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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관심을 모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의 15일 알래스카 정상회담은 3시간 만에 끝났다. 당초에는 1대1 회담에 이은 확대 정상회담, (업무) 오찬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회담 시작 전 3대3(푸틴 대통령 라브로프 외무장관 우샤코프 보좌관 대 트럼프 대통령 루비오 국무장관 위트코프 특사)회담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확대 정상회담과 오찬은 취소된 채 공동 기자회견으로 이어졌다. 회견이 끝난 뒤 러시아 대표단은 알래스카를 떠났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공동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도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주요 언론들은 조심스러웠다. 이번 회담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없었고, 최소한의 휴전(공중 휴전/편집자)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팩트만 주로 전했다.
그렇다면 이번 회담을 실패한 것일까?
회담이 끝난 뒤 두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일체 받지 않은 채 준비한 발언만 하고 10분 만에 회견을 끝냈다. 두 정상이 계획된 (업무) 오찬을 취소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1기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을 기억한다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2019년 2월 27,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김정은 2차 회담은 이틀째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찬을 취소하고 숙소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서둘러 베트남을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도 그럴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는 회담 전날(14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회담이 잘 되지 않으면, 빨리 끝내고 집(워싱턴)으로 갈 것"이라며 "그 가능성(회담 실패)은 25%로, (그럴 경우) 공동 기자회견이 없을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이날 3대3 회담은 3시간 가량 걸렸는데, 미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앞선 6차례 푸틴-트럼프 정상회담중 가장 긴 양자 회담이었다고 한다.
공동 기자회견은 내용보다는 형식 혹은 의전에만 신경을 쓴 흔적이 두드러졌다. 두 정상은 회담을 "생산적"(트럼프 대통령) "유익한"(푸틴 대통령)이라고 불렀지만, 알맹이는 거의 없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 초반부터 "완전한 상호 이해를 찾지 못했다" "많은 것들에 대해 합의하고 길은 닦았지만, 아직은 최종 타결 전"이라고 말했다. 그가 자신이 일군 성과를 가능한 한 부풀려 발표하는 평소의 회견 분위기로 볼 때, 결과에 실망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했다.


꼭 그렇게 볼 수만은 또 없는 게, 이어지는 설명들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에 "진전이 없으며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기자회견에서는 "좀 이따 나토(NATO)와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사람에 전화할 것"이라며 "제일 먼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해 오늘 회담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가 합의한 여러 지점이 있는데, 합의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도 합의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푸틴 대통령을 향해 "당신과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해 2차 협상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본격적인 협상(혹은 합의)을 위한 워밍업(warming-up) 혹은 길닦이 정도로 보는 게 적절하다.
rbc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회담 결과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은 채, "오늘 대화를 통해 우리는 합의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 있게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푸틴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가 도달한 상호 이해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향해 "건설적인 자세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진전을 방해하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합의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공동 기자회견에서의 모호한 발언들은 이후 트럼트 대통령의 폭스 뉴스 인터뷰와 그의 전화를 받은 우크라이나, 유럽쪽 반응으로 보다 더 분명해졌다. 미-러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전 폭스 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합의 내용을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승인받는 단계가 남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유럽 국가들도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공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넘어갔다"며 "푸틴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향해 '새로운 진전을 방해하지 말기'를 촉구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어떤 합의에 도달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확연히 달라진 점은 분명히 하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나는 휴전을 제안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동의했으며, 이제는 푸틴 대통령도 동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러시아에 가장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폭스 뉴스와의 회견에서 "현재로서는 러시아와 그 무역 상대국에 새로운 제재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회담이매우 원활하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또 "러시아는 강력한 핵 강국이며, 미국이 러시아와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도 했다.
그랗게 러시아에 최후통첩까지 발령했던 휴전 요구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SNS인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현재 필요한 것이 일시적인 휴전이 아니라 포괄적인 평화 조약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지도자들에게도 이를 전달했으며, 모두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국가들은 아직 공식적으로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다만, 이들도 달라진 국면에 대해 논의할 의향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16일 긴급 정부 회의를 소집했으며, EU 회원국 대사들이 회의를 갖기로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유럽이 휴전 요구가 사라진 데 대해 즉각 반발하지 않는 것은 평화조약의 체결이 사실상 궁극적인 목표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다만, 세르게이 레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이날 "우크라이나는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평화 협정을 논의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평화 조약 체결 방안은 현실성이 있을까? 푸틴 대통령에게 협상 시한을 더 주기 위한 방안이 아닐까?
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러-우크라 양국의 입장은 서로 맞서고 있다. 유일하게 합치된 부분은 '일시적인 전투 중단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평화 정착 방안(평화 협정)이 필요하다'는 인식 정도다. 평화로 가는 조건은 완전히 다르다. 러-우크라 이스탄불 2차 협상에서 서로 교환한 '평화를 위한 각서'(평화 각서)에도 그 점이 확연히 드러난 바 있다.

