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일본 마쓰다, 러시아 공장 바이백 옵션 행사 못했다, 왜? 그럼 현대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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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지난 2023년 말 매각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등 러시아 자산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Buy-back)' 옵션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전쟁 리스크를 감수하고 지를 것(되살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조만간 결정해야 한다.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현대차를 우울하게 만든다. 일본 자동차 기업 마쓰다가 현지 파트너인 러시아 자동차 기업 '솔레르스' (соллерс автомобили)에게 블라디보스토크 공장의 지분 50%를 단돈 1유로에 매각하고 이를 3년 이내에 재매입할 권리를 챙겼는데, 지난 3일로 바이백 옵션 권리를 상실했다는 것.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철수한 외국 업체가 러시아 내 자산 재매입 권리를 잃은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러시아 자동차 업체 솔레르스와 생산 차량/사진출처:motor.ru
러시아 자동차 업체 솔레르스와 생산 차량/사진출처:motor.ru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로이터 통신은 3일 "솔레르스사(社)가 마쓰다로부터 바이백 관련 (협상) 제안이나 (행사) 요청이 없었으며, 현재로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 것으로 전했다. 이 통신은 마쓰다가 바이백 옵션을 상실한 것으로 해석했다.

바이백 옵션이 걸려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공장에서는 마쓰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마쓰다 CX-5·CX-9 크로스 오버(SUV)와 마쓰다6 세단(승용차)을 생산했다. 마쓰다가 철수한 뒤 상용차 전문 업체인 솔레르스사는 이 공장에서 자사 브랜드의 픽업트럭 생산을 시작했고, 2023년부터는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버스를 조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장은 연 최대 5만 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솔레르스사는 또 독자적으로 자사 브랜드의 SUV 차량을 생산하기로 하고 컨셉트카를 공개했다. 이 회사는 합작 파트너였던 미국의 포드 자동차 지분도 2021년 인수한 바 있다. 

솔레르스사가 공개한 독자적인 SUV 차량의 컨셉트카/영상 캡처
솔레르스사가 공개한 독자적인 SUV 차량의 컨셉트카/영상 캡처

현대차는 지난 2023년 12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과 이전 GM 공장 부지 등 러시아 자산을 현지 업체인 아트 파이낸스(이후 AGR 자동차 그룹으로 사명 변경)에 1만루블(당시 약 14만원)에 매각하고 철수했다. 현대차는 전쟁 발발로 2022년 3월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현지 당국으로부터 공장 가동을 재개하든가, 자산을 넘기든가 택일(擇一)하라는 압력에 시달려왔다. 결국 현대차는 '2년 내 재매입 가능' 조항(바이백 옵션)을 붙여 아트 파이낸스에 러시아 자산을 넘겼다.

현대차가 인수한 GM 러시아 공장/사진출처:driver-news.ru
현대차가 인수한 GM 러시아 공장/사진출처:driver-news.ru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사진출처:현대차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사진출처:현대차

현대차는 지난 2년 가까이 전쟁의 종식을 기대하고 러시아 시장 재진출을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연방 지식재산청(로스파텐트, 우리의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빠뜨리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전기차 장기 렌털 브랜드 '모션(Mocean)'을 시작으로 'ix10', 'ix40', 'ix50' 등 신규 상표를, 기아는 '마이 모빌리티', '그린 라이트' 등 브랜드를 등록했다. 

전쟁 이전 러시아가 현대차·기아의 핵심 전략 거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후속조치다. 지난 4월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러시아 자동차 산업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직전인 2021년만 해도 한국의 대(對)러시아 자동차 수출액은 26억4000만달러(약 3조6912억원)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판매 대수로도, 현대차·기아는 러시아 시장에서 35만4208대를 판매하며 현지 점유율 23.9%로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지 공장을 가동 중단한 이후 판매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추락했다. 현지 자동차 전문매체 카엑스포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러시아에 5,089대가 등록돼(판매됐다는 뜻/편집자) 전년 대비 55% 감소했다. 제네시스만 3%(234대) 증가했다. 

기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지 자동차 컨설팅 업체 아프토스타트(Avtostat)의 세르게이 첼리코프 대표에 따르면, 올해 1월~9월 러시아 시장에 등록된(판매된) 기아차는 6,315대로, 전년 같은 기간의 절반(-50.9%)에 그쳤다. 전쟁 전까지 현지에서 대량 조립, 생산되던 기아차도 현재 병행수입을 통해 러시아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현대차·기아 등 외국산 자동차가 러시아 시장을 떠난 사이, 중국 자동차들이 러시아 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2024년)에는 중국산 자동차는 93만대 이상을 판매해 시장 점유율을 60%까지 끌어올렸다. 

현대차·기아에게 나쁜 소식은 또 있다.
마쓰다의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공장처럼, 현대차의 상트 공장도 현재 AGR 자동차 그룹에 의해 '솔라리스'(solaris) 브랜드의 차량이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투로프 부총리
만투로프 부총리

로시스카야 가제타(RG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자동차 산업을 총괄하는 데니스 만투로프 부총리(전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10월) 31일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 자동차 기업이 떠난 뒤 폐쇄됐던 자동차 공장 13개 중 11개는 이미 정상 가동 중이며, 나머지 2개 공장은 내년(2026년)에 재가동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재가동될 2개 공장에는 현대차가 인수한 GM공장도 포함된다. 만투로프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GM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정확히 말하면 현대차 인수 공장)도 생산 설비의 재정비를 끝내고 2026년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쉐보레 크루즈와 오펠 아스트라 등을 생산해온 GM 상트 공장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서방의 대러 제재조치로 GM이 러시아를 떠나면서 가동이 중단됐고, 이후 2020년 현대자동차에 팔렸다. 현대자동차는 상트 공장의 자동차 조립 설비 재구축에 360억 루블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전쟁 발발로 투자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내년 SUV와 승용차 3~5개 차량의 모델이 생산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계획은 현지 지자체 간부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과 시 경제담당 간부들에 의해 공개된 바 있다.

