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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 결사항전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것이 인구 통계학적 위기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25세 이상 남성들은 징집돼 전선에서 사망하거나 부상하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전쟁을 피해 인근 국가로 피란하면서 전쟁 개시 전과 비교해 우크라이나 인구는 수백만명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러시아군이 점령한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지역과 자포로제(자포리자), 헤르손주 주민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정부의 진짜 고민은, 징집 대상은 아니지만 출국이 금지된 18~25세 젊은 남성들의 무작정 해외도피였다. 징집 가능 연령인 25세가 다가오면, 죽음을 무릅쓰고 인근 국가인 루마니아와 헝가리로 불법 출국하는 징집 대상자들의 시도에 합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외 출국이 가능한 18세 이전에는 부모들과 함께 유학을 명분으로 일찌감치 해외로 떠났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고민 끝에 지난달(8월) 27일부터 18~22세 남성들의 해외여행을 전격 자유화했다. 언제든지 해외로 나갈 수 있으니, 죽음을 무릅쓰고 불법적으로 해외로 도피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8~22세 남성을 대상으로 한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를 도입한 주된 이유로 학생들의 대량 탈출을 꼽았다. 실제로 조치가 시행되기 전, 청년들은 설문조사에서 언제든지 우크라이나를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응답했다. 그렇게 떠난 우크라이나 젊은이 10명 중 9명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민 정책국은 판단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18~22세 남성들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전쟁 종식후 젊은이들의 표밭을 노린 젤렌스키 정권의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여행 자유화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았다. 18~22세 연령대의 남성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정책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해외여행 자유화가 지난달 말 시행됐다. 그동안 정부의 계엄령과 총동원령으로 마음대로 국경을 넘을 수 없던 청년들이 우르르 해외 출국에 나섰다.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그 규모가 예상을 넘어섰느냐 여부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해외자유화 조치 이후 18세~22세 우크라이나 남성들이 폴란드로 입국하는 사람의 수가 12배나 증가했다고 폴란드 매체 제치포스폴리타(Rzeczpospolita)가 12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시행된 첫 주에 이 연령대의 우크라이나인이 폴란드에 입국하는 수가 전례 없이 증가했다"며 "입국자가 6,1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 이전 만해도 이 연령대의 남자가 겨우 500명뿐이었다.

폴란드 공영방송 TVP는 출국금지가 풀린 이후 일주일간 국경을 넘어 폴란드에 입국한 18~22세 우크라이나인이 약 1만명 늘었다고 전했다. 국경 접경지역인 포드카르파체주에서는 해당 연령대 입국자가 5천600명으로 집계돼 일주일 새 12배 증가했고, 루블린주에서는 4천명으로 10배 늘어났다.
하르코프(하르키우)주(州) 출신 미하일로 셰브첸코(22)는 독일 타게스슈피겔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출국금지를 해제하자마자 기차표를 끊었다”며 “미사일 위협과 징집 가능성이 있는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장 동료가 징병검사를 위해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뒤 검문을 피하려고 외출조차 꺼렸다고도 했다.
해외여행 자유화를 비판한 최고라다(의회)의 로만 코스텐코 의원은 지난 6일 "18~22세 청소년의 해외여행을 허용한 것은 자업자득"이라며 "떠난 젊은이들은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키예프(키이우) 대학교 1학년 학생의 사진이 주목을 끌고 있다. 사진 속에는 거의 여성들만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새 학기(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9월에 새 학기 시작/편집자)를 맞아 키예프 타라스 셰우첸코 국립대학교 경제학부 강사인 안드레이 딜리가치가 페이스북에 올린 1학년 사진에는 대다수가 여학생이었다.

경제학자 글렙 비슐린스키는 "이 사진으로 뭔가 다른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18세 이상 남성에게 3년간 국경을 폐쇄한 결과를 여기서 본다"는 댓글을 남겼다. 남학생들은 아예 입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댓글에는 키이우-모힐라 아카데미 그룹의 사진이 첨부됐는데, 거기에도 남자들은 몇 명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취학 아동및 학생들의 급감 현상이다.
초중등학교(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학제는 11년 혹은 12년제/편집자)에 다니는 학생은 374만 명으로, 지난 30년 이래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를 따라 대거 해외로 나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엔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3~17세의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1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유네스코 측도 지난해 유럽연합(EU)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학생을 약 66만 5천 명으로 집계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올해 취학한 학생 수는 작년(31만4천 명)보다 20% 감소한 25만2천명으로 줄었다고 세르게이 바박 최고라다(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현지 매체 Z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올해는 6살 자녀를 해외로 데려가는 부모가 거의 없고, 오히려 자녀를 데리고 돌아오고 있으나, 특정 시기(전쟁 발발 직후)의 대거 출국과 전반적인 출산율 감소로 취학 아동들은 계속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초중등학교 졸업생도 지난 한 해 급격히 감소했다. 미하일로 빈니츠키 교육부 차관은 올해 20만 8천 명이 NMT(국가 졸업 시험)에 응시했다고 밝혔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NMT 응시자 수는 28만 3,370명. 1년 만에 7만 5천 명 이상(26%)이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9월부터 45명 미만 규모의 학교에 대한 지원금을 중단하기로 했다. 학교의 폐쇄 또는 유지 여부는 지방자치단체에 맡겼다. 취학 아동및 학생 수의 감소는 향후 우크라이나 인구 동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다. 전쟁 종식이 늦어지면 질수록 우크라이나의 인구 위기는 더욱 현실화할 것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