키예프(키이우)에게 '항구적인 평화'라는 개념은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공격 재개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국가 안보 보장이다. 한마디로 나토 가입이다. 적어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전쟁이 재발할 경우, 예를 들면 나토 헌장 제5조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투입하는 정도의 안보 보장이다. 또 러시아의 전쟁 배상 요구도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브리핑을 들은 유럽연합(EU) 정상들이 우크라이나의 EU 및 나토 가입을 금지하거나 군대 규모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공동성명을 16일 발표한 것도 그같은 맥락에서다.
반면 모스크바에게 '지속 가능한 평화'는 '우크라이나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크렘린은 근본 원인을 친(親)러시아 정부가 전복한 유로마이단 사건(2014년) 이후 10년간 우크라이나가 취해온 친(親)서방 정책에서 찾는다. 나토 가입을 금지하고 중립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서로 대치하는 이같은 조건들을 어떻게 절충할 것인지 궁금하다.
여기에 전쟁 종식후 양국 국경의 재획정 문제도 남아 있다. 이에 대한 합의가 없이는 휴전이라면 몰라도 평화조약은 체결 자체가 불가능하다.러-우크라 양국은 이 부분에서도 참예하게 대치하는 중이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양도를, 우크라이나는 영토 이양을 협상의 '레드 라인'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설사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경 재획정 문제에서 미-러에 양보하더라도,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계엄령 기간에는 헌법 개정이나, 국민투표 실시가 금지돼 있다. 선(先)계엄령 해제, 후(後)국민투표가 기본 방향이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소한 휴전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계엄령을 쉬 해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양국이 평화 조약에 가조인한 뒤, 휴전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가 평화 조약에 관한 국민투표와 대선을 동시에 치르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새로 당선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평화 조약에 서명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합법성 논란도 해소된다.
하지만,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를 용인할까? 새 대통령은 아무런 조건없이 평화 조약에 서명할까? 불확실성은 꼬리를 문다.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폭스뉴스 인터뷰를 계기로 그가 영토 교환 문제에서도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NYT는 15일 유럽 관리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지도자들에게 돈바스의 나머지 지역(우크라이나 통제 지역/편집자)을 러시아에 넘기는 데 동의하면, 평화 정착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 대신 푸틴 대통령은 최전선에서 휴전하고, 우크라이나나 유럽 국가를 다시는 공격하지 않겠다는 서면 약속을 제시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차가운 반응이 나왔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18일 미 백악관을 방문해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미 발표됐다.
러시아는 또 서방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요구도 수락한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6일 "우크라이나 합의는 아직 어렵지만 마침내 가능해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브리핑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런 방안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금지하되, 나토 헌장 5조에 따라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을 확약한다.'
원래 이 안은 이탈리아가 내놓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구상이다.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받으면, 미국을 포함한 서방 동맹국들(특히 의지의 연합 소속 국가들)이 즉시 무력 행동에 나서는 일종의 집단 안전보장 조치다.
이 방안에 대해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정부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거부했고, 모스크바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참여를 전제로 한 뒤 푸틴 대통령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게 멜로니 총리의 설명이다. 그녀는 "알래스카에서 전해진 소식중 가장 흥미로운 게 바로 이 부분"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공동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이 필요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했다"면서 "관련 작업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대한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입장이 실제로 바뀌었는지, 또 푸틴 대통령이 그 대가로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려진 게 없다. 하지만 이 안은 근본적으로 '평화(안보 보장)와 영토(돈바스 양도)의 교환 원칙'(원래는 고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아이디어다/편집자)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알래스카에서 귀국한 뒤 16일 대통령실과 연방 정부, 국가두마(하원), 각 부처 및 부서 지도부와 가진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위기를 공정한 기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를 통해 필요한 결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전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밝힌 기조와 비슷하다. 푸틴 대통령은 또 "적대 행위를 조속히 종식시켜야 한다는 미국 대통령부의 입장을 존중하며, 모든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이제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택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몇 가지의 길이 있다.
우선, 푸틴-트럼프 대통령 합의 내용에 동의하고, 미-러-우크라 3자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조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우려한 대로 미-러 합의안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시작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빼는 구실로 삼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유럽의 요구사항인) 대(對)러 추가 제재 조치를 도입하기는커녕 특정 상황에서 기존의 제재를 해제할 수도 있다. 미-러 양자 관계를 우크라이나 사태와 분리하는 것이다. 키예프는 전쟁을 계속할 수는 있겠지만, 매우 심각한 위기에 곧 직면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과 함께 알래스카 합의를 바꾸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제3의 방안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향해 제2의 최후통첩을 보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의 격화뿐만 아니라 미-러 관계의 급랭, 세계 무역전쟁의 발발 가능성 등 지정학적 위기가 다시 급격히 고조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선택을 달가워할까?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