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Jan 2026

(추적)파병 북한군 부상병들이 '치료받는' 모스크바 군 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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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러시아 쿠르스크주(州) 파병 이후 국내 언론에는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사진·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북한 전문 해외매체에서 나왔으나, 어느 순간부터 우크라이나 당국(대통령과 정보기관, 군특수부대 등)이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공개한 자료들이 주를 이뤘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자국에 대한 무기 판매 등 한국 정부의 정책 전환을 노리고, 국내 언론을 겨냥해 북한군 관련 사진·영상을 뿌렸다고 본다. 모든 언론이 그 자료를 그대로 받아썼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뿌린 파병 북한군에 대한 자료들/텔레그램 캡처 
우크라이나 당국이 뿌린 파병 북한군에 대한 자료들/텔레그램 캡처 

 

 
전투 현장에서 우크라측에 포착된 북한군 병사들/영상 캡처
전투 현장에서 우크라측에 포착된 북한군 병사들/영상 캡처
전투 장비와 휴대 물품을 배급받는 북한군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전투 장비와 휴대 물품을 배급받는 북한군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모스크바와 평양이 지난달 북한군의 파병을 인정한 뒤에는 러시아 쪽에서 공식 확인 영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프로파간다(선전)용이다.

공개 의도가 분명한 사진·영상들을 빼고도 순수하게 기사용으로 나온 사진·영상도 있다. 남북한과 이해관계가 별로 없는 동유럽 불가리아의 인터넷 매체 'Faktibg.com'이 처음 보도한 러시아 고려인 합창단 '조선'의 북한군 위문 공연이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6일 파리 정철환 특파원 이름으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중상자가 모스크바 외곽의 대형 군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는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파병 북한군을 병원에서 봤다는 증언과 영상이 나온 적은 있지만, 정확히 어느 병원에서 몇 명이 어떻게 치료받고 있는지 상세한 내용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필자도 잘 아는 정 특파원은 (취재) 능력을 인정받아 조선일보로 스카웃된 기자다. 또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 병사 2명을 언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인터뷰한 기자다. 당시, 그의 취재 네트워크도 대단하겠지만, 누군가의 특별한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봤다. 물론,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이다.

이번 북한군 치료 병원 기사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 기사는 지난달(4월) 27일 불가리아 매체 'Faktibg.com'에서 처음 나왔다. 한 블로거가 엑스(X, 옛 트위트)에도 올렸다. 같은 날짜인데, 누가 먼저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6일자 조선일보 기사/캡처
6일자 조선일보 기사/캡처
불가리아 매체 'Faktibg.com'의 4월 27일자 기사/웹페이지 캡처
불가리아 매체 'Faktibg.com'의 4월 27일자 기사/웹페이지 캡처
서울경제 4월 29일자 기사/캡처
서울경제 4월 29일자 기사/캡처

국내에서는 서울경제가 지난달 29일 외신을 번역하는 형식으로 처음 기사를 썼다. 기사 리드(시작)는 "불가리아 매체 Faktibg에서 파병된 북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열린 위문 공연 영상을 보도했다"로 잡았다.

이어 "Faktibg 보도에 따르면 쿠르스크 지역 전쟁에 참여한 북한 군인 앞에서 러시아 합창단이 공연을 열었다. 올해 2월과 3월 모스크바 인근 병원에서 합창단은 북한군을 위한 공연을 두 차례 진행했다. Faktibg는 해당 영상이 올해 들어 열린 세 번째 공연이라고 밝히며 '깊은 감사와 존경의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공연단이 음악회를 열었고, 이 행사는 북한과 러시아 양국의 우정과 역사적 기억을 기념하는 진정한 행사가 되었다'고 보도했다"고 썼다. 

Faktibg.com에는 모스크바 합창단 '조선'(Московския хор „Чосон“)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지만, 서울경제는 이를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듯, 생략했다.  

