 진행되는 성당 앞 광장에 나와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짧은 만남, 긴 여운
영국 스카이뉴스 등 일부 언론은 두 정상이 장례 미사후 다시 만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으나,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미사가 끝난 뒤 곧바로 바티칸을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촉박한 다음 일정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후속 회담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게 우크라이나 매체인 rbc-우크라이나의 전언이다. 한 소식통은 rbc-우크라이나에 "그들은 이미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이 배석자 없이 단독으로 만나는 사이,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실장은 수지 와일스 미 백악관 비서실장과 마이크 왈츠 미 국가 안보 보좌관과 회동했다. 예르마크 실장은 SNS에 "와일스 실장과 왈츠 보좌관을 만나 기뻤다"며 "건설적인 노력과 끊임없는 소통, 양국 간 파트너십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썼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티브 정 미 백악관 홍보국장은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에 앞서 짧은 회동을 갖고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회담의 세부 내용은 나중에 발표될 것이라고만 했다.
짧은 만남에다 양측의 추상적인 발표 등으로 두 정상의 논의 내용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회동 후 두 정상의 행보로 단편적이나마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 회동후 러시아 공습 비난 메시지 띄운 트럼프 대통령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후 자신의 소셜 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글을 올렸다.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 재개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며칠간 (우크라이나의) 민간 지역과 도시, 마을에 미사일을 쏠 이유가 없었다. 아마도 그는 전쟁을 중단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은행 관련 제재) 또는 '2차 제재'(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자에 대해 미국과의 교역과 금융거래 등을 금지하는 제재/편집자)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에 따른 민간인 피해를 공유하며 공습 중단 압력을 촉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러시아의 공습 재개는 푸틴 대통령이 발표한 '부활절 휴전'이 끝났다는 점에서 이상할 게 별로 없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회담에서 에너지 관련 인프라 공습 중단에만 합의했다는 입장이다. 흑해상의 항해 자유화를 위한 '흑해 협정'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수도 키예프(키이우)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단행된 뒤 "24일 밤의 공습은 필요하지 않으며, 매우 불행한 사태"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멈춰!"라고 촉구한 바 있다.
러시아 국방부의 반박도 곧바로 잇따랐다.
"우리 군은 우크라이나의 항공, 로켓 및 우주, 기계 공학 및 기갑 산업, 로켓 연료 및 화약 생산 기업에 대해 고정밀 장거리 공중, 지상 및 해상 기반 무기와 드론으로 공격했다. 부활절 휴전이 종료됐으며, 우리 군은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푸틴 대통령이 '공습을 중단하라'는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남뒤 '공습 중단' SNS 글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러시아 협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3월 "러-우크라가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지만, "모스크바가 시간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에 심리적 (협상) 마감일이 정해져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우크라이나 휴전이 러시아 탓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러시아산 석유 구매국에 2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불만 표시
그의 SNS는 젤렌스키 대통령도 겨냥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점령 영토의 우크라이나 반환을 주장한' NYT 기사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크림반도는 이미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에 러시아에 합병 완료됐다"며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수복 열망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빼앗긴 영토를 러시아 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등 우크라이나 외무부가 제시한 평화협상의 3가지 '데드라인'를 계속 무시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미국은 이미 '파리 3자회동'과 후속 '런던 협상'(예르마크 실장의 대표단과 키스 켈로그 미 우크라이나 특사 참석/편집자)에서 러시아의 점령 영토 인정과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금지 등을 골자로 한 평화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평화협상 '데드라인'에서 크림반도 등 영토 문제는 물론이고 △서방의 군사 지원을 포함한 우크라이나의 군사력과 방위산업 (증강)에 대한 제한(러시아가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의 중립화/편집자) △우크라이나의 동맹(나토) 및 연합(EU) 가입 권한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문맥으로만 보면 미국의 평화안에 정면으로 맞선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우크라 메시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바티칸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티칸 만남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고,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 또다른 전쟁 발발을 막을 신뢰 가능하며 항구적인 평화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에 평화를 희구하는 우크라이나 사회에 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미-우크라 중 어느 한쪽에서도 평화안 절충에서 상대에게 양보한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 중단 시나리오가 나돈다.
◇ 순서가 바뀐 미국의 종전 시나리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 전에 미국이 찾아낸 제 3의 길은 러-우크라 간 직접 협상이다. 큰 틀은 제시했으니, 세부적인 내용은 전쟁 당사자까리 서로 협의하고 합의하라는 의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로마에 도착한 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러-우크라는 대부분의 쟁점에서 합의에 매우 근접해 있다"며 "이제 양측은 최고위 수준에서 만나 (협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모스크바에 온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 특사도 푸틴 대통령과 만나 러-우크라 직접 협상 가능성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 담당 보좌관은 "3시간에 걸친 푸틴-위트코프 간 회담에서는 러-우크라 대표단 간 직접 협상의 재개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양국의 입장이 더욱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이튿날(26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전제 조건 없이 우크라이나와 (직접)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워싱턴의 러-우크라 직접 협상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양자 회담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미 백악관은 그동안 휴전→(우크라) 선거 실시→당선자의 평화 협상 마무리라는 종전 시나리오를 갖고 러-우크라 간 '셔틀 외교'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시나리오에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국가들이 강하게 저항하면서 미국이 보다 현실적인 노선으로 수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젤렌스키 정권의 합법성(지난해 5월로 공식 임기는 끝났다/편집자)에 의문을 제기하는 러시아 측을 설득해 선거 실시 전에라도 우크라이나 측과 직접 협상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러시아 측의 반대로 만만찮았겠지만, 위트코프 특사가 푸틴 대통령과 4차례 협상하면서 러시아를 설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 러시아는 크림반도 등 점령 영토의 인정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미국의 대러 제재 해제 등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러-우크라 직접 대화가 성사되려면 우크라이나가 먼저 푸틴 정권과 협상을 금지한 법령을 취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티칸 회동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바티칸으로 떠나기 전에 우크라이나를 향해 '광물협정'에 대한 조속한 서명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희토류 협정에 대한 최종 문서(광물협정) 서명이 우크라이나 측에 의해 최소한 3주나 늦어졌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서명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우크라 간에 체결된 '광물협정 의정서'에는 최종 서명 시한이 26일까지로 돼 있다.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는 현재 워싱턴을 방문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워싱턴 복귀 후 바로 서명될지 궁금하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