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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을 지켜보면 속고 또 속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정치인과 장사꾼의 발언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안되겠지만, 외신 기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바꾸기에 약간 짜증이 난 듯하다. 일부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이를 지적하다가 기자라는 직업을 바꾸는 게 낫겠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쯤되면 정치인 기질 반, 장사꾼 기질 반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보고 듣고 읽는 법을 따져볼 때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최근 발언은 영국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18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이)가 가장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를 정말로 실망시켰다."
스타머 총리는 옆에서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만 '움직일 의향'을 보인다"며 추가적인 압박을 촉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을 떠나는 에어포스 원(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푸틴 대통령에게 휴전을 요청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실망했으면, 그에 대한 대응으로 휴전이든 종전이든 제재든 압박 카드를 꺼내야 하는데, 아예 그럴 마음이 없다는 분명한 의지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인내심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며 "러시아에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 은행에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의 고위 관리들이 워싱턴 방문에서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금융 제재와 러시아산 석유 및 가스의 수입 중단 계획을 세부적으로 조율한 것으로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 일부 언론이 보도한 시점에 나온 발언이었다. 한 EU외교관은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내 우리 편에 섰다"며 "이제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나토(NATO)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는 등 미국의 대(對)러 제재에 동참할 경우,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발을 뺐다. 동시에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에 대해 50~100%의 (2차) 관세를 부과할 것을 요구했다. "나토가 나의 요구대로 한다면 이 전쟁은 빠르게 끝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시간과 에너지, 돈을 낭비할 뿐"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결론이었다.
나토에게 전제조건을 단 그의 대러 제재 발언을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러시아를 제재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유럽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누차 요구해온 러시아와 중국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거부해 왔는데, 그가 이 사실을 잘 알고 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향해 그가 비슷한 화법을 사용한 것도 눈에 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들이 모인 카타르를 공습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나를 엿먹이고 있다"며 흥분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카타르 공습을 나중에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흥분하는 건 당연하다. 미국에게 카타르는 중동지역에 있는 중요한 군사 파트너로, 미군 기지가 있을 뿐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최근 '에어포스 원'으로 사용할 고급 항공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를 전화로 질책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부드러운 어조로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공습의 성공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만약 공습이 성공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작전 성공을 자신의 공으로 돌렸을 것이라고 마이클 오렌 전 주미 이스라엘 대사가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네타냐후 총리가 반복하는 것을 허용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나온다. WSJ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두 사람의 관계와 네타냐후 총리(이스라엘)가 미 의회와 친(親)공화당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푸틴 대통령을 대하는 그의 자세도 언뜻 네타냐후 총리를 연상케한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유럽의 압박을 피해 나가기 위해 일부러 유럽에 비현실적인 전제 조건을 달았다고 17일 분석했다. 유럽이 따르지 않을 것을 알면서, 러시아산 원유의 구매 중단과 중국·인도에 대한 2차 관세 부과를 유럽(나토)에 요구했다는 것. 나토 주재 미국 상임대표(대사)인 매튜 휘태커는 "동맹국들이 러시아산 석유를 계속 구매하는 한, 워싱턴에게 모스크바에 대한 추가 제재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 포스트(WP)의 분석도 엇비슷하다. 유럽(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체코 등/편집자)은 러시아산 석유·가스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고, 이를 잘 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러 제재 도입의 조건으로 제시했으니, 미국의 대러 추가 제재 가능성은 낮다는 결론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중국·인도에 추가(2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언론들은 지적했다.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한 뒤 EU는 러시아 에너지원 퇴출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러시아 드론의 나토(폴란드, 루마니아/편집자) 영공 침범 사건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현저히 낮았다. 그는 "이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일에도 만족하지 않는다"고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실수였을 수도 있다"고 격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이 키예프(키이우)에서 "드론의 영공 침범은 모스크바의 고의적인 행동이자 도발"이라며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나토의 강경 분위기는 이미 식은 뒤였다.
대신에 유럽을 향해 트럼프 대통령이 끈질기게 요구하는 러시아 석유·가스의 유럽 퇴출은, 만약 실현된다면 미국에게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신의 한수'다. 미국은 전후 유럽을 장악해온 러시아의 에너지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을 수 있고, 반대로 러시아는 에너지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향후 전쟁 비용의 조달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크렘린을 향해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서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미국은 앞으로 유럽의 가스 공급원을 현재의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교체할 계획이라며 러시아 에너지원의 유럽 퇴출이 트럼프 정권의 핵심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EU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묘수를 모를 리 없다. 대(對)러, 대중국·인도 관세 부과보다는 모스크바와 거래하는 기업들과 금융기관에 대한 공식 제재(사실상 제재 대상및 범위 확대/편집자)를 주장하는 이유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또 워싱턴은 G7 국가를 통해 러시아중앙은행의 동결된 자산(외환보유고)을 압류하는 방법을 찾아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유럽은 법률적 문제를 들어 러시아 자산 압류를 반대한다. 대신, 러시아의 동결 자산에서 나온 수익을 우크라이나로 전달하는데, 올해는 이미 그 금액이 100억 유로를 넘어섰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제재를 놓고 충돌하는 또 다른 지점이 바로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처리문제다. 미국은 유럽에 비하면 러시아 자산 동결 규모가 얼마 안돼 동결하더라도 부담이 적다.
전쟁 종식을 위한 러-우크라 정상회담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시간적으로 되돌려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백악관에서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던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여러 차례 표현했는데, 취임 뒤 아무런 조치를 안 했다'는 기자 질문에 "어떻게 아무 조치가 없다고 하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는) 인도에 2차 관세를 부과해 러시아에 수천억 달러의 피해를 안겨주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말하느냐"고 반발하면서 "나는 아직 2단계나 3단계(제재 조치)는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질문이 나온 배경은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8월 15일)과 미-유럽 집단 정상회담(8월 18일)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장담한 러-우크라, 러-미-우크라 3자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과 회담하던 중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뒤 러-우크라 정상회담이 2주내에 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후 22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2주 안에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에는 대규모 제재나 관세 부과, 또는 둘 다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우크라 정상회담은커녕 러시아군의 대(對)우크라 공습과 지상 공격이 더욱 격렬해진 상황이다. 2주라는 시한이 만료된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은 CNN 스콧 제닝스와의 인터뷰(스콧 제닝스 쇼)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매우 실망했다"며 "전쟁이 2주 안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망'이라는 표현과 '2주'라는 시한, '매주 중요한 결정'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반복됐다.
다만, 그는 "러-우크라 갈등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며 "며칠 안에 모두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리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은 푸틴-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개인적 감정, 혹은 두 사람 간의 증오심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푸틴-젤렌스키 대통령을 놀이터에서 싸우는 두 아이로 비유하면서 "싸우는 아이들이 지쳐서 싸움을 멈추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2일에는 "탱고는 두 사람이 춰야 하는데, 푸틴 (대통령)이 원할 때는 젤렌스키 (대통령)가 원하지 않았고, 젤렌스키 (대통령)가 원할 때는 푸틴 (대통령)이 그러지 않았다"며 "지금은 젤렌스키 (대통령)가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5일에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푸틴과 젤렌스키 대통령) 서로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고 자신이 나설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실망감이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지난 7월 중순이다. 당시 그는 50일 이내에 우크라이나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러시아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이 기간을 10~12일로 줄여 긴장감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를 압박하는 대신,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최근들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매우 중요한 결정을 거듭 표명한 트럼프 대통령은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