4월 27일에 엑스(X)에 올라온 북한군 위문 공연/캡처
4월 27일에 엑스(X)에 올라온 북한군 위문 공연/캡처
위문 공연 기사를 엑스에 올린 계정 소개. 구글 번역판/캡처
위문 공연 기사를 엑스에 올린 계정 소개. 구글 번역판/캡처

조선일보는 익명을 요구한 한 유럽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사실상 '같은 기사'를 좀 다르게 접근했다. "모스크바 동부 쿠바브나시(市)에 위치한 러시아 국방부 산하 ‘중앙 군 임상 병원 부르덴코 제3분원’에서 파병 북한군 중상자가 치료받아 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썼는데, 누군가가 Faktibg.com 기사와 사진·영상을 분석한 결과를 구체적으로 알려준 게 아닐까 싶다. 게재한 사진과 영상은 '외부 제공'이라고 했다.

여기서 누군가와 인용한 '한 유럽 정보기관 관계자'가 같은 사람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이 관계자는 “우크라군 감청 정보를 통해 이 병원이 북한군을 위해 운영 중인 사실을 파악했고, 최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위문 공연 동영상을 입수해 (이곳이 북한군 병원임을) 확인했다”고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위문공연 동영상이 서울경제가 인용 보도한 불가리아 매체(Faktibg.com)에서 처음 공개된 것과 동일하다. 한 유럽 정보기관 관계자는 불가리아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조선일보는 또 "30초 분량의 이 동영상에는 최소 67명의 파병 북한군이 등장한다. 이 중 57명은 환자복을, 10명은 전투복과 티셔츠 등을 입었다(중략) 부상이 심각하지 않거나, 상당히 회복된 이들로 보인다"며 Faktibg.com보다는 훨씬 자세하게 썼다. 장난삼아 사진(영상)에 나온 환자복 차림과 전투복 차림의 북한군 병사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면 대충 그 정도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위문 공연을 한 것은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이뤄진 ‘조선 코리아 합창단’이다. 정보기관 측은 “공연한 ‘조선 코리아 합창단’을 남·북한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행사에 등장하는 단체”라고 했다. 2023년 8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 및 한국문화원, 한국관광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이 공동 주최한 K필름 페스티벌 개막식에도 나왔다고 한다. 모스크바 현지 공관에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고려인 합창단 '조선'이라는 이야기다. 

공연 장소를 러시아 국방부 산하 ‘중앙 군 임상 병원 부르덴코 제3분원’으로 특정한 것은 열심히 취재한 결과로 평가된다. 영상을 보고 누가 그 곳이라고 확인해 줬을까? 떠오르는 곳은 딱 한 군데다. 그 한 군데가 바로 이런 일을 업으로 하는 조직이다. 힌트가 되는 것은 무대 위에 걸린 문구 ‘강한 함대, 강한 러시아’(Могучий Флот, Могучая Россия)다. 러시아 해군 병원이다. 

부르덴코 제3분원에 대해서는 러시아 포탈 사이트 얀덱스를 검색하면 자세하게 나온다. 해군 병원에서 전환된 군 종합병원, 주소, 지도상 위치, 병상 규모, 의료진 면면및 현재 운영 방식 등등.

학술원 회원 N N 부르덴코 이름을 딴 국립 군종합 병원 현판. 줄이면 부르덴코 군종합병원이다/사진출처:agat-a.ru
학술원 회원 N N 부르덴코 이름을 딴 국립 군종합 병원 현판. 줄이면 부르덴코 군종합병원이다/사진출처:agat-a.ru
위키피디아에 나온 러시아 해군병원 시절의 부르덴코 종합병원 모습/위키피디아 캡처
위키피디아에 나온 러시아 해군병원 시절의 부르덴코 종합병원 모습/위키피디아 캡처

조선일보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1만5000여 명을 파병했다. 이 중 사상자가 4700명 이상으로 전체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부상자 중 약 80%는 쿠르스크 전선 후방의 의료 시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큰 수술이 필요한 경우(약 15%)가 모스크바의 대형 군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북한군에 고급 의료 시설을 우선 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군이 자국군보다 월등히 많은 희생자를 내는 데 대한 보상”이라고 했다.

이쯤되면 취재처가 어딘지 대충 짐작이 간다. 누구의 도움을 받았건, 정 특파원은 북한군 포로 인터뷰에 이어 또 한 건을 한 것 같다.

굳이 덧붙이자면, 러시아군 부상병들도 북한의 고급 휴양소에서 재활 치료겸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알렉산드라 마체고라 주평양 러시아 대사가 지난 2월 러시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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