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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시된 지 7개월여가 지난 2022년 9월 26일,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발트해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영어로는 노드 스트림, 이하 노드 스트림)이 '사보타주'(비밀 파괴공작)에 의해 폭파됐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독일 등 유럽으로 수송하는 노드 스트림은 약 1천200㎞에 이른다. 언제 어디서든 테러가 가능할 만큼 긴 해저 가스관이지만,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 노드 스트림 1, 2의 가스관 4개 중 3개에 큰 구멍이 났고, 가스 수송은 곧바로 중단됐다.
해저 가스관에서 유출된 천연가스가 수면 위로 솟구치면서 만든 거대한 물결은 이 테러 사건의 상징이 됐다.

그로부터 2년 11개월 만에 사보타주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용의자 세르게이 쿠즈네초프(49)가 지난 20일 이탈리아에서 잡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독일 연방검찰은 21일 이탈리아 동부 해안 도시 리미니에서 전날(20일) 저녁 세르히 K(다음날 세르게이 쿠즈네초프로 언론 확인/편집자)가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독일 연방검찰은 그를 노드 스트림에 폭발물을 설치한 일당 중 한 명으로 보고 유럽연합(EU)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는데, 이탈리아에서 붙잡힌 것이다. 그는 가스관에 폭발물을 설치한 잠수부가 아니라, 임대한 보트 위에서 작전을 지휘한 리더 역할을 한 걸로 알려졌다. 독일은 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즉각 이탈리아에 범죄자 인도 요청을 했고, 이탈리아 볼로나 법원이 심리를 맡았다. 물론, 쿠즈네초프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그가 독일 법정으로 넘겨질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은 세르히 K(세르게이 쿠즈네초프)가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와 호텔에 체크인하는 과정에서 수배 대상자로 현지 경찰에 통보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여권 2개를 지닌 그는 2023년 가을부터 "이제는 괜찮다"며 안심하고 실명으로 된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매체 슈피겔에 따르면 쿠즈네초프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15년까지 SBU에서 근무(대위 전역)했다. 이후 에너지 부문의 회사를 운영하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군 특수부대에서 복무했다.
독일 당국은 그간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동북부 로스토크에서 가짜 신분증으로 소형 보트 안드로메다를 빌려 발트해로 나간 우크라이나 국적자들을 유력한 폭파 용의자들로 보고 추적해 왔다. 특히 독일 연방검찰은 지난해 6월 용의자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 Z(주라블레프)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외곽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폴란드 당국에 체포를 요청했으나 검거에는 실패했다. 폴란드 당국이 독일의 체포영장을 EU 출입국 DB(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지 않는(사실상 묵살하는) 바람에, 그가 우크라이나 대사관 소속의 차량을 타고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노드 스트림 가스관의 건설을 처음부터 반대해온 폴란드가 블라디미르 Z의 체포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당시 독일에서 나오면서 양국간에 외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용의자들의 체포는 사실상 시간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이 사건에 대한 질문에 "폭파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며 "특정 사람들에게 물어봤다면, 많은 돈을 들여 그렇게 조사하지 않고도 범인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러시아의 자작극설에는 선을 그었다.
앞서 옌스 롬멜 독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11월 "노드 스트림 파괴 용의자 2명의 신원은 이미 확인했다"고 수사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가 "우크라이나 정부 기관(SBU)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건 연루를 즉각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독일 당국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발레리 잘루즈니 전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우리의 합참의장 격, 현 주영국 대사)의 명령에 따라 SBU 특수부대가 실행에 나선 것으로 조금씩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들은 SBU 특수부대 소속 로만 체르빈스키 대령이 노드 스트림 폭파 작전을 짰다고 썼다. 체르빈스키 대령은 지난해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노트 스트림은 우크라이나의 군사 목표물이었으며, 가스관 폭파는 전쟁 중 합법적 공격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건 연루 가능성은 언론별로 다른데, 일부 언론은 그의 작전 승인설을, 일부는 그의 단순 인지설을, 또 다른 언론은 그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사 결과에 따르면 노드 스트림 폭파는 체포된 쿠즈네초프와 SBU 특수 부대 소속 잠수부 1, 2명과 민간 잠수부 4명 등 6~7명에 의해 실행됐다고 한다. 이들은 가짜 신분증으로 빌린 소형 보트 안드로메다에 잠수복과 산소통, 폭발물 등을 숨겨 출항했다. 폭파 현장에서 잠수부들은 무게가 14~27kg인 폭발물을 최소 4개 이상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스트라나.ua는 "현재 확인된 공식적인 자료는 우크라이나의 흔적뿐"이라며 "독일 당국이 이 흔적을 바탕으로 정치적 결론을 서둘러 내리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방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스캔들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부가 건설을 주도한 노드 스트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유럽 전체 가스 소비량의 14%를 운송했다. 우크라이나는 노드 스트림을 줄곧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이라고 비판했으나,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의 일환으로 제재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전할 만큼 '뜨거운 감자'다. 서방 외신들도 그동안 자주 노드 스트림의 운영 재개를 위한 서방 측의 협상 가능성을 거론했고, 스트라나.ua는 아예 미국의 관리 하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스위스 법원이 지난 1월 노드 스트림2 운영사에 대한 파산 결정을 유예한 것도 이같이 복잡한 지정학적, 정치 경제적 관계 때문이다.
하지만, EU은 지난달 제18차 대(對)러시아 제재에서 노드 스트림의 직간접 사용을 금지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노드 스트림2가 재가동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유럽 대륙으로 에너지(가스)를 값싸게 운송하는 거대한 인프라를 EU가 전쟁 종식 후에도 계속 무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