만투로프 장관은 또 "칼루가의 옛 폭스바겐 공장에서는 러시아 브랜드 '테넷'(Tenet)이, 마쓰다 블라디보스토크 공장에서는 솔레르스의 브랜드 차량이 생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때 현대차·기아 차량이 조립됐던 러시아 역외도시 칼리닌그라드의 '아프토토르'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도 했다. 

전쟁 전 아프로토르에서 기아차가 조립 생산되던 모습/사진출처:아프토토르
전쟁 전 아프로토르에서 기아차가 조립 생산되던 모습/사진출처:아프토토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과 GM 공장 등 현대차 자산을 인수한 AGR 자동차 그룹은 이미 2024년 초부터 상트 공장에서 자체 브랜드 '솔라리스'의 조립 생산을 시작한 결과, 1년 만에 흑자를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또 일부 모델(차종)은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승용차 부문에서 3위권에 진입했다. 

러시아의 경제유력지 코메르산트 등에 따르면 AGR 자동차 그룹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러시아어로는 петербургский завод AGR Automotive Group, AGR 자동차 그룹의 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지난해(2024년) 매출 294억 루블(약 5,000억 원, 루블당 17원 계산/편집자)에 순이익 19억 루블(약 329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차 상트 공장은 2022년과 2023년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바람에 각각 188억 루블, 166억 루블의 적자를 낸 바 있다. 상트 공장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GM 공장 가동을 앞둔 AGR 자동차 그룹은 내심 현대차의 바이백 옵션 기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지나 않을까 싶다.

현대차 상트 공장에서 생산된 솔라리스 차량/텔레그램 캡처
현대차 상트 공장에서 생산된 솔라리스 차량/텔레그램 캡처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집권 2기 출범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열의를 보이면서 러시아를 탈출하는 외국계 기업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RGru에 따르면 러시아 시장에서 외국 기업의 철수는 거의 중단됐다. 올해(2025년) 1월~9월 철수한 외국 기업의 수는 총 15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배 감소했다. 올해 3분기 러시아에서 체결된 총 88건의 M&A 거래 중 외국인이 러시아 자산을 매각하는 거래는 단 5건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매각 자산에 대한 높은 할인율과 정부 승인 획득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하지만, 철수가 사실상 중단됐다는 사실은 바이백 옵션을 갖고 있는 현대차에게는 불리한 정황이다.

그렇다고 현대차가 바이백 옵션을 덥썩 사용할 수는 없다. 전쟁에 언제 끝날 지도 불분명하고, 서방 자동차 업체들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복귀할 경우 서방 시장의 비판과 보이콧 여론이 불거질 수 있다. 거의 혈맹 관계로 가는 북러 군사 협력으로 인한 외교 리스크도 부담 요인이다. 

재매입 비용 협상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매각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장부가는 약 2,873억원이었지만, 이미 생산 중인 '솔라리스' 가치가 포함될 경우 매입 비용 측정이 쉽지 않다. 

계속 바뀌는 러시아 시장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 당국은 내달(12월 1일)부터 수입 자동차에 대한 재활용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기로 해 수입 물량이 당분간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에서 생산된 차량보다 수입 차량의 기본 단가가 그만큼 높아져 경쟁력이 약화될 게 분명하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재활용 수수료가 높아지기 전에 외국 수입 차량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모두 차량을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인하(25→15%)에도 불구하고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시절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현대차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러시아 시장과 같은 새로운 수익원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올해 3분기 매출이 46조72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5373억원으로 29.2% 급감했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현대차 등 주요 외국 자동차 브랜드의 재진출을 전망하는 발언도 계속 나온다. 자동차 대리점 '메이저'의 미하일 바흐티야로프 대표는 지난 9월 중순 라디오 RBC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기아와 토요타, 마쓰다가 러시아에서 사업을 재개할 준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과정이 약 1년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종식된 후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대로(2026년 9월 추정)라면 현대차는 바이백 옵션이 만료된다.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 주요 기업들은 전쟁 발발후 러시아 사업을 포기하면서도 바이백 옵션은 유지했다. 
프랑스 르노 자동차는 2022년 3월 러시아 사업 운영을 중단한 뒤 그해 5월 현지 업체 아프토바즈에게 6년 바이백 옵션과 함께 러시아 자산(21억 9,500만 유로로 추산)을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해 여름, 르노 러시아 공장은  모스크바 자동차 공장(Moscow Automobile Plant Moskvich JSC)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또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는 2023년 4월 바이백 옵션으로 현지 자동차 대리점인 아브토돔(Avtodom)에 매각됐다.

자동차 업체 외에도 프랑스 화장품 록시땅은 2022년 6월 5년 바이백 옵션(2025년 6월부터 계산)으로 러시아 자산(자산 가치 4,450만 유로)을, 독일 기업 헨켈(Henkel)은 2023년 4월 바이백 옵션을 걸고 자산을 540억 루블에 매각한 바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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